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탁 시장이 우리와 달리 빠르게 성장한 배경으로는 '다양한 상품'이 핵심으로 꼽힌다. 규제 완화를 통해 신탁이 가능한 재산이 늘어나면서 일본 금융사들이 여러 신탁 상품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신탁이 활발해지려면 상품 다양화가 필수다. 이와 함께 은행 등 금융사들도 신탁을 비롯한 종합자산관리에 주목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상품 다양화 위한 규제 풀어야
일본 정부는 2004년과 2006년 제도 개혁을 통해 신탁의 수탁가능 재산 범위 제한을 없앴다. 신탁업자의 법적 책임은 강화하면서도 업무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신탁업자의 재신탁 설정과 불특정금전신탁 판매, 신탁자산의 합동 운용 등 신탁업자의 자율적인 자산운용을 허용하면서 위탁자에게 투자를 일임하는 지정금전신탁과 포괄신탁 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또 2010년 이후에는 상속세와 증여세 개정, 세법 개정 등으로 세대 간 자산이전을 초기에 촉진하면서 신탁시장에 대한 지원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선 유언대용신탁 등 다양한 형태의 신탁 상품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금융투자상품 판매 중심의 금전신탁과 부동산신탁이 대부분이다. 신탁 상품이 한정적이다보니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은행 신탁 논란]②유언 신탁도 활발한 일본…'고령화' 우리는?(4월4일)
금융위원회는 2022년 신탁업 혁신 방안을 통해 신탁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다양한 신탁 상품을 만들기 위한 조건인 취급 재산 다양화와 신탁회사의 비금융 전문기관 활용 제고, 기업승계신탁과 주택신탁 관련 제도 정비, 신탁 보수·홍보 등 관련 관행 개선 등이 골자다.
하지만 취급 재산 다양화를 위한 상위 법령인 자본시장법 개정 등에 진척이 없으면서 아직까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은행권에서 신탁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신탁 업무 담당자는 "은행 신탁업은 규제 등에 의해 역할이 계속 줄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금전 신탁의 합동운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과잉 규제를 완화해 신탁업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신탁은 합동운용이 불가능해 맞춤형 운용에 대한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 고객의 신탁 보수에 대한 부담감과 거부감이 크다는 점도 활성화를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령 현재는 A가 맡긴 재산과 B가 맡긴 재산을 각각 운용해야 해 별도 관리비용 등이 필요하고 운용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합동운용은 A+B로 운용해 운용 수익을 내는데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은행권 관심 높일 필요…수수료 체계 개선도
국내 신탁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은행권에선 신탁을 새로운 비이자수익원으로 확대할 수 있다. 증권업계와 투자일임업 허용을 두고 갈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신탁은 은행에 유리한 시장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고 국민재산축적 등으로 자산관리에 대한 가계 수요가 커지고 있다. 신탁업 활성화를 통해 이 같은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신탁업 활성화가 국민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탁업 활성화는 단순히 은행 비이자이익 확대를 위해서라기보다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는 신탁업 활성화의 결과로 나타나는 부산물로 신탁업 활성화를 위해선 소비자 수요에 맞는 다양한 신탁 상품을 허용하고 소비자 보호 관련 규율 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의 신탁 수수료 체계 개선도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현재 은행 신탁 업무는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하는 수준이라 판매 과정에서 수수료를 먼저 받는 구조다. 수수료 수준도 높아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크지 않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실장(선임연구위원)은 "신탁 수수료를 선취하는 구조는 수익자가 아닌 신탁업자 이익을 우선으로 해온 것"이라며 "신탁의 목적이 수익자 이익인 만큼 운용을 통해 이익이 발생한 이후 신탁업자가 일정 부분 수수료를 가져가는 구조로 개선해야 신탁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