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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양평고속도로, 왜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판을 엎었다

  • 2023.07.12(수) 10:39

서울~양평,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에 돌연 백지화
15년 추진, 국회 의결 예산 기반영…장관 독단 결정

'8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전면 재검토' 지시(2023년 6월29일)를 내린 이후 '백지화' 선언(7월6일)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이로써 지난 2008년부터 15년간 추진하던 고속도로 건설 사업도 '올스톱' 됐는데요. 

물론 고속도로 노선이 바뀌는 건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건 이례적인데요. 상습 정체로 고속도로 개통만을 기다리고 있던 양평군민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죠.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2008년 민간 제안으로 시작됐습니다. 상습 정체 구간인 6번 국도(남양주-양평)의 교통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인근인 양평군 양서면에 고속도로 분기점(JCT)을 만들어 교통량을 분산할 필요성이 높았거든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그러나 경제성 등에 가로막혀 사업이 지지부진하다가 드디어 2021년 4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하며 '본격 추진'을 알렸습니다. 

고속도로 건설 등 대형 투자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타당성조사→설계→보상→착공 등의 순서로 진행되는데요. 예타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평가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초기 관문이지만 넘기가 어려워 예타를 통과하면 닻을 올렸다고 봅니다. 예타를 통과한 것만으로도 인근의 부동산이 들썩이기도 합니다. 예타에서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아서 정부 판단으로 빠른 추진이 필요한 사업은 '예타 면제' 특혜를 줄 정도인데요. 

서울~양평고속도로는 예타 기준 양평군 양서면을 종점으로 27km 규모(JCT 3곳, IC 3곳)를 계획했는데요. 국토부가 2년 뒤인 2023년 5월 공개한 전략환경영향평가 항목 등에선 종점이 강상면으로 변경됐고 사업 규모도 29km(JCT 3곳, IC 4곳)로 늘어났습니다. 

이미 예타를 통과한 사업의 노선 특히 종점이 바뀌었다는 점, 변경된 종점인 강상면에서 500m 떨어진 자리에 김건희 여사 일가 토지가 있다는 점 등에서 민주당이 의혹을 제기했는데요.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은 공분을 샀습니다. 물론 대안 노선의 면면을 따져보면 좀 다른 시각도 나옵니다. 

서울~양평고속도로 기존·수정안 노선 비교./그래픽=비즈워치

국토부에 따르면 1999년 이후 신설이 추진된 고속도로의 타당성 완료 건수 24건 중 14개(58.3%) 노선의 시·종점이 바뀌었는데요. 

백원국 국토부 제2차관은 "예타는 국가사업이 앞으로 후속 절차를 밟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종의 신체검사"라며 "여기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면 군대에 가고, 군대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는 게 타당성조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예타는 예산 편성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사업비와 사업계획을 개략적으로 검토하는 절차고요. 타당성조사는 예타 이후 여러 대안을 바탕으로 경제적·기술적·사회적·환경적 타당성 등을 평가해 도로사업의 경우 최적의 노선을 정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노선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거죠.

국토부는 대안 노선이 교통량 흡수에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예타 통과 노선은 하루 1만5800대가 이용할 것으로 예측된 데 비해 대안 노선의 예상 교통량은 2만2300대로 하루 약 6500대가 더 많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내놨고요. 

실제로 양평군 주민들이 이용하는 각종 커뮤니티를 보면 대안 노선을 더 환영하는 의견도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문제는 이런 얘기들을 할 틈도 없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돌연 사업을 백지화했다는 점입니다.

/이명근 기자 qwe123@

통상 고속도로 건설사업 등 국책사업은 대규모 사업인 데다 지역민 등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어 추진 과정에서 잡음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백지화하면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합의하는 역할은 주무부처에서 할 일이고요. 

최근 노선 변경 이슈가 있었던 계양~강화고속도로의 경우 2020년 8월 예타를 통과했으나 2022년 1월 환경영향평가의회의 심의 내용을 반영해 바뀐 노선을 공개했는데요. 당시 국토부는 "향후 관계기관과 주민 의견을 수렴해 노선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유독 이번 서울~양평고속도로에서만 백지화가 갑자기 튀어나온 모습인데요. 십수년간 국책사업으로 추진돼 온 것을 행정부 수반, 장관이 하루아침에 뒤엎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 사업과 관련한 예산을 포함한 국토교통부 예산은 국회를 통과한 사안입니다. 국회에서 의결했고, 이는 국회 여야는 물론이고 관련 공공기관, 지자체, 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이 그 안에 녹아 있는 겁니다. 

서울~양평고속도로의 사업비는 예타 통과안 기준 1조7695억원, 대안 노선 기준 1조8661억원인데요.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설계비 등이 예산으로 잡혔습니다. △2022년 기본조사설계비(타당성) 20억6000만원 △2023년 기본조사설계비(타당성) 2억4000만원·기본 및 실시설계 24억8600만원 등이 반영됐죠. 

지역민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백지화시킬 필요가 없는 게 아니냐", "왜 바뀌었냐고 물어보니 판을 엎어버렸다", "얼마나 양평군민을 무시하면 이렇게 결정을 내릴 수 있나" 등의 불만이 쏟아집니다.  

어느 노선이 옮고 그른지 더 적절한지 등을 따져볼 새도 공론화할 새도 없이 백지화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야 힘겨루기 속 애꿎은 양평군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루 빨리 사업이 정상화 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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