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수칙이 전면 해제되며 엔데믹이 본격화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며 그 중심에 있는 제약바이오 산업도 일상 복귀와 함께 완전히 달라진 미래를 준비 중이다. 이들의 새로운 변화와 전망을 주요 이슈별로 짚어본다. [편집자]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현금성자산이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백신·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외에도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현금 보유고를 늘렸다. 기업들은 풍부해진 자금을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에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또 제약바이오업계의 인수합병(M&A)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제약바이오, 현금 곳간 '두둑'
22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별도기준 SK바이오사이언스는 1조6457억원의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을 보유 중이다. 지난 2020년 2159억원 수준이었던 현금 보유액이 8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CMO(위탁생산)·CDMO 사업 매출이 증가한 데다 지난해 증시 입성에 성공하며 대규모 재원을 확보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지난해 별도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9290억원, 4742억원이었다. 전년보다 312%, 1158% 증가한 수치다. 회사는 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백신을 생산·공급해왔다. 이들 백신이 제품 매출로 인식되면서 지난해 SK바이오사이언스의 제품 매출은 6389억원으로 전년(1482억원)보다 4배 이상 늘었다. 또 지난해 3월 IPO를 통해 공모액 1조4917억원 중 구주매출을 제외한 9945억원이 회사로 유입됐다.
에스디바이오센서도 IPO와 코로나19 진단키트 사업으로 현금 보유액이 크게 불었다.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은 지난 2020년 3439억원에서 지난해 말 1조2052억원까지 증가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지난해 7월 IPO 상장으로 총 7763억원의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중 구주매출 2572억원을 제외하고 5176억원이 신규 자금으로 들어왔다.
주력 사업인 진단키트 판매도 크게 늘었다. 특히 가정용 코로나19 신속항원진단키트 등 해외 수출이 두드러졌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5% 증가한 1조3640억원이었다. 매출은 2조9300억원으로 전년보다 74% 올랐다. 수출로 거둔 금액은 2조770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95%에 달한다.
지난해 연결기준 셀트리온의 현금성자산은 1조2200억원이었다. 전년보다 5217억원 늘었다. 셀트리온의 현금성자산이 1조원을 넘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년보다 투자 규모는 줄었지만 영업이익이 증가하면서 현금 보유액이 증가했다.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성분명 레그단비맙)'의 수출이 본격화됐고 바이오시밀러 제품군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증가한 덕분이다.
이밖에도 HK이노엔, 휴마시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씨젠 등 제약바이오 기업의 현금성자산이 늘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판매가 폭증하면서 지난해 말 휴마시스와 씨젠의 현금성자산은 각각 1873억원, 4322억원까지 확대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영업이익 증가와 유상증자 등으로 지난해 말 4974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현금 보따리 풀까…M&A 기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풍부해진 자금력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선 모습이다. 또 활발할 M&A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한 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최근 IPO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조(兆) 단위 M&A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4~5년간 최대 10조원을 투자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대폭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메신저 리보핵산(mRNA) 등 새로운 플랫폼을 확보하기 위해 M&A와 전략적 투자 등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당시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은 "mRNA 특허 기술 확보를 위해 여러 회사와 전략적 투자, R&D 협력을 논의 중"이라며 "조만간 결과물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R&D 업체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를 마무리했다. 회사는 바이오젠에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인수 1차 대금 10억 달러(약 1조2300억원)를 납부했다고 20일 공시했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00% 자회사로 공식 편입됐다. 포트폴리오 확장과 공장 증설에도 나선다. 회사는 올 연말 부분 가동을 목표로 4공장을 증설한다. 하나의 공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멀티 모달(Multi Modal)' 5공장도 올해 안으로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진단기기 업체들은 헬스케어·신약 개발 분야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진단키트의 비중을 줄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에스디바이오센서는 해외 진단 업체 인수를 통해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독일 체외진단 유통사 베스트비온을 161억원에 인수했다. 앞서 지난해 9월 혈당측정기 개발사 유엑스엔에 총 400억원의 지분 투자를 단행한 데 이어 11월 브라질 진단기업 에코 디아그노스티카도 인수했다.
씨젠은 R&D 투자를 늘려 코로나 외 진단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자궁경부암(HPV), 성매개감염증(STI), 코로나 외 호흡기질환 등을 진단하는 시약·장비를 개발 중이다. 실제 씨젠의 R&D 비용은 지난 2019년 98억원에서 지난해 755억원으로 7배 이상 늘었다. 연구개발 인력 역시 2019년 115명에서 지난해 536명으로 4배 넘게 증가했다. 이와 함께 신사업 발굴을 위한 M&A와 지분투자도 지속 검토하고 있다는 게 씨젠 측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실탄을 확보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M&A에 나서길 기대하고 있다. M&A가 활발해질수록 신약 후보물질과 기술을 가진 기업 간 시너지 역시 확대될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보여줬다"면서 "국내 기업들이 앞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하기 위해선 기술이전뿐만 아니라 M&A 등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