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엔씨 AI'의 기술력을 널리 알리고, 인공지능(AI)으로 돈 버는 활동을 본격 시작할 것입니다. 나아가 국내외 빅이벤트에 꾸준히 참여해 국내외 파트너사를 적극적으로 찾을 것이고요. 그렇게 해서 콘텐츠 분야 '버티컬(특정 산업 맞춤형) AI'는 엔씨가 제일 잘한다는 인지도를 구축해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 중장기적 목표입니다.
임수진 엔씨 AI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최근 판교 엔씨소프트 사옥에서 비즈워치와 만나 "이미 MLB·디스커버리와 같은 패션 브랜드에 AI 기술을 제공하고 있고, 현재는 20곳 정도와 사업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엔씨 AI는 지난 2월 엔씨소프트가 신설한 AI 기술 전문 자회사다. AI를 활용한 오디오, 그래픽, 챗봇, 번역 등의 기술을 자사 게임 개발·운영에 적용한데 이어 패션, 미디어, 콘텐츠 등 다양한 산업 맞춤형 AI 솔루션을 제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든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사람과 기술'이 자신감의 원천
'리니지'와 같은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유명한 기업이 AI라는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어 '세계 1위'를 목표로 삼은 건 우수한 인력과 장기간 축적한 기술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엔씨는 2011년 국내 게임사 최초로 사내 AI 연구·개발(R&D) 조직을 출범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바둑보다 경우의 수가 많다는 MMORPG에서 최정상급 프로게이머를 이길 수준의 AI 개발에 성공했고, 거대언어모델(LLM)도 선보였다. 이렇게 14년간 누적된 기술력과 노하우,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게임을 넘어 미디어, 콘텐츠 사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임 CBO는 "엔씨 AI 기술은 상용화 수준을 넘어 당장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레디 투 세일(ready to sale)'의 단계에 있다. 국내 버티컬 AI 분야의 선두주자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 시대가 열리면서 판이 깔렸고 시장에 본격 진입할 타이밍이 왔다고 판단해 엔씨 AI가 출범한 것"이라며 "다른 기업들은 이제 막 AI를 시작하는 단계인데, 우리는 14년 동안 기술과 경험을 쌓은 덕분에 앞서가는 게 분명히 있다. 장기간 누적된 투자와 기술뿐 아니라 이제는 채용하기 어려운 AI 관련 인적 자원도 이미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엔씨 AI의 인력 규모는 200명 수준에 달한다. 대다수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장기간 이어지는 우직한 R&D로 게임 업계를 평정했던 엔씨의 DNA가 AI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임 CBO는 "현재 엔씨 AI는 연구원이 영업과 홍보도 함께 하는 등 마치 스타트업처럼 전방위로 뛰고 있다"며 "AI가 연구원의 논문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시장에 증명하는 과정이 멤버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 CBO는 엔씨 AI 출범 무렵인 지난 2월 합류했다. 이번 인터뷰도 국내 언론 가운데 처음인데 이색 경력이 눈길을 끈다. 그의 마지막 직장은 식품 제조·유통기업 아워홈이다. 도무지 AI 사업과 특별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인상이다. 30년 가까운 경력을 살펴봐도 그렇다. 임 CBO는 인터파크, 다음, SK컴즈, 네오플과 같은 IT·게임·커머스 업계뿐 아니라 CJ올리브영, 아워홈 등 유통업계를 거치며 주로 신사업 추진을 맡았다. 벤처캐피털 '더벤처스', 스타트업 '헤이뷰티' 창업 경험도 있다.
임 CBO는 "저는 27년차 신규 사업 기획자"라며 "그동안 경험한 회사에서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해왔고, 창업과 투자도 했다. 엔씨 AI는 '제로투원(zero to one·무에서 유로)'이 요구되는 스타트업 같다는 점에서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PC·온라인, 모바일 시대가 열린 뒤 시장 수요에 따라 검색엔진, 모바일 메신저, 온라인 쇼핑몰 등 다양한 버티컬 서비스가 나타났듯 AI 시대 역시 매체만 다를뿐 신사업이 태어나고 움직이는 속성은 유사하다는 얘기다.

게임·미디어·콘텐츠 등 '준비 완료'
엔씨 AI가 갖춘 기술은 게임과 미디어·콘텐츠 산업에 당장 적용할 수준에 올랐다. 주요 사업을 보면 '콘텐츠 크리에이션 AI' 경우 생성형 AI를 통해 게임·애니메이션·광고·숏폼·웹툰 등의 영역에서 창작을 더 쉽고 빠르게 이뤄지도록 돕는다. '다국어 번역 AI'는 기업의 글로벌 시장 공략을 돕고 AI 챗봇의 경우 글로벌 고객 응대를 지원한다. '커머스 AI'는 제품 상세 페이지를 실시간 번역하고 라이브 콘텐츠를 다국어로 더빙까지 해준다.
