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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워치]원전은 죽지 않는다, 다만 작아질 뿐

  • 2021.04.22(목) 06:00

대형원전 단점 잡은 소형원전 주목
사고 덜나고 사고 나도 수습 쉬워

최근 에너지업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최근 수년간 컴퓨터가 아니라 에너지 분야의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가 에너지에 관심을 가진 것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깨끗한 에너지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은 빌 게이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는 원자력에너지를 에너지전환의 핵심 기술로 꼽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후쿠시마를 모르나요? 이거 시대착오적인 얘기 아닐까요?

이미 국제적으로도 탈원전정책이 수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원전은 여건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사라져야 할 기술로 취급받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목소리를 내면서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소형모듈원자로(SMR·Small Module Reactor) 전문기업 테라파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연구하는 기술이 현실이 된다면, 원전은 죽지 않습니다. 다만 작아질 뿐입니다.

# "소형원전 개발하자" 여·야 한목소리

최근 국회에서 에너지업계에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지난 14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과 김영식 의원(국민의힘)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혁신형 SMR 국회포럼'이 출범식을 개최했는데요. 탈원전을 지지하는 여당과 이를 반대해 온 야당이 소형모듈원자로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한 겁니다. 

소형모듈원자로는 탈원전을 내세운 이번 정권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야입니다. 이번 정권은 원전 개발에 대한 연구비 대부분을 삭감했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울산과학기술원 등이 연구하는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사업은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소형모듈원자로가 무엇이길래 정부와 학계의 관심이 고조될까요.

# 작아서 좋다…소형원전 쓰임새 많아

소형모듈원자로는 우선 용량이 적습니다. 발전용량은 300㎿급 안팎으로 기존 1000~1500㎿급 원전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보다 더 작은 원자로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원자로 용량을 줄이는 이유는 기존 태양광이나 풍력과 연계해 '분산형 전원'을 구축할 목적입니다. 

용량이 큰 기존 원자로는 대규모 '집중형 전원'을 구성합니다. 집중형 전원은 용량이 크다는 장점은 있지만 대형 송전탑과 같은 대규모 송전설비가 필요하고 전기 사용량이 들쭉날쭉할 때는 효율이 떨어집니다. 

반면 분산형 전원은 송전설비를 작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전기가 필요한 곳 가까이 설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기사용량 변화에 따른 효율도 높습니다. 주로 태양광과 풍력 등과 연계하기 때문에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모듈화입니다. 하나의 용기에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주요기기를 담았습니다.

그 덕분에 크기도 매우 작습니다. 용량을 줄이면 버스보다 작은 크기의 원자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소형으로 일체화하니 현장에서 '건설'이 필요한 기존 원자로와 달리 공장에서 '제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장점을 활용해 전기가 필요하지만 송전설비를 설치하기 어려운 지역에 사용하기 좋습니다. 수소경제를 위해 필요한 수소생산시설이나 해수담수화 시설 등에 이용하기 알맞습니다. 쇄빙선이나 무역선 같은 장거리 항해를 하는 배의 동력으로 써도 좋습니다.

그런데 작긴 하지만 소형모듈원자로도 원전입니다. 탄소를 배출하지는 않겠지만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거나 폐로할 때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원자로 크기 비교 /그래픽=김용민 기자 kym5380@

# 사고 가능성 적고 수습도 쉬워

원전 사고의 대부분은 냉각과정에서 발생합니다. 사고로 냉각기능이 멈추면 원전의 온도를 통제하지 못해 결국 폭발이 일어납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쓰나미로 냉각 계통이 망가져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소형모듈원자로는 원전의 주요 계통을 한 개의 원자로 용기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각 계통의 연결부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사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드는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하나요. 가능성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니까요.

기존 원전은 통제를 잃으면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콘크리트로 덮어야 합니다. 체르노빌은 사고 이후 원전을 덮는데 6개월이 걸렸습니다. 이마저도 수명이 다해 추가작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2011년에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은 오는 2023년에야 1호기 하나를 덮는다고 합니다. 

반면 소형모듈원자로는 이런 작업을 대형 원전 사고의 경우보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크기가 작으니 핵물질 유출 전이라면 바다에 담가 냉각을 해도 됩니다. 원전의 가장 큰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되는 것입니다.

# 한국, 소형원전 개발 먼저 했지만...

사실 한국은 빌 게이츠보다 앞서 소형모듈원자로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바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스마트(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원자로'입니다. 

스마트 원자로는 1990년대 중분부터 연구를 시작해 2012년 7월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표준설계인가(SDA)를 취득한 세계 최초의 중소형 일체형 원자로입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경쟁국보다 먼저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크기는 대형 원자로의 10% 수준이며 발전용량은 110MW입니다. 이는 인구 10만명 규모 도시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전기양입니다.

스마트 원전은 아직 상용화하지 못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지원이 줄면서 설계 이후 단계를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에 스마트 원자로 설치를 위한 현지법인 설립 추진이 최근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멈칫하는 사이 미국이 달려갔습니다.

현재 이 분야를 이끄는 곳은 미국입니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는 피폭량이 적은 열화우라늄을 이용한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에 나서는 중입니다. 열화우라늄은 손으로 만져도 될 만큼 방사능 수치가 적습니다. 게다가 원료를 재활용 할 수 있는 증식로 모델이기에 '꿈의 원자로'라고 불립니다.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을 받는 뉴스케일(Nuscale)은 소형모듈원자로 최초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 심사를 받았습니다. 농축연료가 필요한 경수로 모델이지만 소형모듈원자로 중 상용화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일단은 '빌 게이츠' 효과…가능성은 우리 몫

한편 최근 국내에서 소형모듈원자로에 관심이 급증한 것은 최근 출간된 빌 게이츠의 책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덕분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출간 이후 곧바로 국내 유명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책입니다.

일부 언론이 이 책을 두고 '빌 게이츠가 기후 재앙을 피하려면 원전을 하라더라'는 식의 해설을 내놓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무는 보지만 숲을 보지 못하는 이야기입니다. 빌 게이츠가 원전을 달리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원전 자체의 안전성을 무시하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빌 게이츠가 강조한 원전은 소형모듈원자로며, 이마저도 그가 말하는 최종적인 기후변화 대응 단계도 아닙니다. 

원전에 대한 관심이 빌 게이츠라는 후광효과를 노리는 정치쇼로 끝날지, 아니면 에너지전환을 위한 마중물로 작용할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천대받던 원전이 모처럼 회생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죽느냐, 작아지느냐 선택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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