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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 정비사업, 7년만에 생긴 표준계약서…훈풍 불까

  • 2023.11.29(수) 06:30

신탁방식 정비사업 표준계약서 확정
계약해지 자유·신탁재산 별도관리 등
안전장치에 주민들 경계심 사라질까

부동산 신탁사의 정비사업 참여가 허용된 지 7년 만에 '신탁 계약서 표준안'이 확정됐다. 주민들의 계약 해지가 자유로워지고 신탁 재산에 보호 장치가 생기는 게 골자다. 

이로써 주춤했던 신탁 정비업계가 다시 활기를 찾을 거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수수료는 협의 사항인 데다 예비신탁사 선정 절차 개선 등은 법 개정이 필요해 훈풍이 불기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신탁 방식도 안전장치 생겼다 

국토교통부는 주민·신탁사 간 공정한 계약 체결과 주민 권익보호를 위한 표준계약서 및 시행규정을 29일 지자체 등 이해관계자에게 배포한다고 밝혔다.

신탁 정비사업은 전문성을 갖춘 부동산 신탁사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사업을 맡기는 방식이다. 비리, 전문성 부족 등 조합 방식의 단점을 해소할 수 있어 관심을 받았으나 주민 권익 보호가 미흡한 점 등에서 한계가 제기됐다.▷관련기사:[신탁 재건축 Yes or No]④좋아 뵈는데 성공 단지 단 한 건?(10월5일)

이에 국토부는 지난달 신탁 계약서 및 시행규정 표준안을 마련하고 지자체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 28일 최종 확정했다. 신탁 정비사업에 표준계약서가 생긴 건 지난 2016년 신탁사의 정비사업 참여 허용 이후 7년 만이다. 

표준안은 △신탁계약 해지 △주민 재산권 보호 △사업 관리 △사업비 조달 △주민 참여 △사업종료 기한 △신탁보수 등을 규정했다. 

우선 그동안 불공정 항목으로 손꼽혔던 계약 해지 문턱을 낮췄다. 신탁 계약을 체결한 주민 모두가 계약 해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탁사가 계약 후 2년 내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지 못하거나 주민 75% 이상이 찬성하면 계약을 일괄 해지할 수 있게 했다. 

주민이 신탁한 부동산(신탁 재산)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마련했다. 신탁 재산은 신탁사 고유재산 등 다른 재산과 구분해 별도 관리하게 하고, 주민이 신탁한 부동산으로는 담보대출을 하지 못하게 했다.

신탁사의 역할도 강화했다. 건설사업관리(PM·CM)는 신탁사가 직접 수행토록 하고 용역 시행 시 신탁사가 비용을 부담하게 했다. 초기 사업비, 공사비 등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신탁사가 직접 조달하게 했다. 

정비사업에 참여하는 신탁사의 책임·참여 인력을 주민에게 제시하고 토지주 전체회의, 관리처분계획 공고계획 등 주민 의견 수렴이 중요한 기간엔 사업 현장에 신탁사 인력을 전담 배치토록 했다. 

신탁보수는 단순 요율 방식 외에도 상한액 적용, 정액 확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정하게끔 했다. 단순 요율 방식의 경우 추정 금액을 제시하게 했다. 

소유권 이전 고시 후 1년 내 사업비 정산 절차를 완료하도록 사업 완료 기한도 명확하게 규정했다. 

신탁방식 표준계약서·시행규정 주요 내용./그래픽=비즈워치

그래도 갈 길 멀다!

정비업계에선 이번 표준 계약서 마련으로 신탁 방식에 대한 경계심이 다소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갈등의 소지가 많은 데다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어 신탁 방식이 활성화되기까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표준안은 신탁 정비사업에서 주민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수수료의 경우 별다른 가이드라인 없이 주민과 신탁사 간 협의해서 수수료율을 정하게끔 했다. 

협의 사항인 만큼 갈등의 여지가 있는 데다 현장마다 수수료 책정 기준이 달라 합리적인 수준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울러 신탁 계약 해지가 자유로워진 만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 방식으로 갈아타는 단지들도 다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사업 불안정성이 커지는 셈이다. 

최근 불거진 예비신탁사 선정 과정의 투명성 문제는 법을 개정해야 한다.

국토부는 사업 시행자 지정 이전에 신탁사와 협약 등을 체결하는 경우 일정비율 이상의 주민 동의를 확보하고, 신탁사도 공개모집을 하는 등 공론화가 가능한 절차를 거치도록 법제화할 예정이다. 

신탁사가 사업시행 과정에서 뇌물 수수 등 형법을 위반하거나 전체회의 사전의결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등에 대한 벌칙 규정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최근 서울 주요 신탁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 잇달아 잡음이 나오고 있어, 표준안 마련만으로 쉽사리 온기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나온다.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의 경우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주민 단체가 둘로 나뉜 가운데, 동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탁사와 MOU를 체결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혼란이 생겼다. 

여의도 한양아파트는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이 사업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용지를 정비 계획에 포함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둔촌주공 사태, 공사비 갈등 등으로 신탁 정비사업 방식이 주목받다가 최근 잡음이 나오면서 다시 거부감이 생긴 상황"이라며 "표준계약서로 주민들의 경계심을 다소 낮출 순 있겠지만 그 영향이 제한적일 것 같다"고 봤다.

그러면서 "계약 해지의 경우 문턱이 낮아지긴 했지만 해지 시 손해배상 등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수료도 주민과 협의해서 정하는 것보단 시공사 선정 때처럼 경쟁 입찰해서 낮추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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