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진통 끝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은 오는 22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30일 국회 본회의서 최종 통과될 전망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본회의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지난 1월 19일 해당 개정안을 발의한 지 약 두 달여만이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가 골자인 K칩스법은 재벌 감세 논란으로 논의가 늦어졌었다.
정부가 올려잡은 세액공제 비율이 받아들여지자 업계와 전문가들은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 핵심 산업인 반도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투자의 물꼬를 터주는 중추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도체 쇼크’가 ‘재벌 감세’ 눌렀다
기재위 조세소위는 지난 16일 회의를 열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여야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대·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여야는 세액공제 대상인 ‘국가전략기술’의 범위를 기존 반도체·2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에서 수소와 미래형 이동수단으로 넓히는 데에도 의견을 함께했다. 전날 기재위 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이 발의한 조특법 개정안이 받아들여졌다.
또 현행법에서 시행령에 위임돼 있던 국가전략기술의 범위를 법률로 높였다.
이날 오전 회의에선 법안 상정과 관련해 여야 간 의견이 갈려 개의 시간이 1시간 30분가량 늦춰지는 등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오전 회의 이후 여야 간사 간 물밑 협상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세액공제 비율은 정부가 제안한 원안대로, 세액공제 대상의 범위는 야당의 제안이 각각 받아들여졌다.
K칩스법이 조세소위 문턱을 넘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 1월 19일 정부 발의로 국회 기재위에 넘겨졌지만 내내 계류됐다.
당시 여야 간 이견 탓이 컸다.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인 추가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대기업의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율을 기존 6%에서 8%로 높이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시켰으나, 이마저도 주요 국가들 대비 너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 정부가 공제 비율을 더 높인 이번 개정안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반면 야당은 재벌 특혜 및 다른 산업군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취지엔 공감하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혜택을 받는 기업 대부분이 ‘대기업 재벌’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달 들어 야당이 입장 선회를 보이면서 K칩스법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7일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제정 계획을 발표하며 반도체 세액공제 관련 내용을 함께 다룰 것이라고 밝히면서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인한 한국 경제 침체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 반도체 수출 실적은 추락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불황 탓에 지난 1월 국내 반도체 재고율은 26여년 만의 최고치인 265.7%에 달했다. 수출 부진으로 재고가 쌓이자 지난 2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동기비 42.5% 급감했다. 지난해 3월 132억 달러까지 치솟았던 월 수출액은 지난 2월 61억1000만 달러까지 내려와 반토막이 난 바 있다.
‘세액공제’ 투자 촉진하는 가장 큰 당근
업계와 경제단체, 전문가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경기 및 업황 침체로 기업들이 미래 기술 투자에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지만 해당 법 통과로 인해 향후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전문연구원은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이 이어져 아쉬웠는데 이번을 계기로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투자자들의 결정을 빨리 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반도체 업계가 위축돼 투자 금액이 전년 대비 축소된 면이 있지만 향후 업황이 좋아질 땐 투자를 늘려야 한다”며 “이러한 세제혜택이 제도화 되어져 있으면 사업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날 대규모 투자계획이 발표된 직후라 업계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 모양새다. 삼성은 지난 15일 300조원을 들여 경기도 용인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짓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국 경제 전체에 직간접 생산유발 효과만 700조원에 달하고, 고용유발 효과도 160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의 이러한 결단은 정부가 발표한 ‘국가첨단산업단지 육성 계획’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로봇 등 6대 핵심산업에 대해 총 550조원 이상의 민간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이달 중 K칩스법이 최종 통과를 하게 되면 최근 정부의 중장기 투자계획 맞물려 반도체 업계의 숨통이 트일 것 같다”며 “기업들이 투자를 활성화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액이 반토막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대표기업과 대만 TSMC의 격차가 벌어지는 등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이번 개정안은 산업의 숨통을 틔워주고 투자의 물꼬를 터주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최근 정부가 발표한 국가첨단산업단지 육성 계획에 맞춰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만큼 관련 지원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