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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初 재계司正]⑥ 번외편-中 '부패와의 전쟁'

  • 2013.11.21(목) 14:45

"호랑이, 파리 다 잡겠다"
기업인 실종 늘어…국영기업 도마 위에

정권초반 개혁과 사정 바람은 동서고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해외에서도 새로 등장한 신(新)권력이 기득권의 부패를 척결해 민심을 다잡고, 국정운영의 질서를 다지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지난해는 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개국의 권력지형이 바뀐 가운데 향후 10년간 중국을 이끌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초반 사정바람이 특히 눈길을 끈다.  

 

지난해 11월 중국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 국가주석이 취임사에서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올초에는 "호랑이든 파리든, 모두 때려잡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랑이는 공산당 고위 간부, 파리는 하급 관리를 말하는데, 새 정권 출범 이후 벌써 호랑이 11마리를 때려잡았다고 중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지난 1년 중국 정부의 사정은 1976년 문화대혁명 이후 최대 규모로 이뤄졌다. 이처럼 공산당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시 주석의 사정 작업은 이제 2단계로 국영기업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 지난해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모습

 

◇ 사정의 책임자 왕치산(王岐山)

"중국 경제는 리커창(李克强), 부패 척결은 왕치산"이라는 말처럼 시 주석의 사정작업은 왕치산 당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맡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의 큰 틀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스터 클린' '현대판 포청천'으로 불리는 왕 서기는 취임 직후 중국 언론으로부터 "왕치산, 그라면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왕 서기는 올초 "관리들이 부패를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고, 감히 부패할 수도 없게 하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왕 서기(사진)는 보시라이(薄熙來) 전 중국 충칭시 서기 처벌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공직 사정에 들어갔다. 특히 왕 서기의 기율위는 지난 9월 감찰부 홈페이지(www.mos.gov.cn)를 개설해 공직자 비리를 제보받고 있다. 수만 건의 제보가 쏟아졌고, 중국 공직자들은 언제 기율위에 불려갈 지 벌벌 떨고 있다. 또 '중앙순시조'를 가동해 지방정부와 중국수출입은행,중국출판그룹 등 주요 공기업에 파견하기도 했다.

왕 서기는 지난 1년 간 11명의 호랑이와 셀 수 없이 많은 파리를 때려잡았다. 그러나 그의 사정의 칼날은 이제 당을 넘어 국유기업, 민간기업 등 재계로 향하고 있다. 특히 전직 고위 간부의 자녀, 친인척들이 세운 민간기업을 눈여겨 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후진타오 정부 때부터 환경부장으로 일했던 저우성셴(周生賢)에 대한 조사. 저우 부장은 기업들에 환경 인증서를 부정 발급해 수천억 원 대 뇌물을 챙기고 베이징의 환경오염을 악화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외조카딸을 앞세워 뤼둥위안(綠動元)이란 회사를 베이징에 설립하고 석유화학기업, 철강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환경평가 승인을 내줬다는 것이다. 저우 부장의 배후에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일가 친척이 연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중국의 기업인들이 갑자기 실종되는 경우가 잦다. 기율위, 경찰 등 사정 당국이 기업인을 조사하기 위해 체포할 때는 증거인멸이나 공범 도주 등을 우려해 가족이나 회사 등에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종' 기업인이 많아지는 것은 공무원 등 공직사정 바람이 재계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 사정 2단계, 국영기업 비리 척결

중국 경제에서 국영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 국유기업의 총자산은 44조8000억 위안(7782조원)에 달한다. 공산당 부패 척결에 이어 2단계 국영기업으로 사정이 확대되고 있다. 국가 이익을 장악하고 있는 국유기업과 이들을 비호하는 기득권 세력을 향한 사정은 석유산업과 관련한 파벌을 뜻하는 '석유방' 척결로 시작됐다.

석유방 사정은 핵심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석유 관련 제품의 비축과 유통을 국유기업인 중국석화(SINOPEC)와 중국석유(CNPC) 2개사가 독점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기율위는 장제민(蔣潔敏)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주임을 비롯해 CNPC 전·현직 고위 임직원들을 '기율위반' 혐의로 잇따라 조사하는 등 석유방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지난 12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가 폐막한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5세대 지도부 7명이 개혁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설립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금융방'도 마찬가지. 시장 개방으로 자신의 기득권이 줄어들 위기에 처한 국유은행 등 금융기관과 감독기관들도 사정대상이 될 전망이다. 특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 중국 지사의 채용 비리 조사에 착수한 것은 금융방 사정의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중국 금융계에는 태자당(太子黨·당 최고위층 자제) 출신 인사들이 적지 않은데, JP모건이 중국 비즈니스를 위해 고위층 자녀들을 채용했다는 것이다.

JP모건 파문은 철도사업 이권을 틀어 쥐고 있는 '철도방'에까지 미칠 전망이다. JP모건 홍콩 법인은 2007년 장수광 전 중국 철도부 부총공정사의 딸인 장시시를 채용했다. 비슷한 시기 중국 국영철도업체인 중국중철(中國中鐵)은 JP모건을 기업공개(IPO) 자문사로 선정했다. 또 리펑(李鵬) 전 총리의 장남 리샤오펑(李小鵬) 등이 장악한 '전력방'도 조만간 사정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국영기업 CEO가 처음으로 사정 당국에 소환됐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최근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쓰촨성 청두시의 가오신(高新)투자그룹 핑싱(平興) 이사장 겸 사장이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지방 국유기업인 가오신투자그룹은 1996년 설립된 뒤 건설, 과학기술, 무역, 투자 등 부문에 걸쳐 9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국유기업에 대한 제도적 개혁도 동시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위 관계자는 "대형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라며 "민간 투자자들이 국유기업 주식을 보유할 수 있게 해 국유기업 의사결정에 시장 논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민간 투자자들이 국영기업의 주식 10∼15%를 소유할 수 있도록 소유권 다변화 정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사정당국은 수개월 전부터 국제기구와 외국 정부의 협조 아래 중국인의 해외 자산을 추적하고 있다. 또 자산 도피 사범에 대한 처벌과 도피 자산 환수에도 나설 것이라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중국발 재계 사정의 후폭풍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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