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만일 중동 주변국으로 확전되면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산 원유 비중이 큰 국내 정유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현지 상황을 주시하며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올해 1~8월 누적 기준 국내의 중동 원유 의존도는 72% 수준이다.
이란·사우디 참여 ‘최악 시나리오’
국제유가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첫날 5% 가량 급등했다가 다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배럴당 82.79달러에 거래됐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쟁이 본격화된 9일 전장 대비 3.59달러 오른 86.3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후 △10일 85.97달러 △11일 83.49달러 △12일 82.91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도 9일 88.15달러로 장을 마치며 전장 대비 3.57달러 올랐으나 △10일 87.65달러 △11일 85.82달러 △12일 86.00달러 흐름을 보였다.
이번 전쟁이 원유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당 전쟁이 원유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기에 가격 상승세가 소강상태로 접어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6개월치 이상의 석유제품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어 수급 차질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원유를 직접 생산하는 국가가 아니고 원유 수송 라인에 걸쳐 있지 않아서 실제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과거 양국의 전쟁이 났을 때에도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경기 침체로 석유 재고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부연했다.
다만 전쟁 규모가 확장되는 등 불확실성이 여전해 긴장을 늦출 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란이나 사우디 등이 개입해 중동 전체로 확전되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힌다.
조 실장은 “국제유가가 향후 전쟁 상황과 상관없이 안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기엔 분명 부담이 있다”며 “지상군 투입 및 이란 개입 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확전이 된다면 유가가 다시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유가 150달러 급등 가능성도”
만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원유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규모는 세계 공급의 20%를 차지한다. 일각에선 이 경우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원유 시장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하마스 배후가 이란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이란이 이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 유가는 배럴당 최대 15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불확실성을 반영한 듯 현물가격은 9일부터 계속 상승세다. 지난 9일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전장 대비 2.22달러 오른 배럴당 87.05달러를 기록, 10일과 11일 각각 88.49달러, 88.20달러로 거래됐다. 12일엔 87.27달러로 소폭 하락했으나 전쟁이 발생하기 전인 6일 대비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중동 지역 지정학 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정유사들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전쟁 상황에 유가가 급등하면 단기적으로는 정유사들의 재고이익 평가가 오르겠지만, 향후 불안 심리 등으로 수요가 쪼그라들 우려가 있다. 뿐만 아니라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 하락 가능성도 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 특이사항은 없으나 전쟁에 따르는 위험요소가 여전하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며 “향후 중동 주변국으로 확전이 되느냐 그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