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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의 보험 인사이트]진짜 고객을 대면해야 할 시간

  • 2021.05.04(화) 10:00

30세 보험회사 직원인 트루먼의 출근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는 안과 밖이 모두 영화다. 헤이븐이란 영화 속 배경은 거대한 돔으로 둘러싸인 인공 세트이며,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을 5000대의 카메라가 찍는다. 자신의 24시간이 온전히 타인에게 송출됨을 주인공만 모르고 있다. 쇼는 크리스토프라는 감독에 의해 총괄 지휘된다. 영화 속에서 트루먼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고 결정한다고 착각하지만 모든 것은 미리 정해진 연출에 의해 흘러간다.

보험에도 트루먼이 존재한다. 보험사의 홈페이지나 상품 홍보물을 보면 100세 만기 상품을 20년 납으로 가입한 40대 남성이 나온다. 이 가상의 남성은 대다수의 보험사가 각 상품의 보험료 예시를 계산하는데 동원된다. 분명 해당 상품의 피보험자가 40대 남성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트루먼의 가공된 삶처럼 예시의 남성은 그럴싸한 존재로 부각된다. 이런 가상의 고객은 보험사 교육에서 더욱 정형화된다. 설계사 교육 현장에서 고객과의 상담력을 높이기 위해 영화 대본 같은 것을 주고 연습을 시킨다. 이 때 자주 등장하는 가상의 고객은 자녀가 2명 있는 40대 가장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설계사의 교육 현장에는 항상 이와 유사한 고객이 등장한다.

그런데 정형화된 고객을 상대로 상담을 연습한 후 실전에 돌입했을 때 효율을 고민해야 한다. 과거에는 정형화된 고객을 상대로 한 가상의 상담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현재는 아니다. 우선 4인 가구는 더 이상 유효한 가정(假定)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평균 가구원수는 2.4명이다. 특히 1인 가구는 614만7516가구로 전체 가구 구성 중 30.2%를 차지한다. 그런데 1인 가구의 모습은 정말 제각각이다. '나 혼자 산다'는 공통분모 외 공유점이 없을 정도로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성별과 연령, 반려동물과의 동거 여부, 이혼경험, 직업, 취미, 삶의 지향점이 모두 다르다. 1인 가구 이외에도 배우자 없이 자녀를 혼자 양육하는 가구부터 다문화가구까지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이처럼 세상이 다양해지고 소비자라 통칭할 수 없을 정도로 피보험자나 계약자가 될 존재의 개성이 천차만별이지만 대면채널은 과거에나 유효할 정형화된 대상을 상대로 쇼(show)를 반복한다. 이런 오류를 지속한다면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앞에 대면채널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다. 고객을 마주할 수 있음은 비대면 채널이 가질 수 없는 설계사가 지닌 독보적인 가치다. 각자 뚜렷한 삶의 지향과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개별 고객을 마주하여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기술 독점 시대에도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의 모습을 지워버린 채 일반화된 고객을 전제한다면, 소비자에게 인공지능 기반 챗봇(chatter robot)보다 못한 만족을 준다.

이런 잘못된 습관은 일반화된 고객의 전제를 넘어 설계까지 이어진다. 가구 당 보험 가입률이 98%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기계약의 내용은 굉장히 다양하다. 복잡한 기계약의 정형화된 분석은 향후 인공지능이 더욱 잘할 것이다. 하지만 해당 상품을 왜 가입했는지, 어떤 의미로 보험료를 납부하며 유지하고 있는지, 고객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등 가입된 수많은 특약의 이면에 숨은 의미는 기술로 해석할 수 없다. 하지만 기계약은 무조건 해지시키고 신계약을 강요하는 설계사를 자주 본다. 예를 들어 질병코드 I60~I62까지를 보장하는 뇌출혈진단비에 가입한 고객을 만나면, I63인 뇌경색이 보장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I60~I69까지 전체 뇌혈관질환을 보장하는 진단비로 변경할 것을 반복한다.

뇌출혈진단비가 보장 범위가 좁기는 하지만 다른 뇌혈관질환과 비교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에서 더 큰 보험금이 필요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예후가 좋지 않은 질병에서 큰 보장이 가능하도록 뇌출혈이나 뇌졸중진단비를 유지하며, 뇌혈관질환진단비를 추가하는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본을 따라 연기하듯 뇌출혈진단비는 해지되고 가입금액의 인수한도가 낮은 뇌혈관질환진단비만 강요된다. 만약 뇌출혈로 신체마비 등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을 경우 낮은 보험금으로 사고를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유사하게 갱신형 납입 방법이나 CI(Critical Illness)는 무조건 해지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비갱신형 20년납 100세 만기는 반드시 선택해야 할 납입 방법으로 강조된다. 마치 트루먼이 다른 선택을 하려면 온갖 조작을 동원하여 그 선택을 방해하듯 정형화된 설계방법만 정답인 것처럼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고객의 다양한 모습은 지워지며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고객만이 남겨진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관행은 대면채널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손상시키며 채널의 쇠퇴를 가속화한다.

영화 '트루먼 쇼'의 결말은 주인공이 자신을 둘러싼 거짓으로 연출된 상황을 인지하고 "굿 애프터 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란 대사를 남긴 채 무대 밖으로 나가며 끝이 난다. 영화 도입부에서 출근길에 마주친 이웃에게 하루치 인사를 미리 한 것처럼 더 이상 가공된 세계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주인공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대면채널도 이제 가상의 고객과 강요된 설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객을 마주할 수 있다'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살려 채널의 영속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컨설팅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살아 있는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한다. 대면채널이 진짜 고객을 대면해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김진수 인스토리얼 대표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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