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김흥종 : 저희가 유럽 현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한국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정책 건의를 위해서 유럽사무소가 꼭 필요하다.
위원장 김기식 : 유럽사무소를 KIEP 단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어려운 점이 있을 텐데 저희 위원회 부대의견으로 유럽사무소 설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내년에는 예산을 반영하고…
2015년 10월26일 열린 정무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금융감독원장, 사진)과 김흥종 부원장이 KIEP 유럽사무소 설립을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유럽사무소 설립을 지지했지만 일년전만해도 그는 KIEP '저격수'였다.
김 의원은 2014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선 KIEP 예산 4억1000만원을 삭감하고, 국정감사에선 KIEP를 관리감독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외유성 출장'에 대해 질타했다. KIEP 원장 교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과시도 했다. 일년만에 김 의원의 태도가 변한 이유는 뭘까.
김 의원과 김 부원장은 초면이 아니다. 2015년 5월15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김 의원과 김 부원장은 미국 워싱턴DC, 벨기에 브뤼셀, 이탈리아 로마, 스위스 제네바 등을 함께 다녔다. 여행경비 3077만원은 KIEP에서 부담했다. 일각에선 외유성 출장을 다녀오고 나서 김 의원의 태도가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기식 원장은 최근 "예산소위 위원장으로서 KIEP의 준비 부족 등을 지적하면서도 여러 위원들의 찬성을 감안해 심사보고서에 '부대의견'을 제시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원장이 정무위 '저승사자'로 불렸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이 해명은 공감받기 쉽지 않다.
김기식 원장은 외유성 출장 논란에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의혹이 쏟아질 때 마다 적극 대응한다. 지난 8일 이후 김 원장이 '외유성 출장' 해명으로 배포한 자료만 5건이다. 청와대도 김 원장을 감싸고 있다. 검증 결과 의혹이 제기된 해외 출장은 공익적 목적이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출신 김 원장을 왜 금감원장 자리에 앉혔느냐는 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김 원장은 1994년 참여연대를 만들었고 소액주주운동 등을 주도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경력 대부분은 참여연대가 채우고 있다. '금융 검찰'이라 불리는 금감원 수장에 김 원장이 선임됐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올곧은 이미지를 가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고, 금융 감독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선 걱정도 많았다. 그는 취임 다음날 "업무 파악하는 것으로만 숨이 할딱할딱 넘어가고 있다"고 말할 정도로 부족한 전문성을 메우려 했다.
하지만 부족한 전문성을 메우기 전에 올곧았던 그의 이미지부터 금이 가고 있다. 이번 외유성 출장 논란도 '재벌에 따끔한 충고를 하는 원칙주의자'라는 이미지를 가진 김 원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파장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그가 상징성까지 잃어버리게 되면 남는 게 무엇이 있을지 의문은 든다.
김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피감기관의 비용부담으로 이렇게 해외 출장을 하는 경우가 잦습니까'라는 질문에 "19대 국회까지는 국회에서 조금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부분들이 있다"고 답했다.
'관행'은 기시감이 드는 단어다. 지난달 최흥식 전 금감원장은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친구 아들을) 추천했지만 관여하지 않았다"며 "당시 관행이었다"고 해명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최 전 원장이 추천한 친구 아들은 서류전형 점수가 합격기준에 1점 미달했지만 서류전형에 통과했다. 결과론적으로 최 전 원장이 친구 아들에게 1점을 배려한 탓에 사임한 것이다. 국민들이 정무위에서 재벌 저격수라 불렸던 김기식 의원에게 바라는 것은 '관행'이라는 답은 아닐 것이다. 국민들은 김 원장에게 더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고, 그는 그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