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 내 ‘횡재세(초과이익세)’ 논의가 재점화되면서 정유업계가 숨 죽이고 있습니다.
GS칼텍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업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정치권이 업황 흐름에 따라 횡재세 카드를 꺼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유사를 대상으로 한 횡재세 논란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입니다. 올해 초 잠시 언급되던 횡재세는 상반기 적자 분위기에 잠잠하다가 3분기 실적발표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랐는데요.
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 수천억 적자가 났을 땐 외면하고 불황터널을 겨우 빠져나오니 기다렸다는 듯 다시 횡재세를 언급해 황당하다”는 반응입니다. 횡재세를 도입 중인 유럽과는 에너지 기업 생태구조가 다르고, 이자수익으로 실적을 올리는 은행과도 사업구조가 다르다는 입장입니다.
전문가들도 횡재세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횡재세가 부과될 경우 이중과세 논란이 불거질 수 있고 자유경제 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한국형 횡재세’ 주장 근거는
‘한국형 횡재세’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고금리·고유가로 호실적을 낸 은행과 정유사로부터 부담금을 걷어 사회적 비용 고통 분담을 함께 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양경숙 민주당 의원과 이성만 무소속 의원 등이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이 계류 중입니다. 은행 및 정유사가 과거 3~5년간 벌어들인 평균 수익보다 더 많이 거둬들이면 해당 초과이익의 20~50%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지난 10일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가 상승과 고금리 때문에 정유사와 은행들이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며 “민생 위기를 극복하고 고통을 분담할 수 있도록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당시 이 대표는 “이미 유럽의 많은 나라가 에너지 산업 대상으로 횡재세를 도입했다”며 해외 선례를 언급한 바 있는데요.
유럽 내 횡재세가 본격 등장한 때는 지난해 3월입니다. 그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촉발, 석유·천연가스 등 가격이 급등한 것이 주 배경이에요. 이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이 에너지 기업을 대상으로 일시적 초과이익세금을 부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EU 집행위 권고에 앞서 2021년경 해당 메커니즘을 이미 시행한 일부 국가와 영국 등을 포함, 현재 유럽 15여개 주요국은 초과이익세를 발표·제안 또는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외 사례가 정치권 내 ‘한국형 횡재세’ 도입 주장의 근간을 이루고 있죠.
“산유국과 비산유국, 사업구조 근본적으로 달라”
하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해외 및 국내 정유업 간 사업구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반발합니다. 산유국과 비산유국의 차이가 명확하다는 겁니다. 유럽 정유사는 원유를 직접 시추해 판매하는 반면, 국내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후 판매합니다.
돈을 내고 원유를 사오는 만큼 오히려 유가 변동에 민감하고 정제마진이 떨어지면 수익은 급감합니다. 올 2분기 국내 정유 4사가 정유사업 부문서 1000억~4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봤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원유를 직접 생산하면 유가 상승 자체만으로 큰 수익을 거두지만 국내 정유사들은 유가가 오르면 비싼 가격을 주고 원유를 사와야 한다”며 “해외 정유사와 근본적으로 사업구조가 다른데 단순비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아울러 최근 국내 정유사가 호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관련 이익이 개선됐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재고관련 이익은 유가 하락 시 손실로 직결되기 때문에 산유국 정유사들의 수익과는 결이 다르다는 의견입니다.
다른 산업계와 비교했을 때 정유제품에 더 큰 이윤을 매기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국내 석유제품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입니다. 최근 15년간 정유업계 영업이익률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대한석유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22년까지 국내 정유업계 정유사업부문 평균 영업이익률은 1.7%입니다. 국내 40대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 6.3%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
전문가들 “이중과세·생산감소·소비자부담 증가 우려”
전문가들도 정유사를 상대로 한 횡재세 도입엔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이중과세 및 징벌성 세제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기업들이 짊어져야 할 비용이 늘면서 생산감소 및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해당 법안의 취지에 대해선 공감되는 일정 부분이 있으나, 실제 세금체계를 바꾸기에는 타당성이 부족하다”며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이익이 높아졌다고 추가 세금을 부여하는 방식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성 교수는 “산유국 해외 에너지 기업에 대한 세금방식을 국내 정유업계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미국 세제정책 싱크탱크인 텍스파운데이션도 보고서를 통해 “현재 유럽서 시행 또는 제안된 초과이익세는 오히려 가격을 상승시키고 생산성을 저해하며 건전한 과세기반 없이 특정 산업을 징벌할 가능성이 높다”며 “높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완화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