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이노베이션이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 지분 100%를 다시 확보하면서 배터리 계열사 SK온과의 합병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시장은 다음 수순을 이미 예견하고 있죠.
외형 확장에 집중해온 SK온의 누적 적자가 3조원을 넘어서고 글로벌 고금리와 전기차 수요 둔화까지 겹치면서 실적 반등은 요원해졌습니다. 그룹 전반의 신용도와 재무 부담을 고려하면 내부 자원 재배치와 수익모델 전환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죠. 이번 결정이 단순 투자계약 해소를 넘어 SK온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적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되는 까닭입니다.
SK온·SK엔무브 합병설, 다시 수면 위로
최근 SK이노베이션은 IMM크레딧앤솔루션(이하 IMM)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1200만주)를 8592억원에 전량 인수키로 했습니다. 이미 70%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SK이노베이션은 이 거래를 통해 SK엔무브를 다시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게 됐는데요.
이 결정의 배경에는 중복상장 규제로 SK엔무브의 상장 계획이 무산된 사정이 있습니다. 당초 IMM과 체결한 투자계약에는 2026년 말까지 SK엔무브를 '적격 상장'시키겠다는 조건이 포함돼 있었지만, 최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모·자회사 동시 상장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추진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상장이 무산된 이상 투자자에 대한 보상은 불가피해졌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일부 콜옵션을 행사해 지분 10%를 우선 회수했지만, 남은 30%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8592억원을 들여 지분을 전량 되사올 수밖에 없었던 셈입니다. 시장이 이를 '단순 계약 해소'가 아닌, 향후 '합병을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는 까닭입니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은 이번 거래로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을 위한 전제 조건을 갖추게 됐습니다. IMM이 반대하던 합병 카드를 꺼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지난해에도 한 차례 합병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 2대 주주인 IMM의 반대로 좌초된 바 있습니다.
특히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시나리오는 지난해 초부터 시장서 꾸준히 거론돼 왔습니다. 업계에선 SK그룹이 SK온의 재무 회생을 위해 SK엔무브와 합병한 뒤 상장을 추진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고, 실제 그룹 고위층에서도 해당 전략을 유력하게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엇보다 SK온의 재무 상황은 단순 한 자회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SK온은 SK이노베이션이 87%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이며, SK이노베이션 역시 지주사 SK㈜가 최대주주로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핵심 계열사입니다.
SK온의 누적 손실과 급증한 부채는 곧바로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재무건전성을 위협하고 이는 다시 SK㈜의 연결 재무에도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한 계열사의 적자가 지주사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담의 사슬'이 형성된 셈이죠.
3조 적자·23조 차입…SK온의 무게
SK그룹 전체의 자금 운용 전략과 신용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SK온의 위기는 이제 그룹 차원의 구조적 고민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SK온은 지난 2021년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돼 출범한 이후 올해 1분기까지 누적된 영업손실이 3조2158억원에 달합니다. 연간 기준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을 정도로 실적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같은 기간 수조 원대 투자를 통해 외형은 키웠지만 수익성 개선은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재무 지표도 우려를 더합니다. 올해 1분기 기준 SK온의 순차입금은 약 23조3000억원으로,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전체 순차입금(약 32조9000원)의 70.8%를 차지합니다. 여기에 글로벌 고금리 기조와 전기차 수요 둔화까지 맞물리면서 SK온의 실적 반등 시점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반면 SK엔무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윤활유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688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견조한 수익 흐름을 보여줬습니다. 이 같은 현금창출력은 SK그룹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카드입니다. 실적이 부진한 SK온을 안정적인 자회사와 합병해 신용도를 보완하고 향후 IPO를 위한 체력을 끌어올리겠다는 복합적 포석으로 해석됩니다.

SK온의 재무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시도는 다른 경로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이 SK온에 대해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조 단위 자금 투입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별도로 추진 중인 5조원 규모의 LNG 자산 유동화 거래와는 다른 경로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SK온에는 담보로 제시할 수 있는 자산이 사실상 없다"며 "SK이노베이션과 SK㈜의 신용도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IPO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SK온은 외부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오는 2026년 말까지 상장을 완료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기한은 최대 2028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그때까지 IPO가 무산될 경우 투자자들이 보유 지분에 대해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은 약속한 가격으로 지분을 되사와야 하며 총 매입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도 SK온과 SK엔무브 간 합병 카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해당 시나리오는 내부적으로도 꾸준히 검토돼 왔습니다. ESG 측면에선 저탄소 윤활유 사업과 고탄소 배터리 사업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합병이 전략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SK온 합병론' 외형 아닌 본질 겨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병 가능성을 단순한 유동성 확보나 구조조정 차원을 넘어 SK온의 사업 재편과 수익모델 전환을 위한 계기로 보고 있습니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의 SK온은 외형 중심의 고비용 전략으로 누적된 적자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구조"라며 "현금창출형 포트폴리오와 결합해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IPO를 위한 체력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배터리 산업 전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게 부풀려져 있었던 반면, 기업들은 이를 현실적인 시그널로 조율하지 못했다"며 "실적이나 수익화 모델 없이 외형 성장에만 몰두한 결과 상장사든 비상장사든 가릴 것 없이 투자자 신뢰에 금이 가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전기차 수요 둔화와 고금리는 어디까지나 촉발 요인일 뿐, 내부적으로는 준비 부족과 전략적 판단 미스가 더 본질적인 원인"이라며 "SK온 역시 글로벌 자본시장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상장을 추진했어야 했지만 그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지금의 유동성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이 SK온의 '분기점'이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흑자를 내는 분기가 연속 이어지면서 누적 적자가 줄어드는 흐름이 시작돼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박 교수는 "배터리 업황상 당분간 적자 기조가 이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어떻게든 경영 수지를 개선해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사업 지속 여부까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다만 SK온의 위기가 크더라도 배터리 사업 자체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SK그룹 전체의 중장기 전략을 고려했을 때, 배터리는 단기 손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전략적 사업이라는 진단인건데요. 최근 그룹이 추진 중인 AI 투자 확대와 울산 AI 데이터센터(AIDC) 건립 등의 행보를 감안하면 에너지 사업의 중심축이 기존 석유화학에서 전기화·지능화로 옮겨가는 전환기라는 분석입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배터리 사업은 SK가 내부적으로 반드시 갖춰야 할 핵심 축"이라며 "지금은 힘들더라도 SK그룹이 미래 산업구조 개편을 위해 인내하고 지켜내야 할 사업"이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