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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뢰시맨 우주복'에 관세가 붙지 않은 이유

  • 2018.08.07(화) 14:59

[기고]신한관세법인 전희영 관세사

수집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봄직한 취미생활이다. 피규어, 딱지, 스티커 등 좋아하는 것을 모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매스컴에서는 불상(래퍼 도끼)이나 도라에몽 굿즈(탤런트 심형탁) 등 특이한 물품을 모으는 연예인에 대한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른바 ‘덕질’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해외에만 있는 희소한 물품을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전대물(戦隊物·일본에서 제작한 특수촬영물로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의 장르) 수집가는 얼마 전 일본에서 지구방위대 후뢰시맨의 리더인 레드 후뢰시가 직접 착용한 붉은색 헬멧, 쫄쫄이 우주복, 벨트, 장갑 등의 촬영의상을 약 1600만원에 낙찰 받으면서 화제가 됐다. 
 
그런데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낙찰 그 자체가 아닌 낙찰물을 국내로 들여오면서 내야할 수입 관세 이슈였다. 관세청에서 해당 물품을 단순히 중고의상으로 취급해 관세 8%, 부가세 10%를 적용하여 400만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그러자 낙찰자는 "후뢰시맨 레드 의상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희귀물품"이라면서 관세법상 '수집품'에 해당하니 세금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맞섰다.
 
▲ 후뢰시맨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관세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며 경제 정책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품목에 따라 세율을 달리 책정하고 있다. 일반적인 물품은 대체로 관세율이 8%이다. 하지만 쌀, 옥수수 등의 곡물류는 동종곡물을 생산하는 국내 농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율이 500%에 육박한다. 이 경우 사실 관세액이 물품가격의 5배나 되기 때문에 수입하지 말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반면 IT관련 품목에 대해서는 정보기술 확대를 위해 WTO(세계무역기구)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수집품은 관세율이 '0%'다.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해부학, 사학, 고고학, 고생물학, 민족학, 고전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수집품에 한해서다. 이런 수집품은 과세 실익이 없고 관련연구를 육성한다는 취지로 무관세를 적용한다. 하지만 관세법상 수집품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면 각각의 품목으로 분류되어 평균 8%의 관세 및 10%의 부가세를 내야한다. 
 
관세법상 수집품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수집품은 "본질적인 가치는 작지만 그 희소성·집합(their grouping)·겉모양의 관점에서 흥미를 돋울 수 있는 것"(관세법 별표 관세율표의 해설서 中)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합해보면 동물학, 식물학, 사학 등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으면서 희소하거나 겉모양이 독특하여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관세법상 수집품이 된다. 화석, 미라, 고대인의 도구, 무기, 숭배물 등이 예시로 제시돼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모았던 공장에서 찍어내는 피규어, 딱지, 스티커 등은 관세법상 수집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탤런트 심형탁의 도라에몽 굿즈는 수집품이 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다만 래퍼 도끼가 수집하는 불상의 경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면서 희소하면 수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다시 후뢰시맨 레드 의상으로 돌아와보자. 후뢰시맨 레드 의상은 결론적으로 관세법상 수집품으로 인정 받아 관세 면제, 부가세 면세를 받았다. 수집가 입장에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전대물이라는 장르의 수집품은 우리나라에 수입된 적이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수집품으로 분류된 적은 없었다. 따라서 관세청에서도 해당물품을 수집품으로 보아야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달여간 꼼꼼히 검토한 관세청은 '후뢰시맨 의상은 방송사(史)를 연구할 수 있는 역사학(historical) 관련 수집품'이라고 결정했다. 후뢰시맨 레드 의상은 옷의 재질로만 가치를 따지자면 몇 만원 수준이지만 촬영 당시 배우가 실제로 착용한 유일한 의상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집품으로 인정 받은 품목으로는 1920년대 미국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가 사용했던 야구방망이가 있다. 야구사(史)에 있어 희소성과 흥미를 돋울 수 있는 명사(名士)소유의 물품으로 보았다. 찰리 채플린의 모자, 앨비스 프레슬리의 재킷 역시 수집품으로 인정받았다. 해외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옷이 수집품으로 인정 받은 사례가 있다. 
 
이러한 국내외 사례를 보더라도 전대물인 후뢰시맨 레드 의상을 수집품으로 인정한 것은 관세청의 이례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정은 앞으로 관세법상 수집품을 인정하는 패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관세법상 수집품은 관세와 부가세가 없는 만큼 수집품 여부를 결정할 때는 관세의 과세 취지를 충분히 고려하고 관련 법규를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수집은 역사의 훼손에 맞서 온 유일한 무기다'라는 말이 있다. 수집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사회, 문화,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행위다. 가치 있는 수집품이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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