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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왜 과거를 지우지 않았을까?

  • 2015.10.29(목) 17:56

▲ 신세계백화점은 개점기념일을 10월24일로 하고 있다. 이날은 1930년에 세워진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의 개점일이다. 신세계가 과거의 역사를 지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SSG블로그 갈무리)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1936)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이다. 생명력을 잃고 무기력에 빠져있던 주인공이 경성 미쓰코시백화점 옥상에 올라 자신과 세상을 향해 던진 말이다.

왜 하필 미쓰코시백화점이었을까.

1930년 10월24일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문을 연 미쓰코시 경성점은 국내 첫 백화점이자 당시로선 조선과 만주를 통틀어 가장 큰 백화점이었다. 식민지 암울한 현실과 대비를 이루는 모순적 공간이자, 근대상업사의 상징과도 같은 이 곳에서 시인 겸 소설가이자 건축학도였던 이상은 억압과 좌절, 개인의 자유와 탈출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느꼈던 게 아닐까.

미쓰코시백화점은 이상의 '날개'뿐 아니라 채만식의 '태평천하'(1938)에도 등장한다. 해방 이후 6·25 전쟁의 포화 속에도 살아남은 이 건물은 소설가 박완서의 작품 '나목'(1970)의 배경공간이 됐고, 가장 최근에는 영화 '암살'(2015)에서 1930년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소재로도 활용됐다.

일제강점기 때 문을 연 이 건물은 85년이 흐른 지금 신세계백화점이 본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1963년 7월15일 삼성그룹은 동방생명(現 삼성생명)을 인수했는데 그 때 같이 딸려온 게 동방생명 소유의 동화백화점(옛 미쓰코시 경성점)이다. 이후 삼성이 1997년 4월16일 신세계를 계열분리하면서 근대상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미쓰코시백화점이 신세계로 넘어갔다.

일제시대 땐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6·25 전쟁 기간에는 미군 PX(군사기지 내 매점)로 활용되던 이 공간은 현재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등 명품브랜드가 영업 중이다.

신세계는 근현대사의 아픔과 영화를 간직한 이 공간을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였다.

 

올해도 미쓰코시 경성점이 처음 문을 연 날에 맞춰 대규모 개점행사를 연다. 일제시대 미쓰코시 경성점의 오픈일을 굳이 생일로 기념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신세계는 역사 자체를 지우고 숨기는 것보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게 낫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는 지난 6월 본점 본관(옛 미쓰코시 경성점)을 시내면세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발표했다.

 

여기에는 본관 바로 옆에 있는 SC은행 제일지점을 관광객 편의시설로 사용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SC은행 제일지점은 1935년 지어진 건물로 서울시가 지정한 유형문화재(71호)다. 인근에는 600여년 역사의 남대문 시장이 있다. 비록 고배를 마셨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과 문화재를 내세워 면세점 경쟁에 뛰어든 곳은 신세계가 유일했다.

신세계는 이번에는 본관 바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본점 신관)을 면세점 후보지로 정했다. 경쟁사들처럼 서울 강남과 동대문 등을 면세점 후보지로 내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픈 과거를 왜 버리지 않느냐'는 핀잔이 두려웠다면 지금의 자리를 진작 포기했을지 모른다. 신세계는 역사를 기록하고 남기는 역할에 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게 아닐까. 2차 면세점 경쟁의 결과는 내달 초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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