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시스템 개편과 총선을 지나면서 지난달부터 전국적으로 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 최근 청약 제도가 개편되면서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의 청약 기회가 확대되자 당첨 기대감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높아진 당첨 확률에도 더 높아진 분양가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는 반응이 많다. 오히려 청약 통장을 더욱 신중히 쓰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전문가들은 입지와 가격에 따른 '청약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청약 문턱 낮아지고, 분양 물량 쏟아지고
부동산정보업체 직방에 따르면 지난 4월 전국에서 아파트 총 4만825가구가 분양할 예정이었다. 이는 전년 실적(1만5192가구) 대비 168.7% 많은 수준이다. 3월 청약홈 개편, 밀어내기 물량, 계절적 요인 등이 맞물린 영향으로 분석된다.
실제로는 4월 2만3756가구(일반분양 1만7717가구)가 분양됐다. 예상 대비 60% 정도의 실적이다. 예정치를 크게 밑돌긴 했지만 지난해 4월 실적과 비교하면 양호하다는 평가다. 5월에는 더 큰 장이 선다.
분양 봇물 소식에 청약 대기자들의 기대감도 한껏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3월25일부터 개편된 청약 제도가 적용되면서 신혼부부·유자녀 가구 중심의 청약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개편된 청약 제도는 주택 청약 시 '결혼 페널티'를 손본 게 골자다. 이전엔 결혼을 하면 부부 중 한 사람만 청약 통장을 쓸 수 있어서 나머지 한 사람의 통장은 무용지물이었다. 이젠 민영주택 일반공급 청약 가점 산정 시 배우자의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합산할 수 있다.
부부 중복 청약도 가능하다. 부부가 당첨자 발표일이 같으면 둘 다 부적격 처리했던 것을 완화해 먼저 신청한 사람은 유효하고 나머지 신청자만 무효 처리한다. 청약 신청자의 배우자가 혼인 전 주택을 소유했거나 청약에 당첨됐던 이력이 있어도 입주자 모집공고일 전 처분했다면 무주택자로 본다.
다자녀 가구의 특별공급 자격 기준도 기존 미성년 자녀 3명 이상에서 2명 이상으로 완화된다. 공공주택 '신생아 특별공급'과 민영주택 '신생아 우선공급'도 생겼다. 신생아 특별·우선 공급의 청약 자격은 혼인 여부와 무관하고 당첨 시 입주 시점에 신생아 특례 디딤돌 대출도 지원한다.
당첨 기대감은 '뿜뿜'
이번 개편으로 '3040' 세대 등 젊은 층 수요자들의 청약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연령대별 아파트 매매 거래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매매된 아파트 총 41만1182건 중 52.4%(21만5801건)가 30·40대였다.
이는 전년 대비 6%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2022년엔 전체 29만8581가구 중 30·40 매입 비중이 46.4%(13만8651)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매매 시장을 주도하는 3040 세대가 올해 기혼, 유자녀 가구 청약 기준 완화를 기회 삼아 청약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알짜 단지'가 대거 분양한다는 점도 청약 열기에 불을 지피고 있다. 서울 △서초구 '래미안원펜타스'(641가구, 이하 일반분양 기준) △강남구 '래미안레벤투스'(308가구) △마포구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1101가구) △서대문구 '서대문센트럴아이파크'(827가구) △성북구 '푸르지오라디우스파크'(1637가구) 등이다.
청약통장 가입자도 느는 것도 이런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청약홈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주택청약 종합저축 가입자는 총 2556만3099명으로 전월(2556만1376명) 대비 1723명 증가했다. 청약통장 가입자가 늘어난 건 2022년 7월(2701만9253명) 이후 20개월 만이다.
주택 매수 심리도 서서히 살아나는 모습이다. 4월 넷째 주(22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8로 전주(89.3) 대비 0.5포인트 상승했다. 매매수급지수는 기준선(100)보다 높으면 시장에 집을 팔려는 이보다 사려는 이가 많다는 것을, 낮으면 그 반대를 뜻한다. 이 지수는 지난 2월 둘째 주(12일 기준)부터 11주째 상승세다.
당첨돼도 분양가 걱정…'청약 양극화' 지속
관건은 분양가다. 매수 심리와 청약 당첨 기대 심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막상 당첨이 된다고 해도 높은 분양가에 맞춰 자금을 대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분양가는 3.3㎡(1평)당 3801만원으로 전년 동월(3068만원)과 비교해 23.9%(733만원) 상승했다. 서울이나 수도권 주요 지역들은 '국민 평형'인 전용 면적 84㎡ 분양가가 10억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분양가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공사비 인상이다. 자재비, 인건비 등 공사비 포함 항목 비용들이 전반적으로 오르자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서울 일부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는 평당 공사비가 1000만원에 육박하는 곳이 속속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평당 공사비 1000만원"…건설업계, 1·10대책 '무용론'(2월29일)
공사비 증액을 두고 시공사과 정비사업 조합이 분쟁을 벌이면서 전반적인 분양 시점이 밀리는 것도 분양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자 등 각종 비용이 늘면서 분양가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주택 매수 심리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긴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갯속'인 것도 분양 시점을 미루는 요인 중 하나다.
분양 전망은 여전히 먹구름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의 전국 아파트 분양전망지수는 2월 86.2를 기점으로 3월 81.4, 4월 75.5로 하락세다. 분양 전망지수가 100을 넘으면 분양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업자가 더 많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이에 '청약 양극화'가 더 심화할 거란 전망이 강해지고 있다.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거나, 가격이 비싸도 향후 미래 가치 상승 여력이 있는 단지에 수요가 쏠릴 것이란 분석이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실 리드는 "금리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한 고금리 기조와 분양가 상한제 주택에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 등이 인상되며 분양가 상승세가 계속될 전망"이라며 "분양가 상승 피로감 등이 맞물리면서 입지나 가격 경쟁력이 있는 단지를 고르는 옥석 가리기가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도 "청약 제도 개편에 따라 수요가 많아질 전망이지만 전국적으로 훈풍이 불진 않을 것"이라며 "분양가가 워낙 높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거나 선호도가 높은 지역들로 쏠릴 것"이라고 봤다.
이어 "수요자들이 가격에 예민한 상황이라 주택 사업자도 수요가 높아졌을 때 분양이 잘 될 수 있도록 분양가를 크게 올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분양가가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기 때문에 가격이 적정한지 시세와 충분히 비교해 보고 지역 전망 등을 살핀 뒤 청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