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임대 이주→영구임대 재건축→분양아파트 이주→분양아파트 재건축→?'
정부가 1기 신도시(일산·분당·중동·평촌·산본) 재건축 이주 대책 중 하나로 '영구임대' 주택을 활용키로 했답니다. 저밀도의 영구임대 아파트를 먼저 재건축해서 1기 신도시 이주민에게 공급하겠다는 거죠.
결국 재건축 이주 수요를 또 다른 재건축으로 감당하겠다는 구상이라 우려가 벌써부터 나옵니다. 기존 입주민 이주, 재원 마련 등이 첩첩산중이라 정부의 계획대로 1기 신도시 정비사업을 빠른 속도로 이뤄낼 수 있을지 미지수고요.
하지만 영구임대 아파트 역시 늙어가고 있는 만큼 재건축 숙제를 안고 있긴 합니다. 이번 기회에 탈바꿈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죠. 과연 '영구임대 재건축' 카드가 1기 신도시 '2027년 착공' 목표에 일조할 수 있을까요?
재건축 히든 카드 '영구임대주택'
국토교통부는 이달 14일 '노후계획도시정비 기본방침(안)'을 공개하면서 이주 대책 중 하나로 영구임대 재건축 계획을 밝혔습니다. ▷관련기사: 재건축으로 '중동 2.4만·산본 1.6만가구' 늘린다(8월14일)
국토부에 따르면 1기 신도시 내 우수한 입지에 영구임대 주택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밀도가 낮아 신규 주택 공급에 유리하고 일반 정비사업에 비해 사업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주 대책으로 제시됐습니다.
현재 1기 신도시 내 영구임대주택은 △고양일산 2282가구(문촌7·문촌9·흰돌4) △성남분당 5867가구(목련1·청솔6·하얀6·한솔7) △부천중동 1881가구(덕유1·한라1) △안양평촌 489가구(부흥관악) △군포산본 3431가구(산본가야5단지2차·매화14·주몽10) 등 총 1만3950가구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 13일 관련 백브리핑 자리에서 이들 아파트의 입지에 대해 "기가 막힌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입지에 순환 정비할 수 있는 축만 만들어낼 수 있으면 신도시 순환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죠.
특히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보다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는데요. 개별 소유자들로 구성된 일반 정비사업과 달리 영구임대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모두 소유하고 있거든요.
소유주가 많을수록 의견 합치가 힘들고 개별 보상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요. 영구임대 재건축의 경우 입주민들의 협조만 끌어낸다면 통상 10년 걸리는 정비사업보다는 사업 기간을 앞당길 수 있을 거라고 본 거죠.
국토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사업 기간이 오래 걸리는 게 이주인데 (영구임대 재건축은) 부지가 LH 단독 소유자라 이주 문제가 해결되면 금방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어요.
아직 개발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는데요. 영구임대 대부분이 저밀도인 만큼 재건축을 통해 용적률을 올리면 꽤 많은 가구의 이주 수요를 감당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전망입니다.
국토부는 영구임대 주택을 고밀 주상복합으로 재건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영구임대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 개선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역민들이 꺼려 왔던 영구임대를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등을 넣은 고밀 공간으로 탈바꿈해 오히려 지역의 '복덩이'로 만들겠다는 거죠. 국토부 관계자는 "단순히 공공임대만 공급하는 게 아니라 주상복합, 공공·민간 등 다양한 형태로 공급해서 추후에도 주택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복덩이 만든다고?…"디테일한 대책 필요"
하지만 영구임대가 '복덩이'가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LH 단일 소유라고 해도 재건축을 하려면 기존 입주민의 동의를 얻고 이주를 먼저 진행해야 하는데요. 첫 관문부터가 난항이 예상되거든요.
영구임대주택은 임대 기간이 50년 이상 혹은 영구적인 공공임대주택 유형인데요. 국민 임대주택 등 다른 공공임대주택보다 임대 기간이 길고 보증금이 저렴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등이 주로 거주합니다.
비교적 자금 여력이나 사회 활동이 적은 입주민이 많기 때문에 주거 이동이 제한적이죠. 준공 30년이 훌쩍 넘은 영구 임대 단지들이 더러 있지만 아직 재건축 사례가 없는 이유기도 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영구임대 재건축은 이전부터 시도가 있었지만 입주민들이 원치 않아 번번이 무산됐다"며 "LH에서 무료 리모델링을 하려고 해도 공실이 생길 때 호실별로 쪼개서 한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대책이 오히려 영구임대 입주민들에게 주거 불안을 조성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실제 공공임대 커뮤니티 등에선 "임대주택 입주민에게 불똥이 튀었다. 이래서 내 집이 있어야 한다"는 글들도 올라오고요.
재건축 이주 수요를 재건축으로 감당한다는 점도 눈총을 받습니다. 가뜩이나 재정적 압박이 큰 LH가 큰 재원을 써야 하는 데다, 재원 낭비로 보는 시각도 있고요.
다만 영구임대 말고는 이주 수요를 감당할 묘수가 없는 데다, 영구임대 역시 준공 기한이 오래된 만큼 재건축 필요성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죠. 이에 전문가들은 원활한 재건축 진행을 위해선 더 섬세한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관련기사:[인사이드 스토리]임대아파트도 재건축 한다고요?(2023년 5월26일)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기존 임대주택 입주민들의 계약 형태나 개개인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주가 쉽게 되기 힘들 것"이라며 "언제, 어느 단지를, 얼마나 재건축해 이주시킬지 세밀하게 계획을 짤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이재춘 국토연구원 주거정책연구센터장은 "1기 신도시는 1990년대 초부터 입주해 조성된 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시설이 노후화됐다"며 "영구임대도 1989년부터 건설됐기 때문에 재정비나 대수선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함께 재정비하는 게 맞다"고 짚었습니다.
그는 "입주민 동의율 등을 고려해서 단지별로 재건축, 리모델링, 장사용 등을 개별적으로 적용하면 순조롭게 추진할 수 있다"며 "조합 설립 등에 쏟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빠르면 5~7년 안에 입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장 이주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영구임대 증축으로 주택 수를 확보하는 게 유일한 방법으로 보이고, 이는 주거 안정이라는 목적과도 부합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만 영구임대를 재건축해서 임대와 분양을 섞는다면 가격, 품질, 주민 반감 등의 문제에서 상충되는 게 없는지 세밀하게 봐야 할 것"이라며 "향후 후속 대책이 나올 땐 더욱 디테일한 내용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