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도체 산업 선공에 중국이 반격했다. 중국은 일본까지 겨냥해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 한국을 향한 압박 강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들 사이에 낀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양새다.
중국, WTO에 반공정성 주장…일본엔 경고
미국이 일본과 네덜란드까지 대중 반도체 제재에 합류시키자, 이번에는 중국이 반격에 나섰다.
중국이 조준한 첫 번째 타깃은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최근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 제품을 대상으로 인터넷 안보 심사를 개시했다.
핵심 정보 인프라의 공급망 안전을 보장하고 인터넷 안보 위험 예방 차원서 진행한다는 게 CAC 측 배경설명이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은 다르다. 중국의 조치는 미국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을 향해서도 ‘미국을 따르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라는 해석이다.
일본을 향한 중국의 보복도 이미 시작됐다. 중국 정부는 미국·일본·네덜란드의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방침에 대응, 세계무역기구(WTO)에 조사 시행 및 감시 강화를 요구했다.
6일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3∼4일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중국 대표는 이들 3국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에 대해 “WTO의 공정성과 투명성 원칙에 반하고 권위와 유효성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중국 상무부도 4일 입장문을 통해 “일본이 고집스럽게 중·일 반도체 산업 협력을 인위적으로 저해할 경우, 중국 측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본이 오는 7월부터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단행하고, 네덜란드도 올 여름부터 반도체 기술 수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로 한 데 따른 대응조치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 등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핵심 제조업체가 있는 일본과 네덜란드에도 동참을 요구한 바 있다.
"미국의 과도한 대중 제재 말려야"…정부역할론 부각
한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가 잠재적 중국 규제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엔 “미중 갈등 탓에 한국이 전략산업에서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경쟁력까지 취약해졌다”는 국제통화기금(IMF) 평가까지 나왔다.
한국으로선 난감한 처지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포기하기 어렵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미국 내 중장기 투자계획을 이미 세워 미국 정부의 눈 밖에 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중국과 척 지는 것도 부담이다. 중국은 주요 생산거점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중국 시안공장에서,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량의 40%를 중국 우시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지난 5일(현지시각) “중국에 대해 더 대담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동맹국과 공동 대응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미국 라인을 따르되, 미중 갈등이 더이상 격화되지 않도록 중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한국 반도체 업계가 미국·일본·네덜란드 장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척 지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불리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SPD) 등 반도체 협력 채널을 통한 협상도 하나의 방안으로 꼽힌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 팀장은 “최근 중국의 조치는 한국을 향한 경고성 시그널로 해석되고, 안타까운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에게 주도권 및 자율성은 없다는 것”이라며 “한국 반도체 업계의 미국 장비 의존도가 높아 결과적으로는 미국 전략에 딸려가는 모양새로 갈 수밖에 없겠지만, 칩4나 SPD 등 협상 채널을 활용해 미국의 과도한 대중 제재를 말리는 식의 중재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따라 한국 정부의 판단과 역할론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