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도 안 되는데 결혼이랑 출산을 생각할 겨를이 어딨겠어요." -수도권 4년제 대학 졸업 취준생 김 모(28)씨-
"경력 이직을 위해 지원한 회사 면접장에서 출산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결혼 후 출산=커리어 단절'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죠. 결혼에 소요되는 비용 마련도 힘들고, 연애나 결혼을 하려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니까 차라리 자기개발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서울 강북구 거주 직장인 이모(33)씨-
결혼과 출산에 대해 묻자 돌아온 청년들의 답변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OECD 국가 중 홍콩을 제외하곤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적, 사회·문화적, 정책·제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970년 4.53명에서 1983년에는 대체수준(2.10명) 아래인 2.06명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진입 이후 저출산 현상은 가속화했다.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8명 △2010년 1.23명 △2023년 0.72명으로 줄었다.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결혼 전도, 낳은 후도 문제
근본적인 원인은 '결혼 전'부터 시작된다는 분석이다. 황인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등이 발표한 '초저출산 및 초고령사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원인은 '청년'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 '불안'과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 청년(15~29세) 고용률은 2022년 46.6%로 OECD 평균(54.6%)보다 낮다. 대학 졸업 나이와 결혼 연령대를 고려해 25세에서 39세 고용률의 경우, 우리나라는 75.3%로 OECD 평균(87.4%) 대비 12.1%포인트 낮다.
여기에 고용안정성도 문제다. 청년층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2022년 41.4%로 증가했다. 한국의 임시직 근로자 비중은 27.3%(2022년, 전연령 기준)로 OECD 34개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취업경쟁은 심화돼 왔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졸 신입사원 취업경쟁률은 2008년 26.3 대 1에서 2017년 35.7 대 1로 높아졌다. 게다가 최근 경력직 중심의 채용 시장이 형성되면서 신입 취업 기회가 줄고, 취업난은 더욱 심화했다. 이 탓에 취업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결혼, 출산 등 미래를 그릴 여력이 없어졌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도 변했다. 젊은 세대는 개인의 삶의 질과 자기 실현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따라 결혼과 출산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어려워진 점도 저출산의 원인으로 꼽힌다. 젊은 세대는 업무의 과중함과 장시간 근로 문화로 가정생활과 일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을 토로한다.
여기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증가하고 경력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결혼 및 출산을 미루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직장인 김 모(32)씨는 "주변에서 보면 커리어 유지하려고 출산 후 얼마 쉬지도 못하고 복직하고, 생활 유지를 위해 맞벌이를 해야 하더라"며 "애 봐줄 사람이 없어 베이비시터를 쓰면 최소 월 100만원 이상 들인다고 하는데, 중등 교육 학원비까지 생각하면 출산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정책·제도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충분한 육아 지원 정책과 양육 환경이 미비해, 양육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육아휴직 제도의 한계도 있다. 제도 활성화에 나선 대기업을 제외하곤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자율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묘하게 다른 현금지원책
여야는 모두 저출생 해결 관련 총선 공약을 내놨다. 공통적으로 주거, 양육 등의 여건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국민의힘은 부총리급 '인구부'를 신설해 저출생 정책을 총괄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에 흩어져있던 저출생 정책을 연계해 일관성 있는 대책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저출생 현금지원 체계도 재설계한다. 영유아기에 집중된 정부지원을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부모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도 인상한다.
국힘은 예비부부 및 혼인 1년 내 신혼부부 디딤돌(매매)·버팀목(전세) 대출의 부부합산 소득기준을 완화한다고 했다. 디딤돌은 기존 85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버팀목은 75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린다. 이외 난임시술 지원 강화, 난자 동결시술비용 지원 등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은 신혼부부 주거지원대상을 결혼 10년차까지 확대하고 동거커플, 예비부부, 사실혼 등을 가리지 않고 출산주거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이다. 모든 신혼부부에게 가구당 10년 만기 1억원 대출을 해준다.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고 대출은 은행이 담당하는 식이다. 출생자녀 수에 따라 원리금도 차등 감면한다. 첫 자녀 출생 시 무이자 전환, 둘째 출생 시 무이자에 원금 50% 감면, 셋째 출생 시 원리금 전액을 감면해준다.
