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또 한번의 '빅딜'에 나섰다. 독일 공조기업인 '플랙트'를 15억 유로, 약 2조3700억원을 들여 인수하면서다.
이번 삼성전자 '빅딜'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세가지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사실상 사법리스크를 내려놓으면서 다시 적극적인 M&A에 나서고 있는 부분에 주목한다. 아울러 이번 '빅딜'이 하만처럼 성공적인 M&A로 이어질 지도 관심이다.
동시에 LG전자 역시 최근 공조 부문에 공을 들여온 상황이어서 다시 한 번 영원한 맞수 간의 '라이벌리'가 펼쳐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새 먹거리로 공조 방점
삼성전자는 14일 독일의 영국계 사모펀드 트라이튼이 보유한 플랙트의 지분 100%를 15억유로(14일 환율 기준 2조366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올해 중 이 계약을 마무리 해 플랙트를 완전히 품는다는 계획이다.
플랙트는 지난 1918년에 설립된 독일의 공조기기 업체다. △데이터센터 △박물관 △도서관 △공항 △터미널 △대형 병원 등 고객별 니즈에 맞춤형 제품 및 솔루션을 공급해온 유럽 최대 규모 공조기업이다. 플렉트는 냉각액을 순환시켜 서버를 냉각하는 액체냉각 분야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삼성전자 측은 생성형 AI, 로봇, 자율주행 등의 전 산업권으로 확산, 데이터센터 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공조 사업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 이 회사를 인수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글로벌 중앙공조 시장의 지난해 규모는 610억 달러 규모로 2030년까지는 990억 달러로 연 평균 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데이터센터 부문 전망치는 2030년 441억달러 규모로 연평균 18%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플랙트 인수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측은 시스템에어컨 시장 중심의 개별공조 제품을 중심으로 공조사업을 추진해 왔던 것을 더욱 확장해 공조 시장의 기반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은 "삼성전자는 AI, 데이터센터 등에 수요가 큰 중앙공조 전문업체 플렉트를 인수하며 글로벌 종합공조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라며 "앞으로 고성장이 예상되는 공조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속 육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시 돌아가는 JY M&A 시계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하만을 9조380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인수한 바 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등기이사 복귀 이후 주도했던 M&A라는 점에 주목받았다. 하만 인수는 이재용 회장이 직접 인수합병 후보를 물색하고 하만 본사를 방문해 최종 계약에 나서는 등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삼성전자는 이재용 회장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M&A에 나설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소극적으로 선회했다.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한두차례 M&A는 진행해 왔지만 규모가 크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대두되면서 최고 의사 결정의 부재가 일부 발생했고 이에 따라 하만과 같은 대형 M&A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M&A 시계는 올해 들어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다. 이달 초 삼성전자는 자회사 하만을 통해 미국 의료기기 기업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를 약 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더 큰 금액을 들이는 대규모 M&A에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 이재용 회장이 부당합병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사실상 사법리스크 족쇄에서 벗어났고 적극적인 M&A를 통한 사업 확장에 나설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선 관계자는 "아직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남았지만 삼성전자의 M&A 보폭이 이전보더 확실히 넓어졌음을 시사한다"고 봤다.
하만 성공방정식, 플랙트도 이을까
재계 등에서는 하만의 성공방정식이 플랙트에서도 이어질 지 여부를 주목한다. 하만의 지난해 매출은 14조4000억원, 영업이익은 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3조4000억원, 영업이익 3000억원을 올리면서 연간 영업이익 1조를 다시 한 번 달성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만 인수 초기만 해도 M&A를 놓고 실패 우려도 나왔다. 인수 직후에 영업이익이 574억원에 불과해서다. 이는 인수 직전 6000억원의 10분의 1수준이었다. 삼성전자는 10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하만을 20배 가량 성장시킨거다.
이는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극대화가 성공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만과 기존 삼성전자 사업 부문의 장점만을 갖춰 사업을 키워 나간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하만 인수 직후에는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지면서 '독이 든 성배'란 평가도 있었지만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극대화를 통해 지난해를 기점으로 하만이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꾸준히 낼 수 있는 계열사로 성장했다"라고 말했다.
플랙트 역시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해 삼성전자의 또다른 성장축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시스템 에어컨 등을 통해 공조 분야에 진출해 있는데, 여기에 플랙트의 액체냉각 기술이 더해지면서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싱즈를 통한 B2B 기업 솔루션과의 시너지 또한 이번 플랙스 인수가 주목받는 대목이다.
LG전자와 다시 한 번 '라이벌리'
업계에서는 이번 삼성전자의 '빅딜'이 맞수인 LG전자와의 본격적인 공조시장 경쟁을 촉발할 것으로 본다. 공조 시장이 점점 커지면서 LG전자 역시 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상태다.
LG전자는 최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냉방 공조 설비 공급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또 삼성전자가 인수한 플랙스의 거점 지역인 유럽에서의 사업 확장에도 속도를 내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삼성전자보다 앞서 이 시장에 투자를 확대해 온 만큼 LG전자가 우위에 있을 것이라는 평가와 삼성전자가 이미 유럽에 기반을 다진 플랙스를 인수하면서 판을 순식간에 뒤집을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동시에 나오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LG전자는 이미 액체냉각, 공기냉각 등 다양한 방식의 냉각공조 기술을 보유했고 최근 몇년간 B2B 기업 솔루션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해 온 상황이었다"라며 "삼성전자는 그간 공기냉각 중심으로 공조 사업을 펼쳤는데 플랙트 인수를 마무리하면 액체냉각 분야에서도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LG전자는 삼성전자의 플랙트 인수가 마무리 되기 이전에 최대한 많은 고객사를 선점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본다"라며 "삼성전자 역시 이 시장의 점유율 확보를 위해 추가로 어떤 움직임에 나서는 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