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의약품 제조 조작 혐의를 두고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6년째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해가 지나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8민사부는 공단이 유나이티드제약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여섯 번째 공판을 진행했습니다. 2021년 3월 다섯 번째 공판 이후 2년 만에 소송이 재개된 건데요. 앞서 건강보험공단은 2017년 유나이티드제약에 총 193억원의 약제비 환수 소송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소송이 시작된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날 공판에서 원고인 건강보험공단 측은 "과거(2015년) 검찰이 조사했던 자료를 증거로 검토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판결문만으로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피고인 유나이티드제약 측은 "이미 형사재판에서 위법하게(법에 어긋나게) 모은 자료에 대한 증거 사용을 불허한 이상 허가받지 않은 증거는 검찰로 반환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재판부는 공단 측에 필요한 자료를 직접 신청한 뒤 이를 바탕으로 다음 공판인 8월8일까지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인 '자료'는 대체 무엇일까요. 또 왜 이토록 오랫동안 소송이 이어지는 걸까요. 사건의 시작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1년경 유나이티드제약이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원료의약품을 자체 생산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원료의약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경우 완제의약품 보험약가를 우대해 주는 제도를 악용해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이었습니다. 유나이티드제약이 원료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음에도 원료의약품 제조품목 허가를 받았다는 내부고발자 제보도 나왔고요.
이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유나이티드제약을 조사했습니다. 원료의약품 23개를 살펴본 결과 식약처는 직접 생산 여부가 의심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후 식약처는 약사법 위반 혐의로 유나이티드제약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공소시효(7년)가 지나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일부 문제점이 발견됐지만 검찰의 불기소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2016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재점화했습니다. 윤소하 전 정의당 의원은 "유나이티드제약이 원료의약품을 실제로 생산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덱시부프로펜·독시플루리딘 2품목으로만 2009~2011년 동안 최소 53억원을 부당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건강보험공단에 "부당하게 지출된 약제비를 환수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이듬해 건강보험공단이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죠.
여기에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던 검찰까지 다시 수사에 나섰습니다. 2019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은 공소시효가 지난 약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대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을 적용해 강덕영 유나이티드제약 회장 등 6명을 기소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유나이티드제약의 원료의약품 구입량이 현저하게 부족했고 △원료의약품 제조 방법이 보험약가 등재 시 식약처에 신청한 것과 달랐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참고로 이는 형사소송으로, 건강보험공단과 유나이티드제약 간 진행하는 민사소송과는 별도입니다.
사건의 향방은 형사재판 결론이 나면서 달라졌습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강 대표 등에 무죄 선고를 내렸습니다. 과거 조사 과정에서 검찰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수집한 자료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본 겁니다. 법률의 위반에 대한 판단이 나온 게 아니라, 자료를 증거로 채택할 수 없어 수사가 일단락된 셈입니다. 이로 인해 제약업계에서는 사건이 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다는 시각이 나왔습니다.
형사재판의 결론은 민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게 돼 있죠. 이번 공판에서 건강보험공단이 재판부에 요청한 자료가 바로 이 자료입니다. 공단은 증거 활용 측면에서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차이점을 내세울 것으로 보입니다. 주장의 핵심 근거로 사용했던 자료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으면 소송을 이어갈 수 없으니까요. 반대로 유나이티드제약은 "이미 무죄 판결은 받은 데다 판결문에 실제 자사가 원료의약품을 제조한 게 맞다는 취지가 내포돼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첫 소송 이후 꽤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단기간 내 갈등이 해결되긴 어려울 전망입니다.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는 국민 혈세인 건강보험으로 약가를 보전해 준 셈인 만큼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중요합니다. 유나이티드제약의 경우 적지 않은 소송액이 부담스러울 겁니다. 공단이 제기한 손해배상 금액(193억원)은 지난해 유나이티드제약 영업이익(482억원)의 40%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양측의 갈등은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소송 결과를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