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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건에 대하여

  • 2025.06.19(목) 09:11

'수수료 없는' 자금보충약정에 180억 과징금?
"처벌 전례 없어"…제도 먼저 만든 뒤 개선해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홍상수 감독의 2015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1부 제목이다. 일정 기간의 시차를 두고 무언가 모순되는 상황을 설명할 때 이 영화 제목이 자주 인용되곤 한다. 건설업계에서도 최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상황이 연출됐다.

중흥그룹 사옥 전경/자료=중흥그룹 제공

지난해 기준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16위 중흥토건과 52위인 중흥건설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창업주 정창선 회장이 지분 76.74%를 보유한 중흥건설이 중흥토건에 무상으로 신용보강을 제공해 부당하게 경영권 승계를 완성했다는 취지다. 중흥토건은 2세인 정원주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건설사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과징금 180억원을 부과하고 중흥건설을 고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정위 자료를 자세히 살피면 아이러니하다. 공정위는 중흥건설이 2015년 7월부터 2025년 2월까지 10년간 24건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또는 유동화 대출이 실행될 수 있도록 총 3조2096억원 규모 연대보증 및 자금보충약정 등을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2015년 건설업계 순위로는 중흥건설이 39위, 중흥토건이 47위였다. 2년 뒤인 2017년부터는 중흥토건이 35위, 중흥건설이 39위로 순위가 바뀌었다. 10년 중 8년은 지원을 받았다는 중흥토건이 지원을 해준 중흥건설보다 큰 회사였던 셈이다. 강산이 바뀔 시간 동안의 변화를 무시하고 공정위는 제동을 걸었다.

공정위의 칼날은 과연 '공정'했을까. 공정위의 이번 제재는 여러 측면에서 허점이 있어 보인다.

첫 번째 구멍은 자금보충약정에 대한 인식 차이다. 공정위는 자료에서 신용보강에 대해 "시공사가 시행사로부터 공사 물량을 도급받고 해당 시공 이익을 확보하는 대가로 신용보강을 제공하는 것이 업계의 통상적인 거래 관행"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보충약정의 경우 오히려 별도의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대부분 사업 수주를 위해 부가적으로 제시하는 약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금보충이라는 행위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용보강 방식 중 하나인 연대보증의 경우 연대보증약정 체결과 동시에 보증채무가 발생한다. 반면, 자금보충약정은 '후순위 정지조건부 금전소비대차'로 자금보충 사유가 발생해야만 채무로 인식된다. 실제 신용평가 과정에서도 연대보증은 우발채무로 잡히지만 자금보충약정은 반영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자금보충약정은 중흥토건-중흥건설과 같은 특수관계가 아닌 별개의 기업이더라도 필요 시 이뤄져왔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도 수수료 지급과 같은 거래 관행은 없었다.

실제 PF 시장에서 수수료 지급 없는 자금보충약정 사례는 무수히 관측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7월 1일부터 2025년 5월 18일까지 자금보충약정 사례는 2만8000여건에 달한다. 그러나 공정위가 이에 대해 부당하다고 지적한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총 24건 신용보강 사례 중 5건으로 지적된 연대보증에 대해서도 중흥건설은 무대가가 아닌 이자 수익, 브랜드 이용 수수료, 시행 및 시공사업 참여 기회 등 다양한 유·무형의 반대급부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 모순은 혹여 이 같은 행위를 부당하다고 간주한다 하더라도, 제도적인 공백을 단순히 한 기업의 일탈로 규정할 수 있냐는 점이다.

앞서 언급대로 수수료 지급 없이 이뤄진 자금보충약정 사례는 약 3만건에 이른다. 여태껏 선례가 없었음에도 중흥건설과 중흥토건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익편취'라는 틀에 끼워맞춰져 과징금을 부과받게 됐다.

중흥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에서 관행으로 확립된 거래 방법에 개선이 필요할 경우 제도를 손봐야지, 특정 기업에 대해 소급해서 제재하는 방식에다가 이례적으로 형사고발까지 이뤄진 것은 과도하다"고 바라봤다.

이 같은 부당한 제재가 반복될 경우 가뜩이나 가시밭길을 걷는 중인 건설업계가 더욱 침체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우려한다. 이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침체되고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건설업계를 비롯해 경제에 큰 혼란과 어려움이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짚었다.

공정은 원칙에 의해 이뤄진다. 원칙 없는 공정은 공염불과 같다. 기준 없는 제재에 시장은 혼란만 가중된다. 뒤틀린 시장을 바로잡고 싶다면 채찍보다는 원칙 확립에 집중해야 할 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주먹구구식 제재는 애꿎은 피해자를 양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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