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이 인수•합병(M&A) 잔혹사를 딛고 LIG손해보험 인수에 바짝 다가섰다. 국민은행에 90% 가까이 편중된 기형적인 포트폴리오를 개선할 좋은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임영록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물론 KB금융 자체가 금융감독원의 제재 대상에 올라있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예비입찰 때보다 2000억 원 이상 높게 써낸 인수 가격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012년 ING생명 인수에 반대하면서 높은 인수 가격과 함께 보험산업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들었던 임 회장과 KB금융 사외이사진의 선택에도 관심이 쏠린다.
◇ KB금융, LIG손보 매각 우선협상자 선정
LIG그룹 측은 11일 LIG손해보험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KB금융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차순위 협상 대상은 동양생명-보고펀드로 정해졌다. 애초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던 롯데그룹은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고도 LIG손보 노조의 반대로 차순위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은 앞으로 2주간 배타적으로 LIG손보 인수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KB금융이 이번에 LIG손보를 인수하면 국민은행에 90% 가까이 의존하고 있는 그룹 포트폴리오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된다. 국민은행은 물론 KB생명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된다. 손해보험업계 4위권인 LIG손보 역시 KB금융의 막대한 자금력과 영업망을 등에 업고 선두권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KB금융그룹을 짓눌러온 M&A 저주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KB금융은 그동안 M&A 잔혹사로 불릴 만큼 대형 M&A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실제로 KB금융은 외환은행과 ING생명, 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매물이 나올 때마다 인수전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 KB금융과 경영진 중징계 최대 변수로
하지만 최근 잇단 금융사고로 임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등 주요 경영진이 모두 금감원의 중징계 대상에 올라 있어 인허가 과정에서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KB금융그룹 자체로도 기관경고가 예정돼 있다.
KB금융 측은 일단 KB금융이나 경영진이 제재를 받더라도 LIG손보 인수에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확인했다. 금감원의 제재가 인수 여부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정성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순 있지만, 직접적인 걸림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지배구조의 취약성과 허술한 내부통제를 걸고 넘어지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다 임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의 거취에 문제가 생기면 인수 동력 자체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 2천억 이상 비싸진 인수 가격도 도마
인수 가격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KB금융이 LIG손보 입찰 과정에서 써낸 인수 가격은 6400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예비입찰 때 써낸 4200억~4400억 원보다 2000억 원 이상 많은 금액이다.
실제로 LIG손보는 할인 요소가 만만치 않다. 경영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 하락에 따른 유상 증자 이슈에다 강성 노조도 부담이다. 일반 기업보험 부문에서 LG와 GS 등 범 LG 계열사의 물량이 28%에 달한다는 점도 취약점이다. 서울 강남 본사와 연수원 등 부동산을 고려하더라도 6000억 원은 너무 비싸다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은 2012년 ING생명 인수를 추진할 당시에도 사외이사들이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KB금융은 당시 2조 4000억 원대로 거론되던 인수 가격을 2조 2000억 원대로 낮췄지만, 인수는 결국 무산됐다.
◇ 사외이사진 이번 선택은 ‘주목’
이번엔 애초 거론되던 가격보다 오히려 2000억 원 이상 더 올라갔다는 점에서 이사회 논의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ING생명 인수를 추진할 당시 사외이사들이 반대 논거로 내세웠던 보험산업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임 회장의 선택도 흥미롭다. 임 회장은 2012년 당시 어윤대 전 회장의 지휘 아래 있는 KB금융지주 사장이면서도 사외이사진의 편에 서서 ING생명 인수를 무산시킨 바 있다. 그랬던 임 회장이 이번엔 LIG손보 인수를 주도하면서 사외이사들을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 섰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 인수 가격 논란은 KB금융과의 시너지를 고려하면 어렵지 않게 풀 수도 있는 문제”라면서도 “ING생명 인수를 반대하던 당시와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외이사들의 선택이 주목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