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브랜드=모델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인 분위기의 음악을 배경으로 배우 공유가 조그만 카페 하나를 연다. 공유는 커피 그라인더에 원두를 넣고 돌리며 직접 원두를 갈기 시작한다. 이후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마시며 "어떻게 이런 맛을 냈을까요"라고 말한다. 광고 말미에는 카페 문을 닫는 장면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카페 카누'라는 공유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가 된다.
2011년 론칭과 함께 공개된 카누 광고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존 인스턴트 커피의 광고들이 맛이나 가격, 편의성을 강조했다면 카누는 소비자가 커피를 마시는 '순간의 가치'를 먼저 보여줬습니다. 바쁜 일상에서도 잠시 멈춰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장면을 전면에 내세우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셈이죠.
광고에 등장하는 공유는 전문 바리스타도, 화려한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도 아닙니다. 작은 공간에서 직접 원두를 갈고 천천히 커피를 내리며 여유를 즐기는 인물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의 카페를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스틱 하나만 있으면 집에서도 전문점 수준의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친숙하게 풀어낸 광고인데요.
이 같은 광고 전략은 당시 시장의 흐름과도 맞아 떨어졌습니다. 2010년대 초반에는 국내에 프랜차이즈 카페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아메리카노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여전히 설탕과 프림이 들어간 '믹스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카누는 이런 점에 착안해 스틱형 커피의 장점과 아메리카노 특유의 원두 풍미를 결합한 제품을 앞세워 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카누는 광고를 통해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계절마다, 제품마다 새로운 광고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지만 카누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여유와 따뜻한 감성, 작은 행복이라는 키워드는 유지하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있고요. 여기에 오랜 기간 공유를 브랜드의 상징적인 모델로도 활용하고 있죠.한 잔의 여유
덕분에 실제 소비자 사이에서 "카누 하면 공유, 공유하면 카누가 떠오른다", "공유가 마시는 커피라서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적지 않습니다. 모델의 이미지가 브랜드 가치까지 끌어올리는 '헤일로 효과(후광 효과)'가 성공적으로 작동한 사례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지금처럼 커피머신 보급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회사 복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무실에 카누가 비치돼 있는지'를 거론하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카누의 성공 이후 경쟁사들도 원두 기반 스틱커피 시장에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남양유업의 '루카스나인(전 루카)'입니다. 2012년 출시된 루카스나인은 카누와 제품명이 비슷한 건 물론 패키지 디자인 역시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업계 안팎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카누와의 혼동을 노린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카누가 먼저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인식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마시는 프리미엄 아메리카노'라는 포지션을 선점한 데다, 공유를 앞세운 감성적인 광고까지 더해지며 후발주자와의 격차는 빠르게 벌어졌습니다. 실제로 닐슨아이큐에 따르면 2024년 인스턴트 커피 소매점 매출 2124억원 중 카누가 차지하는 비중은 56.5%(1200억원)인 반면 루카스나인은 1%에 불과합니다.
최근 카누는 제품력도 더해지고 있습니다. 블랙커피뿐 아니라 라떼, 디카페인, 캡슐커피 등으로 제품군을 꾸준히 확대하며 변화하는 홈커피 시장에 적극 대응하고 있는데요.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 브랜드 경쟁력을 한층 강화한 셈입니다. 하나의 히트 상품에 머무르지 않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영역을 확장한 전략이 중장기적인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카누는 홈커피라는 새로운 소비 문화를 제안했습니다. 제품의 기능은 물론 경험과 감성을 앞세운 광고 전략, 이를 흔들림 없이 유지한 일관성은 소비자들의 신뢰와 시장 판도까지 바꿔 놓았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카누가 그동안 판 것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집에서도 누릴 수 있는 카페 같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