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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김용준의 골프 규칙]②시합 중 볼이 떨어졌다!

  • 2019.11.15(금) 08:00

[골프워치]
빌릴 수 있지만 같은 모델 같은 색깔이어야
못구하면 기권할 수밖에…미리 넉넉하게 준비를

경기 중에 볼이 다 떨어졌다면 누구에게든 빌릴 수 있다. 뱁새 김용준 프로처럼 맘씨 좋은 경기위원이라면 사다 줄 지도 모른다고? 글쎄다! 그걸 믿고 경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시시콜콜]은 김용준 골프 전문위원이 풀어가는 골프 규칙 이야기다. 김 위원은 현재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이자 경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경기위원 교육과정 '타스(TARS, Tournament Administrators and Refree's School)'의 최종단계인 '레벨3'를 최우수 성적으로 수료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김 위원이 맛깔나게 풀어갈 [시시콜콜]은 매주 한 차례씩 독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편집자]

골프 황제 잭 니클라우스(79)는 겸손했을까? 다음 얘기를 다 듣고 독자가 직접 판단하기 바란다.

내 아버지와 동갑 니클라우스가 나이를 적잖게 먹었을 때 일이다. 속 없는 청년 니클라우스 때 얘기가 아니라. 그 일이 있던 그 대회 때 그의 아들이 캐디를 맡았으니 말이다.

마지막 라운드 서너 홀쯤 남았을 때다. 파5 홀이었다. 니클라우스는 물을 건너서 투 온 시키기에는 제법 부담스러운 거리인 세컨 샷을 남기고 있었다.

니클라우스가 아들인 캐디에게 3우드를 달라고 했다.

“아버지, 끊어가는 게 어떨까요”라고 그의 아들이자 캐디가 조언을 했다.

“무슨 소리야 충분히 넘길 수 있어”라고 아버지이자 선수는 자신 있게 얘기했다.

“사실은 그게 마지막 볼이에요”라고 캐디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여태 잃어버린 게 두 개 밖에 안 되는데”라고 아버지 니클라우스가 따졌다.

“아버지가 아침에 볼 세 개면 충분하다고 하셨잖아요”라며 머쓱해 하는 캐디.

“아니 진짜로 볼을 세 개 밖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거니”라며 나무라는 선수.

"네"하고 캐디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쩝' 하고 입맛을 다신 니클라우스는 짧은 아이언으로 물 앞에까지 볼을 보낸 다음 세번째 샷으로 그린에 올렸다. 그런 뒤 무사히 그 홀을 마쳤다. 물론 남은 몇 홀도 얌전히 쳐서 경기를 끝냈고.

진짜로 있었던 일이다. 아침에 ‘볼을 몇 개나 준비할까요’라고 묻는 아들에게 ‘세 개면 충분하다’고 말한 것은 분명 황제다운 자신감이었을 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그가 그 마지막 볼마저 물에 빠뜨렸다면? 기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큭큭' 거리며 들은 이 일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지난주 유러피언투어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볼을 다 잃어버린 선수가 기권을 했다. 이 일로 여러 사람이 내게 해당 규칙에 대해 물었다. 볼이 떨어지면 빌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당연하다. 주변에서 빌리면 된다.

그런데 단서가 붙는다. 우선 볼이 같은 회사 같은 모델이어야 한다. 같은 회사 제품이라도 모델이 다르면 쓸 수 없다는 얘기다. 여기서 '모델'이라는 말은 색깔도 구분한다. 같은 종류 볼이라도 색깔이 다르면 다른 모델로 친다. 녹색 볼을 쓰다가 다 잃어버렸는데 옆에서 같은 제조사 같은 종류 흰 볼을 빌려줘봤자 쓸 수 없다는 얘기다.

볼 번호는 상관 없다. 1번을 쓰다가 2번을 얻어 써도 된다. 나같은 경기위원이 빌려줘도 되냐고? 된다. 심판들은 코스를 돌아다니다 가끔 러프 등에 있는 로스트 볼을 줍기도 한다. 절대 버리기 아까워서 줍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경기위원 체통이 있지. 어디까지나 선수가 자기 볼과 헷갈려 엉뚱한 볼을 치는 손해를 볼까봐 그러는 것이다. 사고 예방 차원이란 얘기다. 선수가 볼을 다 잃어버려서 쩔쩔매면 그런 볼을 빌려줘도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물론 로스트 볼이고 보니 품질 보증은 못하지만.

빌릴 수 있다면 '프로샵에 가서 볼을 사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당연히 나온다. 그렇다. 사올 수 있다. 단, 경기를 지연시키지 않는다면. 그런데 선수나 캐디가 경기를 지연시키지 않고 프로샵까지 갔다 올 수 있을까? 축지법을 쓰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볼이 한 두 개밖에 남지 않았을 때 미리 누군가에게 부탁해야만 가능한 방법인 셈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처럼 맘씨 좋은 경기위원에게 부탁을 하면 어떨까? 혹시 본부에 있는 누군가에게 볼을 사오게 부탁해 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믿고 시합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볼은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기본이다. 니클라우스 같은 절정 고수면 몰라도.

참, 오늘한 것은 어디까지나 공식 대회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것도 '원볼 원칙(한 종류 볼만 쓰도록 정하는 것)'을 채택한 경기에만.

김용준 골프전문위원(더골프채널코리아 해설위원 겸 KPGA 경기위원 &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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