또 기존에 만 8세 미만에 지급하던 '아동수당'을 만 18세 미만까지로 확대한다. 아울러 출생 시부터 성인(만 18세)까지 매월 10만원씩 정부가 펀드계좌에 입금해주는 '자립펀드'도 도입한다. 소득세 자녀세액 공제도 현재 기준에서 2배 이상 상향한다는 공약을 내놨다.
2인 이상 다자녀 가구의 주택취득세도 면제해준다. 생애최초 주택 거래가격이 12억원 이하일 경우 1000만원 한도로 취득세를 면제한다. 청년‧신혼부부용 반값아파트 25만호를 공급한다. 두 자녀 출산 신혼부부에게 24평형을, 세 자녀 이상 출산 신혼부부에게는 33평형 분양전환 공공임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출산휴가·유연근무·돌봄서비스 어떻게
출산 후 가장 중요한 것은 잘 기르는 것이다. 여야도 모두 이런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국힘은 육아기에 다양한 유연근무를 기업문화로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일정 규모 이상의 중소·중견기업부터 의무화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육아휴직 미사용 시 육아기간 근로기간을 최대 3년 사용으로 확대하고 대상자녀를 초등 6학년 이하로 확대했다.
중소기업 대체인력에 대한 추가수당 대안도 나왔다. 중소기업의 경우 대체인력 확보 어려워 휴직 시 직장 동료들의 업무 부담 가중 등이 문제로 꼽힌다. 국힘은 중소기업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근로자에게 '채움인재'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안을 내놨다. 외국인 인력을 대체인력으로 활용 시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 한도를 상향한다. 또 대체인력지원금 2배 인상, 경력 단절자·중고령은퇴자를 대체인력으로 채용하면 지원금을 인상해준다.
민주당 역시 중소기업 대체인력에게 추가수당을 지원한다. 민주당은 중소기업 소속 근로자에게 '워라밸 프리미엄' 월 50만원 추가 지원을 도입한다.
양당 모두 제도 사용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를 방지하기 위해 '자동 출산휴가' 제도를 시행한다. 부모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 단축, 배우자출산휴가, 난임치료휴가, 가족돌봄휴가‧휴직 기간 및 급여 보장도 확대한다.
돌봄에 대해선 민주당은 지자체 협력형 온동네 초등돌봄을 고안했다. 오전 7시30분부터 9시, 방과후 오후 8시까지 학교나 지자체 공간에서 돌봄교실을 운영한다. △급식·간식 △돌봄 교실 입출입 시 학부모에게 알림 서비스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또 육아부담을 덜기 위해 방과후학교를 무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어린이집 지원 예산을 특별회계 재원으로 전환해 보육과 교육의 질을 향상하겠다고 나섰다. 민간 돌봄서비스(베이비시터)도 정부와 지자체가 관리를 강화한다. 육아도우미의 역량과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도 지원한다.
국민의힘도 방과후학교 개념인 '늘봄학교'를 전국 초등학교에서 전면 시행하고, 운영시간을 부모 퇴근시간까지 연장키로 했다.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해 수준 높은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이다. 단계적으로 무상실시해 초등학교 학부모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힘은 아이돌봄서비스를 가족, 민간 돌봄으로 확대한다는 방안도 내놨다. 정부 지원의 소득 기준을 폐지하고, 비용 일정액을 바우처 형태로 모든 가구에 지급한다. 소득, 자녀수, 맞벌이, 한부모, 지역 등 여건에 따라 추가 바우처를 지원한다. 부모 급여 등 현금지원을 아이돌봄서비스 본인부담 지출로 전환하면 추가 지원도 제공한다. 아이돌봄서비스 본인부담 시 세제혜택을 준다. 현금 지원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밖에도 국민의힘은 조부모 아이돌봄서비스를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해 재정을 절감하겠다고 강조한다. 기존에 기업 임직원 자녀 돌봄 지원 의무를 직장어린이집에 한정하지 않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등으로 선택권을 확대한다. 직장어린이집 미충원 자리는 타 기업과 지역에 개방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