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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한계 너머…양자기술, 산업의 룰을 바꾼다

  • 2025.05.05(월) 15:00

[AX 인사이트 2.0] 김용수 KIST 양자기술연구단 단장 인터뷰
큐비트가 여는 '포스트 AI' 시대…신약·소재·보안 전방위 확장
반도체 기술로 특화 전략 모색…"전방위 추격보다 선택과 집중"

김용수 KIST 양자기술연구단장/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슈퍼컴퓨터로도 풀기 어려운 계산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AI)은 어떻게 진화할까. 그 상상력의 끝에 '양자기술'이 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 학계 및 산업계는 양자컴퓨터과 양자통신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양자·AI 융합 연구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미 구글·IBM·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양자 하드웨어를 활용한 AI 모델 실험을 진행 중이며 국내 연구기관들도 관련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있다.

양자기술은 여전히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그 원리는 우리 일상과 닿아 있다. 호수 위 겹치는 물결처럼 입자들이 움직이며 '중첩'과 '상쇄'를 반복한다. 이 현상을 계산과 통신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양자기술이다.

핵심은 '연산 단위'다. 기존 디지털 기술은 '비트(bit)'에 기반해 0 또는 1 하나의 상태만 처리하지만, 양자기술은 '큐비트(qubit)'를 통해 두 상태를 동시에 다룬다. 특히 양자컴퓨터 내 큐비트를 활용하면 AI의 복잡한 패턴을 빠르게 계산할 수 있다. AI 연산 구조의 양자화가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존 기술과 양자 기술의 차이./그래픽=비즈워치

갈 길은 아직 멀다. 큐비트는 극도로 민감해 오류 없이 제어하기 어렵고 이를 구현하는 장치 역시 극저온과 고진공 등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다만 양자 컴퓨터의 기술적 난제가 해결될 경우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최근 기술개발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는 점도 기대를 높이는 요소다.

김용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자기술연구단 단장은 "양자컴퓨터의 상용화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걸 부정할 수 없지만 최근 10년간 구글과 IBM 등 글로벌 기업의 대규모 투자로 인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기술이 발전해왔다"며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향후 양자컴퓨터 응용이 현실화한다면 계산 능력은 △신약 개발 △신소재 설계 △배터리 효율 예측 △항암제 개발 등 정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분야에 특히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의 양자 기술이 아직 초급 단계'라는 평가에 대해선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비슷한 한계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김 단장은 "지금은 4~5년 차이일 수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10년 이상 벌어질 수 있다"며 "미국은 구글·IBM 등 기업 주도형 모델, 중국은 판 지엔웨이 교수 중심의 국가 주도형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분산된 리더십과 부족한 산업화 체계로 인해 추격이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단순 시간적 차이가 아닌 투자 규모와 정책 집중도에서 오는 '구조적 격차'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돌파구는 있다. 그는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 공정 기술을 중심으로 양자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김 단장은 "큐비트 역시 일종의 정밀 소자"라며 "기존 반도체 인프라와 인력을 활용해 '국산 소자 기반의 양자 큐비트'를 개발한다면 한국만의 차별화 전략이 가능할 것이고 선진국의 양자 기술을 따라가기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특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래는 김 단장과의 일문일답.

'비트에서 큐비트로' 기술의 전환점

- 최근 국내외서 '양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을 잘 모르는 입장선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기도 한데.

▲ 과학에 대해 여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결국 '언어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자연을 기술하는 법칙은 통상 수학으로 설명되는데, 일상 속 우리는 말로 설명하려 하지 않나. 이렇게 두 언어가 다르다 보니 수학으로는 명확한 개념이 오해를 낳기도 한다. 양자가 대표적인 예다. 수학적으로는 '중첩'이나 '얽힘'이 분명하게 정의돼 있지만 말로 풀면 추상적이 된다. 

양자에서 핵심 개념은 '큐비트'다. 0과 1은 비트인데 이 두 상태가 중첩돼 있으면 '큐비트'가 된다. 말로만 들으면 "섞여 있는 건가?"라며 콩과 팥을 섞어놓은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큐비트는 실제 수학적으로 정의된 상태다. 

덧붙이자면 '중첩'이라는 개념은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가령 호수에 두 개의 돌을 던지면 두 개의 동심원 물결이 생긴다. 이들 물결 파동이 만나는 지점서 파동의 중첩이 생기는데, 두 파도의 마루가 만나면 더 높은 파도가 생기고 마루와 골이 만나면 서로 상쇄돼 물결이 사라지기도 한다. 파동끼리 겹치면서 증폭되거나 상쇄되는 중첩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양자 세계에서도 원자나 광자 같은 입자들이 이러한 파동적 특성을 실제 보인다. 양자와 관련된 주요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 순 있지만 막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또 기존 디지털 기술은 0과 1의 비트 기반이다. 컴퓨터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일련의 법칙에 따라 0을 1로, 1을 0으로 바꾸는 기계다. 그런데 큐비트는 0과 1 사이 중첩이 가능하니 이를 잘 활용하면 더 강력한 성능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생긴 것이다.