AI 기반으로 저작권 보호 솔루션도 제공하고, 부적절 콘텐츠 감지 역시 가능하다. 임 CBO는 "외부 게임사들에도 AI 기술을 적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각사 맞춤형으로 AI 기술을 적용하면 매출 규모는 점점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삼성SDS나 LG CNS 같이 일종의 'AI 분야 시스템통합(SI) 기업'으로 기능하면 유지·보수와 서비스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장기적인 매출 확보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패션 특화 이미지 생성 AI 서비스 '엔씨 AI 아트 패션'은 이미 외부에 적용해 매출이 발생하는 단계다. 상품·모델·마케팅 이미지를 AI 기반으로 생성·변환하는 것인데, 텍스트를 입력하면 원하는 스타일로 제작 가능한 게 특징이다. 국내 패션 기업들과 개념검증(PoC)을 완료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임 CBO는 "패션 분야의 경우 턴키 방식이 아닌 SaaS로 만든 까닭에 유료화 작업이 성공적"이라며 "AI 기반 음성 생성, 더빙 등 다른 서비스들도 이미 제공하고 있는데, 역시 유료화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유료화가 시도되는 AI 음성 생성 서비스 '엔씨 AI 오디오'는 공식 안내·뉴스부터 게임·영화 등 연기체 음성까지 생성 가능하다. 엔씨의 신작 게임 '아이온2' 캐릭터 목소리에 적용한 경험을 토대로 외부 사업자의 미디어·광고 콘텐츠에도 접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엔씨 AI 더빙'의 경우 AI가 영상 속 목소리를 텍스트로 변화한 뒤 이를 번역해 다시 음성으로 만들 수 있어 방송·라이브 커머스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문장과 이미지로 3차원(3D) 콘텐츠를 제작해주는 '엔씨 AI 그래픽스'도 주목할 만하다. 이 역시 아이온2나 쓰론앤리버티(TL)와 같은 자사 게임에 적용하며 효율성을 검증했다. 엔씨는 이를 통해 게임 업데이트를 제작하는 시간을 기존 4시간에서 1시간으로 확 줄였다. 광학문자인식(OCR) 기술로 이미지 속 제품 설명을 번역하는 기술도 갖추고 있다. 커머스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엔씨는 다르다' 평가…"글로벌로 나갈 것"
리니지 시리즈로 쌓은 국내 최고 게임사의 명성은 AI에 도움이 될까. 임 CBO는 "AI 사업 추진을 위해 만나고 있는 기업들 사이에서 게임사의 영상 기술이 다른 곳보다 고도로 발달됐다고 평가하는 시각이 있더라"며 "실제로 엔씨 명의로 메일을 보내면 반응도 빠르고 제품을 경험하면 '역시 엔씨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특히 "AI라고 해서 다 팔리는 것은 아니다. 더 좋은 기술이 선택을 받는다"며 "그동안 '트리플에이(블록버스터급)' 게임을 주로 만든 엔씨의 그래픽, 콘텐츠 기술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엔씨 AI는 판을 더 키울 계획이다. 다양한 국내외 대형 이벤트에 참가해 기술을 알리고 파트너사를 확보해 무대를 글로벌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미 엔씨 AI는 올해 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에 LG유플러스와 함께 참가해 '아바타시프트'를 공개한 바 있다. 아바타시프트는 사진을 통한 아바타 생성, 감정 연기가 가능한 AI 음성합성(TTS·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 음성 기반 얼굴 애니메이션 생성을 결합한 기술이다. AI를 활용해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을 바탕으로 한 아바타를 생성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할 수 있다.
여세를 몰아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내달 경기 판교에서 개최하는 '게임 AI 로드쇼'(AWS for Games AI Roadshow)에 참가해 기술력을 뽐낼 계획이다. 오는 8월은 세계 최대 컴퓨터 그래픽 학회 시그래프(SIGGRAPH)에 참여하고, 하반기에 열리는 세계 3대 게임 전시회 '도쿄 게임쇼', 부산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에도 B2B로 참가할 예정이다. 임 CBO는 "우리의 기술력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적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 AI 기술의 글로벌 전개를 엔씨 혼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앞으로 꼬박꼬박 밖으로 나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파트너십을 많이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게임사 AI 조직에 연락해 함께 해외로 나가자고도 제안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 게임 생태계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 엔씨소프트 본사의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임 CBO는 "글로벌 진출은 엔씨소프트 글로벌전략본부와 함께 하고 있다"며 "분사한 이유는 AI 기술을 사내가 아닌 다른 곳에도 공급하는 사업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이지 엔씨와 '바이바이(bye bye)'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라고 했다.
자체 기술과 인프라를 갖춰 인공지능 주권을 지킨다는 이른바 '소버린 AI'에 대해선 융통성이 있다. 임 CBO는 "14년 동안 자체 AI 기술을 쌓았지만, 외부 기술은 하나도 안 쓴다는 방향성은 아니다"라며 "고객사가 원한다면 외부 기술을 탑재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했다.
임 CBO는 "한국 IT·콘텐츠 기업 중에도 모바일 메신저 라인, 네이버웹툰과 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며 "AI 산업에선 챗GPT가 세계적으로 잘하지만, 콘텐츠 분야 버티컬 AI는 엔씨 만큼 전방위적으로 하는 곳이 없다. 이 분야에서 제일 잘한다는 인지도를 계속 쌓아 세계 최고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