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는 것까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기르나요. 경력 단절될까봐 고민되네요." 직장인 A씨.
경력 단절과 육아 부담을 고려해 출산을 기피하는 저출산 사회에 접어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합계출산율은 0.78명, 출생아 수는 24만9000여명을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합계출산율은 2013년 1.19명에서 2015년 1.24명으로 늘었다가, 그 이후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 가운데 기업들이 출산·양육을 보장하는 가족친화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직장어린이집 설립 △난임 치료 지원 △유연근무제 등을 운영하는 식이다. 회사 구성원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인력 유출로 인한 손실을 막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는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경영 측면에서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본사 인근에 '우아한2어린이집'을 개원했다. 2020년 어린이집을 개원한 지 3년 만에 연 두 번째 직장어린이집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구성원들의 어린이집 수요도 늘어나 제2어린이집을 개원하게 됐다"라며 "단순히 어린이집을 하나 더 짓는 게 아닌, 구성원들의 보육 부담을 덜어 좀 더 일하기 좋은 회사로 만들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우아한형제들의 전체 직원 수는 2000여명이다. 어린이집 원생 수는 42명, 교직원 수는 25명이다. 앞서 운영 중인 제1어린이집은 정원 대비 넉넉한 공간 구성과 보육교사 인원 책정으로 보육환경, 안전 등에서 높은 만족도를 나타났다. 매년 진행되는 자체 만족도 평가에서 모든 항목에서 5점 만점에 4점대 후반을 기록했다.
투명한 운영을 위해 직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한다. 이렇다 보니 제1어린이집은 개원 첫 해에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선정하는 ‘더 자람 보육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사내 문화 전반에 '가족'을 강조한 점도 주목할 점이다. 우아한형제들은 글꼴(폰트)을 출시해 왔는데, 그동안 출시했던 글꼴에 임직원 자녀의 이름을 반영해 짓고 회의실명에 임직원들의 자녀 이름을 넣기도 했다.
또한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아이를 키우는 전 과정에 걸쳐 지원한다. 난임휴가와 난임치료비 지원은 물론 임신한 구성원은 임신 기간 내내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예비엄마·아빠 모두에게 정기검진휴가를 부여한다. 출산 시에는 산후조리원비를 지원한다.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특별 휴가제도도 있다. 초등학교 및 미취학 자녀가 있는 직원에게 어린이날 전후로 '우아한어린이날'이라는 특별 휴가를 부여한다. 어디든 사람이 몰리는 어린이날을 피해 자녀와 특별한 시간을 보내라는 취지다.
또 입학식, 졸업식, 운동회, 학예회 등 자녀의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날에 참석할 수 있도록 휴가를 제공한다. 연간 주어지는 연차와 별도의 휴가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가 있는 직원은 재직기간 중 1회 한 달간 자녀와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특별 육아휴직'이 주어진다. 특별 육아휴직은 직원 만족도가 높은 제도 중 하나다.
실제 우아한형제들의 한 직원은 "자녀가 18개월일 때 특별육아휴직으로 하와이 한 달 살기를 했다"라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특별한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난임치료 지원부터 육아휴직 지원까지
이처럼 기업들은 직원 복지를 위해 직장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추세다. 근로복지공단이 집계한 전국 직장어린이집 현황에 따르면 공기업, 사기업 등을 모두 합친 직장어린이집 수는 작년 기준 1291개다.
사기업 중에는 △삼성 △SK △현대 △LG △롯데 △포스코 △CJ △GS △아모레퍼시픽 △오뚜기 △이랜드 △카페24 △KT&G △풀무원 △홈앤쇼핑 △효성 △셀트리온 △기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KCC △LX하우시스 △신한지주 △BNK금융지주 △IBK기업은행 △KT △유한양행 등이 직장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작년에 새로 문을 연 직장어린이집은 63개다. 그중 하나인 KT&G는 2016년 대전 신탄진공장에 이어 작년 9월 서울사옥에도 어린이집을 마련했다. KT&G 어린이집은 만 0세(돌 이후)부터 등록 가능하다. 신탄진공장 어린이집은 지난 2016년 개관해 원생 14명, 이용직원 13명이 등원 중이다. 서울사옥엔 직원 21명의 자녀 19명이 등원 중이다.
또 KT&G는 출산을 앞두거나 육아 여성 직원의 원활한 근무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난임 구성원에 대한 난임치료 휴가 및 시험관 시술비 지원 △임신기 출산휴직(임신사실 확인일~출산 전) 및 출산휴직 지원금 지원 △출산 후 산후조리원비 및 출산 축하선물 지원 △산전 및 산후 휴가(출산휴가) 사용자 대상 육아휴직 자동 전환 △육아휴직 2년차까지 육아휴직 지원금 지원 △육아에 따른 경제적 부담 경감을 위한 6세 미만 자녀에 대한 보육지원금 지원 등이 있다.
홈앤쇼핑도 작년 3월 서울 강서구에 '홈앤쇼핑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만 1세부터 만 5세까지 영아 및 유아교육이 통합된 보육시설로, 한솔어린이보육재단의 위탁 운영을 통해 전문적인 보육 및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CJ제일제당은 'CJ키즈빌 어린이집'을 2011년 서울 중구에 개원했다. 이후 서울 마포구·서초구, 경기 수원에도 어린이집을 열면서 현재 4곳을 운영 중이다. CJ키즈빌의 원생 수는 95명이다.치열한 경쟁 뚫어야
물론 직장어린이집을 여는 기업들의 노력에도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취학 자녀를 둔 직장인들의 고민 중 하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하원이다. 하원 시간이 이른 경우 자녀를 돌보기 위해 일찍 귀가해야 한다. 일을 중간에 마치고 퇴근할 수 없어 곤란한 상황이 생기거나 아이돌보미를 고용하는 이들도 다수다.
직장어린이집의 운영시간은 구성원의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 통상 12시간이다. 우아한형제들과 KT&G, CJ제일제당의 어린이집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한다. CJ제일제당은 저녁 식사도 제공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전체 원아의 95%가 저녁을 이용하고, 부모들 또한 식단 수준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경쟁도 치열하다. 수용 가능한 인원에 비해 자를 보내고 싶어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점이 대부분 공통과제로 지목된다. 우아한형제들 어린이집은 모집 인원에 비해 지원자 수가 많을 경우 공개 추첨으로 선발한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한부모 가정, 장애부모 가정, 다자녀, 부부 구성원 등 조건에 따라 우선 순위가 부여된다"라고 말했다. CJ제일제당 역시 추첨해 합격자와 대기자를 뽑고, 그해 결원이 생길 경우 대기자 명단에서 충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