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소식 중 하나가 정치권이나 기업들의 '뇌물수수'다. 받은 쪽이나 준 쪽에 대해 비난 여론이 쏟아지긴 하지만 국민 개개인에게 크게 와 닿는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의료계 불법 리베이트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의료계의 불법 리베이트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병원이나 의‧약사들에게 자사 의약품을 써달라며 금전 또는 물질적인 뇌물을 수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다.
해당 의약품도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을 통해 국가에서 허가받은 만큼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문제는 이후 불법행위에 대한 처분이다. 불법 리베이트로 기업이 받는 행정처분은 크게 △급여정지 △과징금 △약가인하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의약품 '급여정지' 처분이다.
동아에스티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로부터 122개 품목에 대한 약가인하 처분을 받았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이뤄진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된 데 대한 처분이다. 과거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약가인하 122품목 외에도 73개 품목은 급여정지, 42개 품목에 대한 과징금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동아에스티가 행정처분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승소하면서 재처분 검토가 이뤄졌다. 122개 약가인하는 확정됐지만 급여정지 및 과징금 품목에 대한 처분은 복지부 내에서 다시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 법적으로 '급여정지'는 처분 항목에서 삭제됐음에도 동아에스티의 73개 품목이 급여정지의 기로에 서 있다. '급여정지'는 2014년 '리베이트 투아웃제' 시행 당시 도입됐다가 2018년과 지난해에 건강보험법 처분항목에서 삭제됐다. 법령의 소급적용으로 '급여정지'가 도입됐던 2014년 7월 2일부터 2018년 9월 27일까지 불법 리베이트 건에 대해서는 급여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급여가 정지되면 환자가 약값 전액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 부담이 커져 처방으로 이어지기가 어렵다.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되는 셈이다. 해당 의약품을 복용하던 환자들도 처방 변경에 따른 피해를 입게 된다.
당초 급여정지 처분이 처분항목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는 과거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의 백혈병치료제 '글리벡'에 대한 불법 리베이트 사건이 계기였다. 해당 치료제는 2017년 불법 리베이트로 6개월간 급여정지 처분을 받았는데 제네릭 변경 처방을 우려한 환자와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로 과징금으로 대체됐다.
죽은 불씨가 되살아나듯 법령에서 사라진 '급여정지' 처분이 되살아나 업계를 흔들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급여정지' 처분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에스티는 이번 행정처분으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약가인하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급여정지 및 과징금 처분도 결과에 따라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미 법령에서 삭제한 '급여정지' 처분을 다시 꺼내든 건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강력한 처분으로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급여정지 소급적용은 꺼진 불에서 불씨를 되살려 나무를 태우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재처분 검토에 앞서 다시 한 번 급여정지 처분이 왜 삭제됐는지에 대해 곱씹어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기업들 또한 불법 리베이트가 이뤄지지 않도록 내부적인 경각심을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