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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初 재계司正]④ 2013 국세청 '세풍'(稅風)

  • 2013.11.18(월) 16:55

세수부족 해결·사정…'일석이조'
CJ·롯데·효성 등 'MB 지우기'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측이 선거 자금을 모으기 위해 국세청을 동원한 스캔들을 세풍(稅風)이라고 부른다. 그로부터 16년 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3년, 또 다른 세풍이 재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금도 재계에 휘몰아치고 있는 '제2의 세풍'은 세수 부족 메우기를 명분으로, 전 정권 특혜 기업에 대한 사정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세금 탈루 대기업에게 '세금 폭탄'을 퍼붓는 동시에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잘 나갔던 기업들을 견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인 셈이다. 

◇ '명분'은 세수부족 해결

올해 정부가 거둬야할 세금 수입, 세수 중 부족한 규모는 무려 8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세수 부족분은 8조2000억원 규모"라고 전망했다. 앞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 대비 7조~8조원 가량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세청의 재계 사정은 대외적, 공식적으로 이런 차원에서 진행된다. '세수가 부족하니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더 거두겠다'는 뜻이다. 사실 국세청은 지난 7월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 대기업의 건설·조선·해운업종 위주로 올해 세무조사 조사건수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그 이전까지는 '세수구멍'을 메우기 위해 공격적인 세무조사에 나섰던 국세청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재계의 우려를 받아들여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매출액 500억원 이상의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도  당초 계획(1200여개) 보다 100건 정도 줄였다.

▲ 18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에서 열린 세무조사 감독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안대희 전 대법관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국세청 제공)


하지만  국세청의 4대 중점 타겟(역외탈세, 고소득 자영업자, 세법·경제질서 문란자, 대기업·대자산가)에 포함된 대기업은 엄연히 강도높은 조사 대상이다. 때문에 세무당국은 '양보다 질'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는 예외없이 이뤄지고, 그 강도 역시 유례없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세무조사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재계 서열 20위권 이내의 대기업 중 거의 절반 가량이 동시다발적으로 국세청의 조사 대상이 되고 있다.

현대차, SK, LG, 롯데, 두산, 한화, 포스코, 두산, 효성, 대우건설, 코오롱, 한국GM 등이 국세청으로부터 고강도 세무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이중 명확하게 추징금 액수가 확인된 기업은 3652억원의 추징금을 부과받은 효성그룹을 비롯해 OCI(3084억여원), 동부하이텍(778억여원), 동아에스티(646억여원) 등이다. 여기에 관세청도 기업에 대한 관세 부과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GS칼텍스와 SK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3사에 관세 포탈 혐의로 5천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정도만 해도 벌써 1조원이 넘는다.

지난 2005년 세무 조사 당시 현대차는 1962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는데, 이 당시 '천문학적 액수'라는 표현이 붙을 정도로 금액이 컸다. 그러나 앞으로 국세청의 추징금 규모는 효성그룹에서 보듯 '천문학적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세수부족을 상당 부분 상쇄할 정도의 규모, 수 조원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전(前)정권의 그림자…롯데, CJ, 효성

지난 2월 박 대통령의 취임식을 전후해 국세청은 롯데를 뒤지기 시작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롯데그룹에서 분리한 회사인 푸르밀 (옛 롯데우유)조사를 시작으로 롯데그룹의 상징이자 심장인 롯데호텔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롯데호텔 세무조사가 끝난 지 채 한달도 안된 지난 7월에는 예고도 없이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슈퍼·롯데시네마 등 핵심계열사인 롯데쇼핑 4개 사업본부에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정기조사를 담당하는 서울국세청 조사1국과, 특별세무조사를 맡고 있는 조사4국 직원들이 합동으로 투입됐다.

롯데에 몰아친 '세풍'이 이유는 이명박 정권의 특혜를 가장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7년 대선을 전후해 롯데호텔을 비공식 캠프로 애용해, 이 호텔은 '제2의 청와대'로 불리기도 했다. 롯데는 MB정부 동안 숙원사업인 잠실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를 받았고, 부산롯데타운 신축허가, 맥주사업 진출, AK글로벌(현 롯데DF글로벌) 면세점 지분 인수, 경남 김해관광유통단지 추가 개발 등 급격히 세를 불려왔다. 실제로 롯데그룹 자산 규모는 지난 2006년 40조원에서 2012년 83조 3천억원으로 급증했고, 특히 2009년 한해 동안에는 무려 18조원 가량 늘어나는 등 MB정권 동안 초고속성장했다.

2013년 세무 당국은 롯데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와 역외 탈세, 오너 일가의 해외 은닉 재산 등을 샅샅히, 집중적으로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 지난 7월1일 저녁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으로, 전 정권 핵심실세들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CJ 이재현 회장은 그룹 세무조사에 검찰 수사, 구속까지 됐다. 그러나 국세청 세무조사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본격화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9월부터 CJ그룹에 이어 CJ E&M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2월에 이은 두 번째 세무조사로 특별 세무조사만을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하고 있다.

이 전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의 조석래 회장은 세금 추징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베트남 방문 동행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가 막판에 제외되는 굴욕을 겪었다. 국세청이 특별세무조사를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하면서 조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조세범칙조사는 일반 세무조사와 달리 피조사기관의 명백한 세금탈루 혐의가 드러났을 때 형사처분을 염두에 두는 사법처리 성격의 세무조사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소 "나는 재계에 신세 진 게 없다"고 말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재계가 일방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 지원한 기억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정권 초반 재계 사정에서 검찰, 국세청 뿐 아니라 '재계의 검찰' 공정위, 금융계의 저승사자 금융감독원 등도 서슬이 퍼렇다. 재계는 여전히 박 대통령을 향한 두려움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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