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선무당이 사람 잡는 진짜 이유

  • 2014.04.14(월) 11:45

“ 박 대리, 요 며칠 혈색이 달라졌는데 뭐 좋은 일 있어? ”
“ 맞아, 좀 더 에너제틱해졌달까? 암튼 전 보다 좋아졌어.”
“ 예, 다시 자전거를 탑니다. 다음 주부터 아예 자전거로 출퇴근 해 볼까 생각입니다.”

점심을 하러 나가면서 박대리의 자전거 출근이 토픽으로 떠올랐다. 자전거 안 타는 사람이 없다는 둥, 운동량이 크다는 둥, 헬맷을 꼭 써야 한다는 둥 모두들 자전거에 관련해서 한 마디 씩 거든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같은 식당으로 들어와 앉았다. 여전히 대화 거리는 자전거다.

“ 근데 말야, 자전거. 그거 좋은데 말야, 알고 타야 안 다치거든. 박대리, 자네 자전거 잘 알아? 얼마나 탔는지 몰라도 뭐든 원리부터 알아야 되는 거거든. 자전거, 그거 내가 한 때 좀 탔잖아, 심각하게. 그래서 내가 좀 알지. 일단 제일 중요한 게 준비운동이야. 타기 전에 몸풀기 좀 하고, 도착해서도 한 5분 스트레칭 해줘야 하지.”
 
나부장이 슬그머니 테이블에 동석 할 때부터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지만 막상 입이 열리고 나니 누구 하나 끼어들지 못한다. 모두들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밥만 먹는다. 오늘 화제의 주인공인 박대리는 온 데 간데 없고 나부장의 ‘좀 아는 자전거 론’이 쉴 새 없이 계속된다.

“ 근데 말야, 자전거. 그거 돈 좀 드는데 어때, 부담스럽지는 않아? 내 대학 후배가 아웃도어 샵을 하거든. 말만 해. 내 이름 대면 무조건 10% 세일이야. 시도 때도 없이… ”

“ 저… 부장님, 저흰 일이 많아서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서로 눈을 찡끗하더니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훌쩍 일어나 버리고 박대리만 남아 안절부절 못한 채 나부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식사를 하고도 20분이 넘게 나부장의 자전거論(론)은 끝날 줄 모른다.

“ 근데 말야, 자전거, 그거. 같이 타는 사람들이 중요하거든, 내가 좀 세게 타봐서 아는데 괜찮은 사람들하고 타야 재미도 있고 안전하고…”

나부장의 별명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다. 모르는 게 없고 안 해 본 것도 없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네이버 `지식in`을 검색하는 느낌이 든다. 나부장에 대해서는 보통 세 번 놀란다. 처음엔 그 박학다식에 놀라고, 두 번째는 자기와 상관없는 대화에 없이 스스럼 없이 끼어들어서 깜짝 놀라고, 세 번째는 한번 풀어내면 닫히지 않는 `말발`에 화들짝 놀란다.

점심 시간이 10분 남았다. 꾹 참고 있던 박 대리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 부장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록 제가 대학시절에 사이클 선수였고, 십 여년이 넘도록 함께 타는 동호회도 있지만, 염려해주시고 도움 주신 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젠 사무실로 들어 가셔야 할 때 입니다.”

 

나부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일어나며 말한다.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들어 가자구. 근데 말야, 뭐 그 정도 이야기에 감사할 것 까지 없구, 자전거 그거 좋지만 조심해서 타라구, 삐끗하면 다치기 일쑤야.”

박 대리는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사이클 선수 출신에게 얄팍한 자전거論을 늘어 놓고도 민망해하기는 커녕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저 능청스러움은 도대체 뭘까? 윗 사람이 되려면 다 저쯤은 되어야 하나?

어느 덧 엘리베이터에서 경리부 여사원에게 ‘좀 아는 썬 크림論’을 풀기 시작한 나부장. 언제나 제 말만 하고 있는 우리 회사 안의 ‘세상의 모든 지식’.  “ 선무당은 끝내 선무당일 수 밖에 없구나. ”

문득 박대리는 깨닫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건 단순히 지식이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남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다는 듯 나부장을 바라보던 박대리의 눈길이 갑자기 측은하게 바뀐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