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계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지속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강한 한파 속에서도 꿋꿋히 버티며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다. 비즈워치는 삼성·SK·현대자동차·LG·한화 등 5개 그룹 기업군을 선정, 올해 상반기 성적표를 심층 분석했다. [편집자]
올해 상반기 대부분의 대기업 실적이 뒷걸음치는 상황 속 현대차그룹만은 예외였다. 그룹 내 핵심 계열사 현대차와 기아가 작년 4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원자재, 운송비 부담에 실적이 감소했던 현대모비스의 상반기 영업이익도 1조원대로 복귀하며 그룹사 실적을 살찌우는데 보탬이 됐다.
다만 철강, 운송 사업 부문 실적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철강, 운송 시황이 모두 한풀 꺾인 영향이다. 올 하반기 중에는 시황이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으로 기대 중이다.
더할 나위 없었던 자동차
비즈워치가 집계한 현대차그룹 내 비금융 계열사 9곳(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제철·현대건설·현대위아·현대오토에버·이노션)의 올 상반기 연결 기준 합산 매출액은 206조6291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19.3%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17조465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9.9% 증가했다. 대기업 집단 중 현대차그룹은 이번 상반기 가장 많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액 규모가 가장 컸던 건 단연 현대차였다. 이 회사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80조28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0.7% 증가했다. 기아는 지난 상반기 매출액 49조9349억원을 기록하며 그룹사 중 2번째로 많은 매출을 올렸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24.1% 증가한 수치다.
2021~2022년 동안 지속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이슈가 올해 완전 회복 국면에 돌입하면서 현대차, 기아의 판매량도 뛰기 시작했다. 현대차의 지난해 상반기 판매량은 208만대로 전년동기대비 판매량이 11.2% 증가했다. 이 기간 기아도 158만대를 판매하며 판매량이 11% 증가했다. 기아는 창사 이래 상반기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내실 역시 놓치지 않았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7조8306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9.5% 증가했다. 이 기간 기아의 영업이익은 6조277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3.4% 급증했다. 현대차와 기아 모두 상반기 최대 영업이익 기록이다.
두 기업 모두 영업이익이 크게 뛰면서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영업익 비중은 더 커졌다. 현대차와 기아의 지난 상반기 합산 영업이익은 14조1076억원으로 전체 그룹 내 영업이익의 80%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10%p 증가한 수치다. 사실상 현대차, 기아 두 회사가 그룹의 전체 영업이익을 끌어올린 셈이다.
특히 기아는 3개 분기 연속 두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기아의 최근 3개 분기 영업이익률 추이를 보면 2022년 4분기 11.3%→2023년 1분기 12.1%→2분기 13%로 지속 상승하는 추세다. 완성차 업체에게 고수익 차종으로 꼽히는 RV(레져용 차량) 판매 비중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결과다. 기아의 지난 2분기 RV 판매 비중은 68%로 전년동기대비 2.6%p 상승했다. 이 기간 기아의 ASP(평균판매단가)는 3460만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0.3% 증가했다.
자동차 산업이 호조를 보이면서 현대모비스의 매출도 덩달아 뛰었다. 이 회사의 지난 상반기 매출액은 30조3519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8.5% 급증했다. 특히 지난 2분기에는 분기 기준 최대 매출액(매출 15조6849억원)을 달성했다. 현대모비스의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은 1조819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36.9% 증가했다. 지난해 수익성 개선에 발목을 잡았던 운송비와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에 진입한 영향이다.
현대차, 기아에 변속기, 엔진, 모듈 등을 공급하는 현대위아도 실적이 현대위아의 지난 상반기 매출액은 4조380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2.9%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작년 상반기 대비 11% 증가한 1161억원을 기록했다.
그룹 내에서 IT 서비스 사업, 차량 소프트웨어(SW) 사업을 영위 중인 현대오토에버의 실적 증가세도 두드러졌다. 현대오토에버의 지난 상반기 매출액은 1조419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9.3%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률은 83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63%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의 광고회사 이노션도 올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노션은 현대차, 기아 광고를 주력으로 맡고 있다. 이 회사의 상반기 매출액은 9565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7.1%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609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9.2% 증가했다.
자동차 산업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현대건설의 지난 상반기 매출액은 13조1944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35.7% 급증했다. 매출액 증가율만 보면 그룹사 중에서 가장 가팔랐다. 국내 주택 현장 공정이 본격화되면서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14.5% 증가한 3971억원을 기록했다. 수익성이 비교적 높은 해외 공정 실적이 영업이익 개선에 보탬이 됐다.
현대차 연결재무제표 실적에 반영되고 있는 현대로템의 상반기 실적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대로템의 지난 상반기 매출은 1조671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4.2% 증가했다. 이 기간 영업이익은 991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80.2% 급증했다. 그룹 계열사 내 중 가장 가파른 영업이익 상승률이다. 지난해 수주한 K2 전차 일부 문량이 2분기 실적에 반영되면서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물류, 철강은 주춤
다만 종합물류업, 해운업을 영위하는 현대글로비스의 상반기 실적은 전년동기대비 소폭 감소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올해 상반기 매출액 12조8357억원, 영업이익 819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매출 2.4%, 영업이익 6.4% 씩 감소한 수치다. 해운 불황에 따른 운임 하락과 운영 선대가 감소했던 탓이다.
현대제철의 실적도 작년 상반기 대비 뒷걸음쳤다. 현대제철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 13조5274억원, 영업이익 7990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와 견줬을 때 매출은 5.8%, 영업이익은 47.4% 감소한 수치다. 현대제철의 연결재무제표 실적에 반영되는 현대비앤지스틸은 지난 상반기 영업손실 22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이 기간 매출액은 556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2.9% 감소했다.
현대제철은 하반기에는 수익성 개선에 더욱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건설 경기가 둔화되는 것이 불안 요소이긴 하지만 여전히 수요가 견조한 자동차, 조선 부문의 판매 비중을 높여 수익성 개선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김원배 현대제철 고로사업본부장(전무)은 지난 2분기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에 공급하는 자동차 강판 판매 비중을 20%로 확대할 것"이며 "조선업은 하반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건조가 예상돼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