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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애국 식품에서 쓰레기 메일로…

  • 2014.03.07(금) 08:31

어렸을 때는 좋아하다 어른이 되면 멀리하는 음식이 스팸이라는 통조림 햄이다. 맛은 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가급적 먹기를 자제한다. 먹기는 인간들이 자의적으로 먹으면서 까닭 없이 미움을 받는데 심지어 요즘은 '스팸 메일'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스팸은 사실 고난의 시절, 사람들을 배고픔에서 구해 준 구원의 식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인들은 한 가족 당 달걀은 일주일에 2개, 고기는 500g, 치즈는 30g을 먹을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전면적인 배급제도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식료품을 살 수 없었던 시절,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식품이 햄 통조림 스팸이었다. 미국에서 생산한 스팸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 병사와 시민들에게 부족했던 단백질을 공급해준 숨은 공신이었다. 이런 애국식품이 왜 스팸 메일의 주인공이 됐을까?

스팸은 미국 호멜식품에서 만든 상표로, 햄 통조림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햄이 아니다. 햄 대용품일 뿐이다. 호멜식품은 1927년, 돼지다리 살을 가공해 햄 통조림을 만들었다. 그런데 부산물로 엄청난 양의 돼지 어깨살이 생겼다. 처치 곤란한 어깨살 때문에 고심하던 호멜식품에서는 1937년, 어깨살을 다진 후 여기에 진짜 햄을 섞고, 소금과 감자 전분을 혼합한 새로운 통조림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팸(SPAM)이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선을 보였다. 스팸은 돼지고기 어깨살과 햄(Shoulder of Pork And Ham)이라는 뜻으로 단어의 첫 글자를 조합해 만든 상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인류에게는 불행이었지만 호멜식품에는 대박의 기회가 됐다. 냉동저장이 필요 없는 스팸 통조림이 군용으로 적합했기에 미군의 야전식량으로 채택됐고, 값싸고 풍부한 돼지 어깨 살에다 전분을 혼합해 만들기 때문에 무한정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때문에 스팸은 미국과 영국에서 배급식량에서 제외됐고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전시 국민들에게 고기 대신에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했기에 애국식품이라는 찬사까지 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국이 배급 제도를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값싼 햄 통조림 스팸은 여전히 시장을 지배했다. 영국의 양돈업은 고사상태에 빠졌다. 사람들도 이제는 신선한 고기를 먹고 싶고, 돼지 뒷다리 살을 소금에 절여 저장해 만든 제대로 된 햄을 먹고 싶었지만 값이 너무 비싸 여전히 저렴한 가격의 햄 통조림, 스팸에 만족해야 했다.

사람들이 드디어 스팸에 신물을 내게 됐다. 영국 BBC 방송 코미디 시리즈에 스팸이 등장했다. 레스토랑 메뉴에 적힌 어떤 음식을 주문해도 스팸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 없다는 내용이다. 코미디 중간 중간에 코러스로 "스팸, 스팸, 스팸"을 합창한다. 이 코미디물이 인기를 끌면서 스팸은 쓸모없이 넘쳐나는 것이 대명사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80년대 PC통신 시절, 당시의 불량 누리꾼이 BBC 방송 코미디 프로의 스팸 대사를 인용해, 화면을 넘치게 만들면서 다른 사람의 통신망 접속을 방해했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원하지 않는 메일을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것을 보고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애국 식품이었던 스팸이 쓰레기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이다. 세상사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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