통신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통신은 0과 1의 정보를 보내는 거니까 비트를 큐비트로 바꿔서 보내면 더 나은 통신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양자기술'은 기존 비트로 하던 계산과 통신 등을 큐비트로 바꾸었을 때 얼마나 성능이 좋아지고,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걸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탐구하는 기술이자 학문이다.

'비트 vs 큐비트' 차이점

양자 기술과 디지털 기술의 가장 본질적 차이는 연산 단위에서 시작된다. 디지털 기술은 '비트'라는 최소 단위를 사용한다. 비트는 한 번에 오직 0 또는 1 중 하나의 값만을 가질 수 있어 수많은 비트를 직렬로 조합해 계산을 수행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스마트폰·노트북·서버 등 모두 비트 기반의 고전 컴퓨터다.

반면 양자 기술은 '큐비트'를 사용한다. 큐비트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인 '중첩' 상태를 활용,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가질 수 있다. 이론적으로 n개의 큐비트는 2ⁿ개를 동시 계산할 수 있다. 복잡한 연산을 병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지닌다는 얘기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연산 속도와 확장성에서 큰 격차로 이어진다. 비트가 선형적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면, 큐비트는 지수적으로 연산량이 확장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AI·신약 개발·금융 모델링 등 초고난도 문제 해결에 활용 가능성이 크다. 다만 큐비트는 외부 환경에 매우 민감해 오류 발생 가능성이 크다. 이를 보정하는 기술개발이 양자 컴퓨터 상용화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 양자 관련 대표 기술들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 우선 양자통신에서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기본적으로 큐비트는 아주 약한 빛, 즉 광자 하나하나에 정보를 실어 보낸다. 장점은 정보를 누군가 중간에서 훔쳐보려고 할 때 그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 특성을 이용해 이론적으로 완벽한 보안이 가능한 '양자암호통신'이 주목받고 있다. 이 기술은 양자기술 중 상용화에 가장 가까운 기술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선 KIST, ETRI와 같은 국가연구소는 물론 SK텔레콤, KT 등 통신사에서도 활발히 연구·개발하고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선 비트 두 개 분량의 정보를 하나의 큐비트에 실어 보낼 수도 있다.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다만 이 부분은 아직 상용화까지 갈 길이 다소 멀다는 과제가 남았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를 중심으로 '양자암호통신' 기술 상용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2018년 스위스 양자암호기술 기업 IDQ를 인수한 이후, 양자키분배 기술을 기반으로 금융·공공기관과 보안망 실증을 확대 중이다. KT는 양자암호 시범망을 구축하고 양자난수생성기 기반 솔루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G유플러스도 LG 계열사들과 협력해 사내 보안 시스템에 양자암호를 접목하고 있다.

아울러 '양자내성암호' 기술 확보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해킹 위협에 대비, 안전성을 극대화한 암호체계다. 양자암호통신과 병행 적용이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2023년부터 플래그십 갤럭시 스마트폰에 시험 적용을 도입했으며, 향후 모바일·가전·사물인터넷 제품군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양자와 인공지능(AI)간 상관관계는?

▲ AI와 접점이 생길 수 있는 분야는 양자컴퓨터다. 보통 양자컴퓨터는 '빠른 컴퓨터'로 많이 알려져 있다. 기존 컴퓨터와 기본 구조는 비슷하지만, 핵심적 차이가 비트 대신 큐비트를 쓴다는 점이다. 큐비트는 중첩이 가능해 이론적으로 더 강력한 계산이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비트나 큐비트를 생성-제어-측정하는 구조는 AI의 기본 메커니즘과 상통한다. 뉴럴 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입력된 비트에 가중치를 적용하고, 이를 학습을 통해 조정하는 과정으로, 결국 비트의 생성-제어-측정 구조를 따른다. 이 구조를 양자컴퓨터로 옮기면 비트를 큐비트로 대체해 큐비트의 생성-제어-측정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이때 큐비트의 중첩 특성을 활용하면 더 복잡한 패턴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 뉴럴 네트워크가 양자 뉴럴 네트워크로 진화할 수 있다. 이런 구조적 유사성 때문에 '양자 AI'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 수준의 양자컴퓨터로는 유의미한 양자 AI를 구현하기 어렵다. 양자 AI가 실질적인 혁신을 이루려면 양자 AI 알고리즘 연구와 함께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의 발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양자컴퓨터 특징./그래픽=비즈워치

"가능성과 한계 사이…양자 시대 현실 점검"

- 젠슨황 엔비디아 CEO는 올해 CES에서 양자컴퓨터 상용화 시기에 대해 "3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한 견해는?

