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사진 오른쪽)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사진 왼쪽)이 손을 잡았다. 김 원장은 취임 하루뒤인 지난 3일 최 위원장이 있는 광화문 청사를 찾아갔다. 김 원장은 "금융위와 금감원은 한팀"이라며 "긴장관계로 갈 일이 없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앞으로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존중하고 소통채널을 활성화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금융위는 두사람이 활짝 웃으면 손을 잡고 있는 상견례 사진 3장을 공개했다.
지난 3일 상견례 직전 김 원장은 참여연대에서 함께 일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최한 서울 핀테크 랩 개관식에 참석했다. 원장 취임 후 첫 공식행사는 '금융수장 상견례'가 아닌 '박 시장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 김 원장은 최 위원장과 관계가 불편하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혀 그런 일 없다"고 답했다.
김 원장은 부인하지만 김 원장이 취임하자 금융당국 수장끼리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유는 뭘까.
▲ 2014년 10월 당시 김기식 의원(왼쪽)이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온 최종구 금감원 수석부원장에 질의하고 있다. [사진 = 국회방송 캡처] |
◇ 2014년 국정감사 '악연'
○김기식 위원 : 최종구 수석부원장님 조직이 몇달간에 걸쳐서 조사를 해서 징계를 통보했는데 이것을 수석부원장이라는 분이 밑에 수하 직원들이 몇달 동안 조사를 해서 징계 통보한 것을 뒤집고 그것을 금감원장이 다시 뒤집어야 하는, 그래서 이런 혼란을 주도한 것 수석부원장이 맞지요?
○최종구 금융감독원수석부원장 :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주도해서 뒤집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검사국도 의견을 얘기할 만큼 다 했습니다.
2014년 10월16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 속기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최종구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거세게 몰아세웠다. 김 의원은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촉발된 'KB 사태'에 대해 금감원이 징계를 내리는 과정에서 최 수석부원장이 개입해 '중징계'를 '경징계'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김기식 위원 : 2014년 대한민국 금융의 아주 추악한 단면을 보여 준 겁니다. 이번 사안은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종구 수석부원장 이 모피아 라인이 매우 의도적으로 같은 모피아 행시 20회 선배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을 비호해서 경징계로 몰아가려다가 금융위 부원장과 금감원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반격해서 이것을 다시 중징계 해서 두사람이 다 퇴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사안입니다.
○최종구 금융감독원수석부원장 : 위원님,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김 의원은 'KB사태' 솜방망이 제재에 대한 원인을 모피아로 지목했다. 모피아는 과거 재정경제부 출신들이 정계나 금융권에서 만든 세력을 말한다. 행시 25회 최종구 수석부원장이 행시 24회 신제윤 위원장이 거쳤던 국제금융과장, 국제금융국장 등 자리를 이어받으며 20년간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왔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국정감사에 앞선 그해 8월부터 김 의원은 최 수석부원장을 겨냥했다. 당시 김 의원이 낸 보도자료를 보면 "특히 제재심의위원장인 최종구 수석부원장은 강원도 출신 재경 고위공직자들의 모임인 '강우회'를 통해 강우회 회장인 임영록 회장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의 공정성이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정감사 한달 뒤인 11월 최종구 수석부원장은 사표를 냈다. 이후 최 수석부원장은 2016년 SGI서울보증 대표, 2017년 한국수출입은행장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됐다. 김 의원은 2016년 4년간의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뒤 더미래연구소장을 거친 뒤 지난 2일 금감원장에 취임했다. 운명의 장난인 듯 김기식 원장을 금감원장으로 제청한 것은 최종구 위원장이었다.
◇ 2018년 금융당국 수장으로 재회
과거 악연이 있었던 두사람이 금융당국 수장으로 만나면서 관계가 불편하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지만 원래 금융당국 체계로 금융위가 금감원 위다.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융위는 금감원의 업무·운영·관리에 대해 지도·감독하고 정관변경·예산 결산을 승인한다. 금감원장 선임도 금융위 의결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제청해야 한다.
조직은 금융위가 금감원보다 위에 있지만 이번에 김 원장이 오면서 수장은 금감원장이 금융위원장보다 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은 문재인 대선캠프 정책특보를 맡았고 금융 관련 공약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중 한명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추천해 금융위 수장을 맡은 최 위원장에 비해 김 원장은 청와대와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 원장의 취임사를 보면 첫번째 감독방향이 '마이 웨이'다. 김 원장은 "정책과 감독은 큰 방향에서 같이 가야 한다"며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정책기관과 감독기관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얼핏 들으면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행간에서 정책기관인 금융위와 감독기관인 금감원 파워게임을 읽을 수 있다. 김 원장은 "기본 방향에서는 같이 가면서도 금융감독의 원칙이 정치적, 정책적 고려에 의해 왜곡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건은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두 금융당국 수장이 손발을 잘 맞출 수 있을지다. 자칫 금감원이 마이웨이로 '칼'을 휘두른다면 금감원에 대한 감독권한을 가진 금융위가 가만히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김 원장은 최 위원장 앞에선 "금융위와 금감원은 한 팀"이라고 말했지만 금감원 직원들 앞에선 "정책과 감독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앞으로 김 원장이 '팀 워크'와 '마이웨이' 중에 어느 길을 걸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