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열두시에 만나면 뭐다?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둘이서 만납시다 부라보콘~살짝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부라보 부라보콘~해태 부라보콘~열두시에 만나요. 해태 부라보콘.
요즘은 그런 '국민 CM송'이 별로 없지만, CM송을 가요나 동요처럼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름답고 쉬운 멜로디와 낭만 한 스푼이 담긴 가사, 친근하고 맛있는 제품이 결합되니 아이들에겐 '중독송'이나 다름없었죠. 자꾸만 손이 가던 새우깡,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은 롯데껌, 하늘에서 별과 달을 따서 두 손에 담아 준다던 오란씨 같은 CM송들이 떠오릅니다.
그 중에도 제 기억에 가장 남는 건 이 '부라보콘 송'이었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시간이 두시든, 세시든 언제나 "열두시에 만나요~"를 흥얼거렸죠. 그때만 해도 '살짝쿵 데이트'의 감성은 알지 못했지만요.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쉽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왠지 모르게 부라보콘이 먹고싶어졌거든요. 광고음악의 연상 효과일 겁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부라보콘이 국내 식품 역사에 이렇게나 중요한 제품인 줄. 부라보콘은 국내 최초의 아이스크림 콘 제품입니다. 1970년 출시됐으니 나이가 벌써 쉰을 훌쩍 넘었습니다. 경쟁 제품이었던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의 월드콘이 1986년 출시됐으니 까마득한 후배입니다.
부라보콘의 CM송은 역사만큼이나 이야깃거리도 많습니다. 부라보콘의 CM송은 가수 김세환이 불렀고 유명 기타 세션이었던 강근식이 작사작곡을 했습니다. CM송 요청을 받은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만들었다는 에피소드가 유명하죠. 왜 하필 '12시'냐는 질문엔 "부라보콘을 가장 많이 사 먹는 시간이 오후 1시라고 했는데, 1시에 만나요는 재미가 없어서 12시라고 고쳤다"고 했다네요.
노래가 워낙 좋았던 만큼, 다양한 버전의 '부라보 송'이 있습니다. 특히 1988년과 1990년 만든 '올스타 버전'이 유명합니다. 1988년엔 이상은·정수라·윤복희·박남정·구창모·윤형주·현미·김현식·한영애 등 기라성같은 가수들이 모여 함께 "열두시에 만나요"를 불렀고요. 1990년엔 "김흥국·조정현·김완선·신효범·수와진 등이 모여 또다른 버전을 들려줬죠.
2020년대에도 "열두시에 만나요"는 계속됐습니다. 2023년엔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멤버 부승관이 밴드 버전으로 '부라보송'을 불렀는데요. 제주 부씨인 부승관이 다른 제주 부씨들과 모여 제주도 부씨 집성촌에서 '부라보 밴드'를 만들어 '부라보송'을 부른다는 스토리텔링이 재미있었죠. 2022년엔 가수 이적과 이영현, 정은지가 수어로 부른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부라보송'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1위는 내줬지만
부라보콘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빙과류라고 하면 모두 '하드'였습니다. 과즙이나 우유 등을 얼린 제품이죠. 딱딱하게 얼렸다고 해서 이름도 'Hard'입니다. 그러던 중 해태제과가 덴마크 호이어 사에서 아이스크림 시설을 도입, 1970년 '부라보콘'을 내놓습니다. 소비자들은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바삭고소한 와플의 조합에 열광했죠. 해태제과는 해마다 생산시설을 증설하면서 국내 아이스크림 업계를 선도하게 됩니다.
국내 최초의 아이스크림콘인 부라보콘은 또다른 '최초'의 기록도 갖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의 '최애'인 콘 꼬다리의 초콜릿 덩어리를 만들어 낸 제품이라는 겁니다. 사실 이건 실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와플콘이 아이스크림에 직접 닿으면 눅눅해지기 때문에 안쪽에 초콜릿 코팅을 했는데요. 해태제과에서 부라보콘을 만들며 초콜릿을 지나치게 많이 발라 아래쪽에 고였던 겁니다. 제조 불량인 셈이죠.
그런데 이 초콜릿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뒤 마지막 입가심으로 진한 초콜릿을 먹으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화룡점정이 됐던 겁니다. 이에 해태제과는 부라보콘의 '꼬다리'에 계속 초콜릿을 넣기로 했죠.
안타깝게도 부라보콘의 질주는 월드콘의 등장으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부라보콘보다 16년 뒤인 1986년 출시된 월드콘은 출시 3년 만인 1989년 콘 아이스크림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밑부분 3.5㎝를 모두 초콜릿으로 채워 부라보콘이 사랑받던 요소인 '초콜릿 꼬다리'를 전략적으로 늘린 게 결정적 요소가 됐죠.
2020년엔 회사가 통째로 넘어갑니다. 크라운해태그룹이 아이스크림 부문인 '해태아이스크림'을 빙과 라이벌 빙그레에 매각한 겁니다. 올해 4월엔 해태아이스크림이 빙그레에 합병되면서 '해태아이스' 자체가 빙그레의 일개 브랜드로 바뀝니다. 이제 "살짝쿵 데이트~빙그레 부라보콘"이라고 불러야 하는 셈입니다.
빙그레 산하 제품이 됐지만 부라보콘의 지위는 여전합니다. 빙그레+해태아이스크림 제품 중 메로나와 1, 2위를 다투는 효자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존 빙그레의 콘 아이스크림이었던 슈퍼콘이 부라보콘에 밀려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뺐다고 해야 할 지, 우수한 경력직이 일 못 하는 공채 신입사원을 밀어냈다고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