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은 신약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평균 10년의 시간, 1조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인고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 관문을 통과하면 독점권을 부여받아 막대한 부가가치를 누릴 수 있다.
기나긴 임상 과정에는 여러 변수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해당 기업의 주가도 널뛴다. 임상 시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일반 투자자들이 흔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분야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임상시험의 큰 흐름을 읽는 안목이 필요한 이유다. 일반 투자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임상 시험의 주요 과정을 짚어보고 그 의미에 대해 쉽게 풀이해본다.
죽음의 계곡을 넘어
#A바이오기업은 최근 희귀질환 치료제 임상 3상 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를 입증하지 못했다. 주가는 3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회사는 문제가 없다며 허가절차에 들어갔다.
신약 임상시험은 통상 1~3상 총 3단계로 진행된다. 이전까지 사람의 세포나, 동물을 대상으로 시험했다면 임상 1상부터는 사람에게 약물의 효과를 처음 확인한다. 그런 만큼 임상 1상에서는 약물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된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임상 1상 시험을 통과할 확률은 63.2%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은 실험 전에 설정한 평가지표를 충족했다는 의미다.
보통 바이오기업은 1, 2차로 구분되는 두 개의 평가지표를 설정한다.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면 대부분 1차 통과지표를 충족해야 통과한 것으로 본다.
본경기는 임상 2상부터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임상 1상보다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효능과 안전성을 모두 평가한다. 그만큼 통과가 어려워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FDA에 따르면 임상 2상 시험 통과율은 30.7%에 그친다.
죽음의 계곡을 넘은 만큼 임상 3상의 통과율은 58.1%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임상에 들어간 두 개의 약물 중 하나는 성공한다는 의미다. 임상 3상에 진입했다는 소식만으로 주가가 크게 뛰는 이유다.
하지만 임상 3상은 수백명에 달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만큼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여된다. 향후 글로벌 진출을 고려한다면 세계 곳곳에서 임상을 진행해야 한다. 아무리 큰 제약사도 임상 3상 실패에 큰 타격을 입게 되는 배경이다.
질병마다 다른 성공률
어떤 질병을 타깃으로 하는가에 따라 임상시험 성공률도 다르다. 병리기전이 복잡하거나 생물학적 이해도가 낮은 질병일수록 개발난이도가 높다. 하지만 좁은 문을 통과한 만큼 개발에 성공하면 더 큰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암이다. 항암 후보물질이 임상시험을 통과해 최종 허가받을 확률은 5.1%에 그친다. 하지만 시장성이 커 임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시장성이 작은 루게릭병 등의 희귀질환 치료제의 허가율은 25.3%다. 전체 질환 대비 2.6배 높은 숫자다. 이유는 FDA 등 규제기관이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허가과정에서 인센티브(혜택)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A바이오기업이 임상 1차 평가지표 충족에 실패했지만 허가를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치료법이 제한적인 희귀질환은 약물이 작은 효능만 보여줘도 허가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종종 1차 지표를 못 충족한 약물의 허가가 이뤄지곤 한다.
방심은 금물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던 B바이오기업은 지난해 11월 진행 중이던 임상을 중단했다. 환자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면서다. 회사는 약물로 인한 이상반응이 아니라며 상장 절차를 재개했다.
임상시험은 도중에 환자가 사망하거나, 입원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악재로 받아들여진다. 시험이 지연될 수 있으나 반드시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약물이 부작용을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수 있어서다.
임상에서 부작용은 심각성에 따라 4개 등급으로 구분된다. 경미한 1등급부터 심각한 4등급까지다. 부작용은 향후 약물의 허가 여부와 시장성과를 좌우하는 주요 지표다. 1차 평가지표를 통과하더라도 중증 이상의 부작용 비율 등을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부작용은 임상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기관은 허가 이후 약물의 부작용을 지속적으로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면 허가가 취소되거나, 의약품 포장지에 경고문(블랙라벨)이 붙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CAR-T(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 세포 치료제다. FDA는 지난해 CAR-T를 투약받은 환자들에게서 악성종양이 발생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시판 중인 제품에 경고문을 부착했다. 위험 대비 환자들이 누릴 이점이 컸기에 허가가 취소되지는 않았다.
조헌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전무는 "이전과 달리 처음부터 약물에 잘 반응하는 환자군을 모집하면서 임상 성공율이 상승하는 추세"라며 "임상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대체약이 없다면 허가가 이뤄질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임상 프로토콜 등을 바꿔야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