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향후 준공주택 매입할 때 원가 이하로 가격을 책정키로 했다. 앞서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악성 미분양 단지'를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다.
전문가들은 세금으로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진행하는 만큼 준공된 주택을 원가 이하로 매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준공 후 매입임대주택을 신청하는 단지는 주로 시장에서 외면받거나 미분양단지라는 점에서 사업주도 일정 수준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는 논리도 한몫했다.
다만 LH 측에서 제시한 원가가 실제 원가와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원가 수준으로 판매하려는 사업주가 얼마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집값 상승기엔 이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LH의 매입임대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H "매입임대주택, 원가 이하로 매입"
LH는 17일 매입임대주택 중 준공주택 매입 가격 기준을 '원가 이하 수준'으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악성 미분양 단지를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는 비판을 받은 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제도개선을 주문하면서다.▶관련기사: 칸타빌 고가 매입 논란에…LH "원가 이하 매입"(4월17일)
LH는 매입임대주택을 통해 이미 지어진 주택을 매입, 무주택 청년·신혼부부·다자녀가구·취약계층 등에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한다. 이 중 '준공주택매입'은 이미 준공한 주택을 매입하는 것이며 '신축매입약정'은 건설 예정인 주택 매입을 약정하는 제도다.
기존에는 주변 주택의 시세나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거래사례비교법'을 통해 매입임대주택의 가격을 산정했다. 2곳의 감정평가 법인이 평가한 금액의 산술평균 금액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LH는 이 같은 규정을 '원가 수준 이하'로 변경했다. 토지 감정가에 공공 건설임대 표준 건축비를 더한 가격에 감가상각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LH는 "준공주택매입 방식은 주로 시장에서 외면받거나 소화되지 못한 주택임을 감안해 매도자(업계) 자구노력 부담 차원에서 원가 수준 이하로 매입가격을 책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H는 지난해 12월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수유팰리스'를 약 12% 할인된 가격에 매입했다. ▶관련기사: 시장서 외면한 '미분양' 칸타빌 수유팰리스, LH 매입 '갸우뚱'(1월17일)
총매입금액은 분양가에서 12%가량 할인한 79억4950만원었다. 당시 칸타빌수유팰리스 중대형 평수의 최대 할인 폭인 15%보다 낮은 할인율(12%)을 적용한 셈이다.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세금이 아닌 내 돈이었다면 과연 지금 이 가격에 샀을까 이해할 수 없다"며 "국민 혈세로 건설업체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원희룡 "LH의 무책임한 매입임대…미분양, 떠안을 단계 아냐"(1월30일)
원가 이하로 주택 매입, 실효성은?
매입임대주택을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매입하는 방안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국민 혈세로 진행하는 사업이 '미분양 단지 구제 방안'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상품기획비즈니스학과 교수)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때는 사업주의 사업 실패 책임을 나눠진다는 관점에서 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LH가 산정하는 원가가 실제 원가와 괴리가 있을수 있다는 평가다. LH 매입임대주택 가격은 '토지 감정가 + 공공 건설임대 표준 건축비 - 감가상각비'으로 산정한다.
LH 관계자는 "토지 감정가는 감정평가사가 평가하고 표준 건축비는 이미 정해져 있어 가격 산정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이자 비용, 사무실 임대료 등 표준 공사비에 포함되지 않는 비용이 많아 사업주 입장에선 실제 원가보다도 더 낮게 책정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표준 공사비 등을 통해 대략적인 공사 비용과 건설 원가 등을 알 수 있다"면서도 "수수료와 금융비용 등 제반 비용은 유동적이다 보니 전체적인 신뢰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장기적으로 매입임대주택 사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분양 주택이라고 해도 사업주 입장에서 원가 이하 수준으로 LH에 팔수 있는 유인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송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최근 미분양 주택이 많다는 점에서 LH가 낮은 가격에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원가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업주들이)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이 심각한 경우 원가 이하로 판매해 현금 흐름을 확보하려는 건설사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현금이 부족하지 않은 건설사의 경우 굳이 원가이하로 판매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집값 상승기엔 공공에 주택을 원가를 기준으로 판매하려는 사업주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 건설사 관계자도 "주택 경기가 회복하면 원가 이하로 주택을 매도하려는 건설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