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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영업기밀까지 달라는 미국…'전문가들이 본 삼성·SK 해법은'

  • 2023.03.31(금) 06:50

수율 등 영업기밀 공개 요구에 고민빠져
“해당 조건은 무리”…신청 유보 가능성도
최선은 韓정부 나서서 美 설득시키는 것

/그래픽=비즈워치

미국 정부가 ‘반도체과학법’ 보조금 신청 기업에 핵심 재무정보 및 영업정보가 담긴 엑셀 파일을 제출하라며 압박에 나섰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기업의 영업기밀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올해 수조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이들 기업 입장에선 보조금을 통해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나, 영업기밀 유출 리스크를 안기엔 부담이 커서다. 

전문가들도 “미국의 요구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미국의 과한 요구를 명분 삼아 한국 정부가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조율에 나설 경우, 우리 기업에 보다 유리한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8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반도체과학법은 반도체 생산 보조금으로 390억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으로 110억달러 등 5년간 약 520억달러(약 51조7000억원)를 편성하는 법안이다. 제2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도 불린다.  
경제득실+지정학적 경쟁+기술패권 '얽히고 설켜'

미국 반도체보조금 지원기업 신고목록./그래픽=비즈워치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 보조금 관련 신청절차의 세부지침이 논란이다. 지난 27일 상무부가 발표한 세부지침에 따르면, 반도체 보조금을 신청하는 기업은 웨이퍼 종류별 생산 능력과 수율 전망을 비롯해 예상 현금흐름 등 수익성 지표를 제출할 땐 단순 숫자가 아닌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을 함께 제출해야 한다.

상무부는 “지침을 제공하는 것일 뿐 신청 기업은 해당 제안을 따를 의무가 없다”는 단서를 달았으나, 기업이 이를 무시하긴 쉽지 않다. 상무부가 또 다른 세부지침을 통해 “세부정보가 부족할 시 추가 정보를 요청할 수 있고 검토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중 관건은 수율이다. 수율은 반도체 제조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을 뜻한다. 통상적으로 수율은 기업 영업기밀로 꼽힌다. 

보조금 신청은 오는 3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지만 한국 반도체업계는 득실에 대한 고심을 막판까지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이해득실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경쟁, 기술패권까지 얽혀 복잡 미묘한 상황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올해 연간 영업손실 추정치 /그래픽=비즈워치

한국 반도체업계 입장선 업친 데 덮친 격이다. 올해 실적 전망도 어두운 가운데 공급망 재편에 나선 미국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증권가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DS) 부문과 SK하이닉스가 올해 수조원대 동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최대 8조원, 11조원에 달하는 연간 영업손실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중국에 이어 미국을 방문해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해법을 찾을 방침이다. 업계에 따르면 내달 말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그룹 총수들이 포함된 경제사절단이 동행한다. 

“일부 정보만 공개하되 자구책 마련 방안도”

일각선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기업들이 신청을 유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부지침 발표 전만 하더라도 중국을 상대로 패권 전쟁에 나선 미국 정부의 입장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지배적이었으나 분위기가 바뀐 모양새다.

반도체업계의 영업기밀을 미국 정부에 넘기는 것은 각 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부담이 크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해당 조건이 과하다는 의견을 기반으로 미국과의 조율 과정서 유리한 포지션을 취하는 등 한국 정부와 기업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만일 수율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보조금이 줄어들 경우를 대비,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 연구원은 “최근 미국이 요구한 조건들은 기업이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과하다”며 “기업은 시간을 끌되 정부 대 정부 차원서 보다 적극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은 “최근 인플레이션이 상당하고 원자재 가격도 올라 한국 반도체기업들은 공장을 짓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때문에 미국의 보조금 지원을 받는 것이 경제적으론 유리하겠지만 영업기밀을 유출하면서까지 지원을 강행하는 것도 사실상 무리”라고 진단했다.

이어 연 팀장은 “정부가 주축이 되고 기업이 보조를 맞추는 식으로 ‘미국에 굳이 이렇게까지 생산시설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어필하며 적극 조율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미국에 모든 정보를 넘기지 않아 보조금 금액에서 일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염두에 두고 경기도 메가클러스터나 유럽 등에 생산시설을 투자하는 방안 등 전략적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술과 관련된 제공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정부와 기업이 일관되게 강조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와 논의가 장기 국면으로 접어들 수도 있으므로 한미 기업간 협조도 고민해 볼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미 양국 통상장관은 30일 한국서 만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통상 현안을 집중 논의했다.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미국이 발표한 반도체 보조금 신청 세부지침과 가드레일 조항과 관련해 “우리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는 “주요 통상 현안에 대해 한국 측과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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