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홈쇼핑 업계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송출수수료 인상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홈쇼핑사들이 방송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홈쇼핑사가 자체적으로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갈등의 본질은 급격히 떨어진 TV의 영향력입니다. 유튜브와 OTT 시청층이 늘면서 홈쇼핑 실적은 악화일로죠. 반면 송출수수료는 계속 오른다는 게 홈쇼핑 업계의 항변입니다. 그간 '참을 만큼 참았다'는 입장입니다. 앞으로 위성방송, IPTV로도 갈등이 번질 거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중재에 나선 정부도 난색을 표하며 갈등 해결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 TV보던 '옛날'이여
최근 CJ온스타일·현대홈쇼핑은 케이블 방송사 LG헬로비전에 다음달 말부터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현실화하면 서울·경기·강원·충남·경북 등 23개 일부 지역에서 LG헬로비전으로 유료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이들 채널을 볼 수 없게 됩니다. 해당 지역의 LG헬로비전 가입자는 368만 가구로 추정됩니다. 앞서 롯데홈쇼핑 역시 딜라이브 강남 케이블티비에 다음달 방송 송출을 중단하겠다고 고지했죠.
갈등의 씨앗은 치솟은 송출수수료입니다. 송출수수료는 홈쇼핑 업체가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내는 비용인데요. 쉽게 말해 일종의 '채널 자릿세'입니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업계의 송출수수료는 연평균 8%씩 상승해 지난해 1조9065억원에 달했습니다. 이는 당시 업계가 판매한 상품 금액 총합 대비 65.7%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업계는 매년 매출의 절반 이상의 금액을 유료방송사업자에 송출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는 겁니다.
홈쇼핑사들은 TV시청자가 줄어든 만큼 송출수수료도 낮춰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령별로 방송매체 이용행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상의 필수 매체'로 TV로 꼽은 비율이 60대는 72.8%→52.5%, 50대 50.2%→31.8%, 40대 23.8%→9.2%로 매년 감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의 영향력은 개인방송 등 뉴미디어 콘텐츠의 범람으로 갈수록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유료방송가입자수 증가율은 사상 처음으로 '1% 미만'을 기록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6개월 평균 3624만8397명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는 상반기 대비 24만명이 증가한 것으로 0.67%의 증감률에 그칩니다. 사실상 이젠 가입자가 거의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이젠 더이상 못 참는다"
홈쇼핑 업계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TV 시청층은 줄고 송출수수료 부담은 커져서 실적이 연일 하락세거든요. 실제로 현대홈쇼핑의 연간이익은 2020년 1557억원에서 지난해 1127억원으로 200억원이 감소했습니다. CJ온스타일도 연간 영업이익이 2020년 1798억원에서 지난해 878억원까지 떨어졌습니다. 롯데홈쇼핑은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방송법 위반에 따른 새벽방송 중단 여파까지 겹쳐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60억원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년 동기(590억원) 대비 89.8% 하락한 수치죠.
이 때문에 홈쇼핑 업계는 미리부터 '탈(脫) TV’ 전략을 구사해왔습니다. 라이브커머스, 자체브랜드(PB) 사업 등이 대표적이죠. TV 방송 매출 비중을 줄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TV홈쇼핑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홈쇼핑 업계의 방송 매출액 비중은 전체의 49.4%로 처음으로 50%를 밑돌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료방송사업자 중 '가장 약한' 케이블TV가 송출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하니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겁니다.
특히 홈쇼핑 의존하던 중소기업·소상공인도 더이상 TV의 편이 아닙니다. 이들은 정부의 '홈쇼핑 중소기업 의무 편성비율'을 통해 그동안 홈쇼핑을 주요 채널로 활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부턴 인플루언서를 통한 라이브커머스나 자체 유튜브 등 뉴 미디어에 힘을 주고 있죠. 섭외비 정도만 투자해도 되고 자체 콘텐츠는 추가 수입이 될 수 있습니다. 판매 수수료로 매출의 30%를 떼이는 홈쇼핑보다 더 경제적 선택일 겁니다.
이처럼 방송사업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치이는 게 지금의 홈쇼핑입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저항에 나설 이유는 충분했던 거죠. 물론 유료방송사업자들은 물가상승률 등을 근거로 매년 송출 수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젠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룰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게 홈쇼핑사들의 항변입니다. 사실 이번 송출수수료는 갈등의 극히 일부입니다. TV시대 생겨난 각종 정부 규제에 대한 개선 요구도 많습니다.
이처럼 복잡한 사안이 얽힌만큼 해법 마련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정부도 나섰지만 출구는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3월 홈쇼핑 수수료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내놨지만 세부 지침도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큽니다. 오히려 그동안 케케묵었던 홈쇼핑 업계와 유료방송사업자간 갈등이 더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죠. 홈쇼핑 업계의 이유있는 항변은 과연 통할 수 있을까요. 함께 지켜보시죠.
[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