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는 손해보험업계에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이 직원을 내보내는 이유는 인사 적체 해소였지만 최근엔 경영 환경이 바뀌며 인력 체재 재편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KB손해보험은 최근 실시한 희망퇴직으로 총 115명을 퇴직 발령했다고 밝혔다. 이번 희망퇴직은 2019년(80명)과 2021년(101명)에 이어 3년 만에 단행됐다. 이 회사는 지난달 19일부터 31일까지 약 2주간 희망퇴직자를 접수했다. 신청대상은 △만 45세 이상 및 근속연수 10년 이상 직원 △근속연수 20년 이상 직원인 경우다. 임금피크제 기진입자 및 예정자도 포함됐다.
희망퇴직자에게는 최대 월급여 36개월분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한다. 추가로 생활안정자금과 전직 지원금 또는 자녀학자금, 본인과 배우자 건강검진비도 나온다. KB손보 관계자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 변화에 적합한 인력구조를 마련하려는 취지"라며 "고령화, 고직급화 가속화가 신규채용 감소 및 승·진급 적체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관련기사 : KB손해보험 희망퇴직 실시…45세 이상 대상(7월18일)
지난 6월 메리츠화재도 희망퇴직을 실시해 임직원 200여명이 회사를 떠난다. 전체 임직원의 7%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 회사에서 희망퇴직은 9년 만이다. 메리츠화재는 30세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직급과 근속연수 기준 최대 38개월분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와 더불어 자녀학자금지원금, 전직 지원금, 의료지원금도 준다.
지난 3월엔 한화손보가 2021년 이후 3년 만에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만 45세 이상이면서 근속연수 15년 이상인 직원을 대상으로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32개월분의 퇴직금을 받는다. 기타 지원비 3800만원은 조건과 상관없이 일괄 지급했다.▷관련기사 : 한화손보, 다시 희망퇴직 단행…나채범 대표 취임 1년만(3월4일)
최근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는 손보업계의 잇단 희망퇴직은 실적 악화에 따른 인원 감축 성격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국내 31개 손보사는 전년 대비 50.9% 증가한 8조2626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지난해엔 매출(수입보험료)도 사상 처음으로 손보사가 생명보험사를 앞질렀다. 주요 손보사 중 가장 먼저 올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KB손보는 572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이는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이다.
그럼에도 직원을 줄이는 건 기존 인력 체재를 재편할 필요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희망퇴직을 단행한 손보사들은 비교적 젊은 30~40대 직원까지 떠나보내고 있다. 고연령·고직급화에 따른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동시에 젊은 직원이라도 희망퇴직을 원하면 내보내고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보험업계는 전속 설계사 조직을 분리하는 제판분리(보험 상품의 개발과 판매의 분리) 등으로 영업 조직 힘이 점점 빠지는 추세다. 반대로 디지털 전환, 새 보험회계제도(IFRS17) 도입 등 영향으로 재무, 디지털 관련 인력 수요가 늘고 있다.
손보사 한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선 '실적이 좋아 희망퇴직 조건이 후할 때 떠나자'는 인식도 퍼져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KB손보의 1인 평균 급여액이 850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희망퇴직자는 단순 계산해 2억5400만원(최대 월급여 36개월 분) 플러스 알파(+α)를 보장받는다. 1금융권인 은행에 비하면 적지만 한 번에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돈이라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