▲ 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어렵다는 데에는 공감하는 편이다. 현재의 양자 기술들을 보면 우리가 꿈꾸는 수준의 양자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명확하다.

우선 큐비트 수가 많아야 하고 오류율은 매우 낮아야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극히 어렵다. 큐비트를 늘리면 오류가 커지고, 오류를 줄이려 하면 큐비트 수가 제한된다. 오류 정정 기술도 연구 중이지만 아직 확실한 해법은 없는 상태다. 심지어 기존 기술로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0년대 초반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최근 10년간의 발전은 너무나도 빠르다. 특히 구글이나 IBM 등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연구가 실험실을 벗어나 산업화 단계로 진입한 것이 크다. 학계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속도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양자 컴퓨터가 안고 있는 기술적 난제가 매우 크기 때문에 상용화까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하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빨라 예상보다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의 전망이 밝다고 생각하면 아직 박사 학위를 받을 준비가 안 된 것이다." 공부를 깊이 하다 보면 오히려 그 분야의 한계와 어려움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답변도 정답이라기보다는 한 연구자의 조심스러운 의견이라 봐주면 좋겠다.

- 향후 양자컴퓨터가 발달되면 궁극적으로 어떠한 활용이 가능할까.

▲ 양자컴퓨터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표적인 답은 '양자 현상을 이해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컴퓨터로는 슈뢰딩거 방정식처럼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복잡한 계산을 처리하기 어렵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자체가 양자 원리로 작동하므로 그런 계산을 더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계산 능력은 △신약 개발 △신소재 설계 △배터리 효율 예측 등 양자 수준의 정밀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분야에 특히 유용하다. 실제로 항암제 개발이나 고성능 배터리 소재 설계 같은 응용 분야에서 양자컴퓨터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양자 세상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장기적 목적이 양자컴퓨터의 진짜 잠재력이라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응용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글로벌 양자기술 시장 전망./그래픽=비즈워치

- 해외에 비해 국내의 양자기술은 아직 초급 단계로 알려진다.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 

▲ 국내 양자기술이 초급 단계라는 말은 맞다. 다만 비교 대상이 '해외 전반'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중국'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현재 양자기술 개발 속도가 빠른 국가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중국 외 유럽이나 일본, 호주 등과 한국의 기술 수준에 넘지못할 벽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과 미국·중국의 양자 기술 격차를 '몇 년 차이'로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이 올해 개발한 기술이 미국에서 5년 전에 개발된 것이라면 단순히 5년 격차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5년 뒤에 따라잡는다는 보장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현재 격차가 아주 크다고 보진 않고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훨씬 더 큰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며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4~5년 차이일 수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면 오히려 10년 이상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따라서 단순 '시간의 차이'가 아니라 투자 규모와 정책 집중도에서 오는 '구조적 차이'를 더 주목해야 한다.

- 미국 및 중국과 기술 격차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구조적 차이'로 설명했는데, 이에 대해 부연한다면?

▲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양자 기술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단순 기술력이나 투자의 규모만의 문제가 아니다. 리더십과 구조의 차이 때문이 크다.

이들 양국은 양자 기술을 끌고 가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미국은 자본주의 기반으로, 구글·IBM 등 대기업과 유망 스타트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예컨대 구글은 양자컴퓨터 프로젝트 초기에 UC 샌타바버라의 유명 교수진을 통째로 영입해 연구를 시작했다. 이처럼 기업이 존경받는 연구자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기술을 끌어간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리더십 모델이다. 중국과학기술대(USTC)를 중심으로 지안웨이 판(Jian-Wei Pan) 교수가 중심이 되어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노벨상 수상자 밑에서 학위과정을 밟은 후 귀국, 팀을 키우며 중국 양자기술의 중심 인물로 자리잡았다. 그의 리더십과 연구자들의 존경이 모여 일사불란한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실제 중국에선 USTC가 미국 구글이나 아이온큐가 발표한 연구를 빠르게 복제하고 대응하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양자기술을 끌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각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따르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비교해 한국은 리더십이 한 곳에 집중되기 어렵고 체계적인 지원 구조도 부족하다. 이는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다수 국가들이 겪고 있는 공통적인 한계다. 결국 기술 격차의 핵심은 기술력 자체보다 '탁월한 리더십이 기술과 인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환경이 있는가'의 여부라고 본다. 

