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이 보유한 보이스피싱 데이터를 민간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통로가 확대되면서 통신3사를 중심으로 선의의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AI·데이터 기반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한 상호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은 보유한 보이스피싱 통화 데이터가 보이스피싱 예방 AI를 개발하는 민간 기업에 제공될 수 있도록 협력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이번 MOU를 계기로 관련 기술·서비스 개발에 가장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SK텔레콤은 국과수가 텍스트로 변환한 통화 데이터 2만1000건을 활용해 보이스피싱 탐지·예방 AI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 서비스는 통화 문맥을 토대로 보이스피싱 의심 여부를 실시간으로 판별해 본인이나 가족에게 알림을 주는 기능 등을 포함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에 사용되는 주요 키워드나 패턴을 탐지하는 것은 물론, 통화 문맥의 특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수사기관을 사칭하거나 금융거래를 이유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행위 등 다양한 보이스피싱 상황을 즉각 인지하고 의심통화로 분류한다. 정부 관계자는 "단순히 의심 회선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통화 내용을 분석해 보이스피싱을 탐지하게 됨으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범죄 수법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SK텔레콤은 통화 데이터가 서버로 전송되지 않고 단말기 내에서 처리되도록 하는 온디바이스(on-device) AI 기술을 적용해 개인정보를 보호할 방침이다. 서버에 전송될 경우 감청 가능성 등 개인정보노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앞서 SK텔레콤은 금감원, 국과수가 보유한 보이스피싱 통화 데이터를 개인정보위, 금감원, 국과수, KISA 등에 적극 요청해 관련 서비스 개발에 앞서나갈 수 있게 됐다. 정부도 피해자 이름, 계좌번호 등 민감 정보를 비식별처리해 SK텔레콤에 제공해 서비스 개발과 고도화를 지원할 방침이다.
KT와 LG유플러스도 SK텔레콤에 이어 관련 서비스 기획, 개발 등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통신3사는 경찰청, 금융보안원, KISA 등과 협력해 AI를 통한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활동을 활발히 벌여왔기에 관련 서비스 개발 기술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통신3사는 2021년부터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보이스피싱 활동을 탐지하고 이를 경찰청에 제공해왔다.
LG유플러스의 경우 시스템별 로그를 수집·분석·통계화하고 이를 통해 이상탐지와 사전차단 체계를 마련했다. 'U+스팸차단'에서 모은 악성 트래픽과 경찰청·KISA 신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AI와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도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보이스피싱 전담팀을 신설해 전사역량을 결집해 체계적 대응에 나서고 있으며, 이 회사의 음성 스팸·보이스피싱 필터링 시스템은 1분 단위로 스팸을 분석하고 자동차단을 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KT는 'AI 클린 메시징 시스템'을 도입해 불법스팸을 필터링하고 있다. KISA의 신고스팸 데이터를 학습한 AI 엔진이 악성 URL과 불법 스팸을 탐지해 정상 메시지는 통과시키고 불법 스팸은 필터링하는 것이다.
해당 서비스는 통신3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다. 현재 통신사들이 제공하는 스팸 방지 서비스가 대부분 무료이듯, 향후 AI 기반 보이스피싱 서비스도 무료 서비스로 운영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통신3사의 행보는 민생 범죄를 척결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적극 따르는 한편 이를 통해 자사 고객을 보이스피싱 피해로부터 보호하려는 선의의 행보로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 비용이 투입되고 수익 사업도 아니지만 공공의 안전을 위한 필요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