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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과 쿠팡…'갑 대 갑' 싸움의 결말은?

  • 2022.12.10(토) 10:05

[주간유통]CJ제일제당·쿠팡 '햇반 발주' 충돌
8일부터 쿠팡에서 '햇반' 로켓배송 물량 품절
내년 협상은 ing…연말 전에는 화해 전망돼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갑 대 갑

"서로 자기들이 을이라는데…그냥 갑끼리 싸우는 것 아닌가요?"

쿠팡과 CJ제일제당이 벌이고 있는 '햇반 전쟁'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 유통업계 관계자가 해 준 말입니다. 매출 20조원을 돌파한, 이커머스의 대명사 쿠팡과 CJ라는 재벌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이 자신을 '을'이라 지칭하는 게 조금 어색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양 사는 최근 CJ제일제당의 즉석밥 햇반을 놓고 '한 판' 붙었습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쿠팡이 갑자기 햇반과 비비고 만두 등 CJ제일제당의 주요 품목에 대한 발주를 중단합니다. 이에 대해 CJ제일제당은 내년 마진율 협상에서 과도한 요구를 하던 쿠팡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쿠팡에서 CJ제일제당 제품을 팔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전형적인 '유통사 갑질'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쿠팡의 입장은 또 다릅니다. 마진율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은 맞지만 이번 발주 중단은 마진율 협상과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CJ제일제당이 압도적 시장 1위 브랜드인 햇반의 힘을 믿고 '갑질'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CJ제일제당이 올해 내내 발주한 물량의 50~60%만 보내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겁니다. 발주 중단 역시 수차례 납품량을 맞추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슈가 발생한 지 1주일쯤 지난 8일부터 쿠팡 로켓배송에서는 더 이상 햇반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로켓배송으로 구할 수 있는 햇반 시리즈는 비인기 제품인 잡곡밥 정도입니다. 햇반이 차지하던 자리는 쿠팡에 입점한 개별 판매자가 판매하는 제품과 경쟁사들의 즉석밥 뿐입니다. 내일 당장 햇반이 배달되길 원하던 분들에게는 참 불편한 상황입니다.

진짜 '갑'은 누구?

양 사의 이야기는 모두 그럴듯해 보입니다. 보통 업계에서 제조사와 채널 간 다툼이 벌어질 경우 불리한 건 제조사입니다. 대형마트가 수차례 갑질 논란에 휩싸인 것 역시 채널이 가진 힘 때문이었죠. 특히 가격 대비 무겁고 부피가 큰 햇반은 이커머스가 몹시 중요한 판매처입니다. 그 중에도 분기 매출이 6조원을 웃도는 쿠팡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체 햇반 판매 중 쿠팡이 차지하는 비중이 30%라니 말 다 했죠. 이런 쿠팡이 햇반 판매를 틀어막으면 CJ제일제당으로서는 '갑질'이라 생각할 만도 합니다.

쿠팡은 분기 매출 6조원이 넘는 초대형 이커머스다./그래픽=비즈니스워치

CJ제일제당의 주장에서 핵심 키워드는 '마진율'입니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이 '말도 안 되는' 마진율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쿠팡이 주장하는 마진을 맞춰 주면 적자를 볼 만한 요율이라는 겁니다. 이미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의 마진율을 요구했지만 들어줄 수 없었고, 올해에도 거부하자 '발주 중단'이라는 초강수가 나왔다는 거죠. "진짜 과도한 마진을 요구했냐"는 질문에 쿠팡은 "마진율 관련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의심스럽긴 하죠.

쿠팡은 '전적'도 있습니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쿠팡에 3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이유는 '갑질'이었습니다. 갑질 대상에는 LG생활건강, 한국P&G, 매일유업, SK매직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들이 포함됐습니다. 공정위가 대기업 제조사와 이커머스 중 이커머스가 '갑'이라는 걸 인정한 셈입니다. 

까마귀 날자 떨어진 배

하지만 CJ제일제당도 보통 제조사는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번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햇반은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압도적 1위 브랜드죠. '밥에 진심'인 한국인이 선택한 브랜드답게, 충성도도 매우 높습니다. 쿠팡에서 햇반을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오뚜기밥이나 쎈쿡, 더미식밥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이커머스나 대형마트에서 햇반을 구매합니다. 쿠팡이 판로를 틀어막았다고 굶어죽는 '불쌍한 제조사'가 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쿠팡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만, 또 그 사람들이 다 '쿠팡만' 이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서너개의 이커머스 중 그때그때 할인 행사가 있는 곳을 골라 쇼핑합니다. 햇반처럼 '대체불가' 자원의 경우 말할 것도 없습니다. 쿠팡이 햇반을 팔지 않으면, 바로 다른 이커머스를 찾으면 됩니다.

햇반은 즉석밥 시장의 압도적 1위 브랜드다./그래픽=비즈니스워치

 
실제 쿠팡이 발주를 중단하자마자 마켓컬리·11번가·위메프 등 주요 이커머스들은 'CJ제일제당 특가전'을 열고 햇반 할인 판매에 나섰습니다. 쿠팡에서 흘러나온 '햇반족'을 잡기 위한 거죠. 햇반만 예시로 들었지만 CJ제일제당의 라인업에는 비비고 만두, 컵반덮반, 고메 핫도그 등 인기 상품이 무수히 많습니다. 

쿠팡은 주문량이 늘어 발주량을 맞추지 못한 것이라는 CJ제일제당의 해명도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쿠팡과 CJ제일제당은 전년도 말에 다음해 분의 발주량을 협의합니다. 그런데 새해가 돼서야 판매가 늘었으니 약속한 물량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을'의 행보로는 좀 어색합니다.

칼로 물 베기

이 싸움이 오래 갈 것으로 보는 관계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일각에서 양 사의 분쟁을 '부부싸움'으로 부르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금방 화해할 거라는 거죠. 발주 중단 이슈는 본질적으로 '협상'의 일부이며 양 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거래처이기 때문에 곧 타협을 이룰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그러고 보니 각자 자신의 업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거인들이 서로 자신이 '을'이고 상대가 '갑'이라며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것도, 한 쪽은 마진율, 한 쪽은 납품률 이야기만 하면서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부부싸움과 비슷해 보입니다. 곧 화해가 이뤄진다면 '칼로 물 베기'는 정말 더할 나위 없는 비유가 되겠죠.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갈라서는 계기가 되는 게 또 부부싸움입니다. 3년 전 쿠팡과 '부부싸움'을 펼쳤던 LG생활건강은 아직까지도 쿠팡에서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죠. 부디 쿠팡과 CJ제일제당은 '끝'까지 가는 관계가 되지 않길 바라 마지 않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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