주요 글로벌 기업 양자컴퓨터 실용화 개발 동향./그래픽=비즈워치

"한국형 양자기술, 반도체 기반 특화 전략이 해법"

- 양자기술 경쟁서 한국의 차별화 포인트는?

▲ 특정 분야 강점을 살려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반도체 공정 기술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분야다. 양자 컴퓨터 구현에도 반도체 기반의 정밀한 소자 기술이 필수적인데, 이 부분은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실제 현재 국내 연구단 중에도 기존 반도체 분야 전문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기업뿐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에서도 관련 인력과 장비가 잘 갖춰져 있어 기반은 충분하다.

결국 큐비트도 일종의 소자다. 반도체 기술을 접목해 '국산 소자 중심의 양자 큐비트 개발'에 집중한다면, 한국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양자 기술 전반을 모두 따라가려 하기보다는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특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큐비트 생성 시 오류 발생 이유

큐비트는 매우 민감하다. 큐비트는 0과 1의 중첩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상태는 매우 정교한 균형 위에 있다. 예컨대 0과 1이 일정한 결(phase)을 유지하며 움직여야 중첩이 유지되는데 조금만 어긋나도 중첩이 깨져버린다.

이러한 어긋남의 주된 원인은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열·진동·자기장·빛 등 미세한 외부 요인들이 큐비트에 영향을 주면 그 결이 흐트러져 정보가 손실된다. 특히 초전도 큐비트의 경우 열이 가장 큰 적이다. 열은 입자들의 진동이기 때문에 주변 온도가 높아지면 큐비트를 계속해서 '치는' 효과를 낸다.

이에 통상 초전도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절대온도 0K(−273도) 근처까지 냉각하는 냉장고 안에 넣어 운용한다. 때문에 큐비트를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하는 것이 오류를 줄이는 핵심이며 이를 위해 큐비트의 종류에 따라 △극저온 △초고진동 △전자기 차폐 등 기술이 함께 동원된다.

- 최근 KIST에서 추진 중이거나 연구·개발 완료한 양자 기술이 있다면? 

▲ 최근 진행한 주요 연구 중 하나는 '고전-양자 하이브리드 컴퓨팅'에 관한 것이다. 이상적인 양자컴퓨터, 예컨대 오류 없는 100큐비트 수준의 기기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상용화까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래서 현재 가능한 수준의 양자컴퓨터를 활용, 일부 문제만 양자로 계산하고 나머지는 고전 컴퓨터로 처리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가령 슈퍼컴퓨터가 대부분의 계산을 수행하되 고전적으로 풀기 어려운 특정 계산만 양자컴퓨터에 맡기는 방식이다. 이런 구조를 통해 완전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도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다른 분야는 양자통신이다. 광자에 정보를 실어 보내는 양자 암호통신은 원리상 안정적이지만 전송 거리에 제한이 있다. 현재 기술로는 약 50~100km가 한계인데 한반도 전체를 커버하려면 최소 500~1000km까지 확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KIST에서는 장거리 양자암호통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양자암호통신 기술의 상용화를 더디게 하는 걸림돌로는 아직 장비의 단가가 높다는 점이 있는데, 비용 효율을 높이는 기술개발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 양자 산업 본격 육성을 위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바라는 부분이 있다면?

▲ 양자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간·사람·연구비 3가지다. 이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생산의 3대 요소인 토지·자본·노동력과 유사하다.

현재 한국은 정부의 관심과 투자 덕분에 연구비는 충분히 확보되는 편이다. 하지만 정말 부족한 것은 연구공간과 인력이다. 양자 연구는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므로 고성능 실험 장비와 안정적인 환경을 갖춘 실험실이 반드시 필요하다. 대학이나 연구소는 자금이 있어도 공간을 쉽게 확보할 수 없다. 연구비는 대부분 지정 용도로만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박사 한 명을 기르는 데 최소 6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들이 양질의 연구를 지속하려면 안정적인 일자리와 연구환경이 보장돼야 한다.

최근 양자 관련 대학원이나 학부 과정도 확대되고 있지만, 문제는 양성한 인재가 미국이나 다른 기술 선진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충분한 공간과 자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한국의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아이디어와 열정은 많지만 학생들이 앉을 공간조차 부족한 현실도 심각하다. 단순 자금 지원만이 아니라 연구 공간과 인재 양성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는 정책적 인내와 균형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양자기술 관련 주요국가 정책 및 지원 방안./그래픽=비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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