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업계가 올 1분기에도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올해까지 이어진 이상기후 여파에 소비심리 위축 장기화가 겹치면서 주요 패션기업 5개사의 매출이 모두 뒷걸음질쳤다. 패션기업들은 얼어붙은 내수 시장을 넘어 해외 영토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와 함께 대선 후 올 하반기부터 소비심리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며 브랜드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수익성 악화
삼성물산 패션부문(삼성패션)의 지난 1분기 매출액은 5044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5%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36.8% 줄어든 342억원에 그쳤다. 한섬의 1분기 매출액도 전년 동기보다 3.4% 줄어든 380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18억원으로 전년 대비 22.3% 줄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1분기 매출액 3042억원, 영업이익 47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1.7%, 58.3%씩 줄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코오롱FnC)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4.1% 감소한 2629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손실이 7억원 발생해 적자 전환했다.

LF는 코람코 등 사업 다각화 덕분에 올해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 LF의 1분기 영업이익은 31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2.3% 증가했다. 하지만 LF의 1분기 매출액 역시 4303억원으로 전년 대비 3.7% 감소했다.
이 같은 실적 부진에 대해 각 패션업체들은 일제히 경기 침체와 이상기후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삼성패션은 "소비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후 영향 등으로 전년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일부 줄었다"고 밝혔다.
한섬도 "대내외적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영향으로 매출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대내외 불확실성 지속으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와 이상기후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작년에도 힘들었는데
패션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소비심리 위축과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요 5개사는 지난해에도 일제히 매출이 줄었고 LF를 제외한 4개사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두자릿수의 감소율을 보였다. 판매가 줄면 재고가 쌓이고 할인 행사가 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할 수밖에 없다.
올 1분기에도 비상계엄에 따른 탄핵 정국 탓에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다. 게다가 통상 봄옷 판매가 시작되는 2월에는 '이상저온'으로 봄 장사를 망쳤다. 지난 2월 평균 기온은 최근 10년새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3월에는 평균기온이 예년보다 높은 수준이었으나 중순에도 눈이 내리는 등 날씨가 오락가락하면서 패션 소비가 크게 위축됐다.

실제로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의복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2020=100)는 지난해 1분기부터 4분기까지 4개 분기 연속 전년 동기보다 줄어들었다. 올 1분기 의복 소매판매액지수도 지난해 1분기(108.4)과 비슷한 수준인 108.6에 그쳤다.
패션업계는 2분기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돼 실적 회복이 더딜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음달 대선이 예정돼 있어 소비자의 지갑을 열만한 대규모 프로모션 등이 어려운 상황이다. 2분기에도 추위와 더위를 오가며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날씨가 따뜻해져야 할 때 추위가 지속되면 소비자들은 아예 옷을 사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날씨가 풀린다 해도 곧 여름이 다가온다는 생각 때문에 봄 옷을 사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1,2분기 의류 판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좁다
결국 패션기업들은 얼어붙은 내수 시장 대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LF는 헤지스의 인도 시장 진출을 위해 지난 3월 인도 현지 기업 '아시아 브랜즈 코프(Asian Brands Corp.)와 전략적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헤지스는 2007년 대만을 시작으로 베트남, 러시아 등에 진출한 LF의 대표 캐주얼 브랜드다. LF는 헤지스가 이미 진출한 주요 국가에서 자리매김한 만큼 올해 인도를 시작으로 중동 등 신시장 개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LF는 올 하반기 중 인도에 헤지스 단독 1호 매장을 열 예정이다. 3년 내 총 10여 개 매장을 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LF는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캐주얼 브랜드 '던스트'의 중국 공략도 본격화 한다. LF는 지난해 상하이에 던스트의 중국법인을 세운 바 있다. 던스트는 주요 중국 내수 온라인 플랫폼 입점을 마쳤고 라이브 전용 스튜디오를 신설하며 라이브커머스 사업도 확대 중이다. 유럽과 미주 중심으로 홀세일 비즈니스도 계속 확장할 예정이다. 던스트는 최근 진행한 25 프리폴(Pre-fall) 시즌 수출 계약 규모가 지난해 프리폴보다 50% 늘어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코오롱FnC가 운영하는 골프웨어 브랜드 '지포어'도 지난달 말부터 일본과 중국 주요 상권에 매장을 오픈하며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화 했다. 코오롱FnC는 지난해 지포어의 미국 본사와 중국·일본의 마스터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아직 해외 진출 초기지만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로 포지셔닝해 빠르게 시장에 안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코오롱FnC는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 중인 코오롱스포츠의 사업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코오롱스포츠 차이나는 지난해 매출(리테일 기준) 750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올 1분기 매출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거의 2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패션은 자사 SPA '에잇세컨즈'로 필리핀 시장에 진출한다. 에잇세컨즈는 삼성패션이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해 두고 만든 브랜드다. 동남아 시장을 1순위로 검토하며 최근 필리핀 유통업체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올 하반기 필리핀 마닐라에 'SM 몰 오브 아시아' 입점을 시작으로 연내 3개 매장을 순차적으로 열 계획이다.
젊은 고객 잡아라
패션 대신 화장품을 들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는 기업도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과 LF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코스메틱 부문은 패션이 부진한 가운데에서도 지난 1분기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하는 등 성장세가 높다. 자사 브랜드 '연작'과 '비디비치'가 전년보다 각각 82.2%, 20.1%씩 성장한 점이 두드러졌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인수한 '어뮤즈'의 해외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자사 브랜드 연작과 비디비치도 일본, 중국, 미국 등에 진출시킨다는 계획이다.
LF도 자사 화장품 브랜드 '아떼'의 해외 사업을 확대한다. 아떼는 지난해 베트남, 영국 등에 진출한 데 이어 올 1월부터 일본 최대 규모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재팬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LF는 올 하반기까지 돈키호테 등 일본 대형 버라이어티샵과 주요 드러그스토어로 아떼의 유통망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폴란드, 대만 등 신규 국가 진출을 검토하는 등 올해 해외 진출 투자를 늘린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국내 사업 회복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한 신규 브랜드 론칭에 분주하다. 삼성패션이 운영하는 편집숍 '비이커'는 지난 3월 자체 기획 데님 전문 브랜드 '스티치 컴스 블루'를 론칭했다. 최근 소비자들의 데님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데 착안해 데님 전문 브랜드를 선보였다. 비이커가 자체 브랜드(PB)를 선보이는 것은 '비이커 오리지널' 이후 처음이다.
코오롱FnC도 올 하반기 '헬리녹스'를 론칭한다. 코오롱FnC는 지난해 캠핑용품 브랜드 헬리녹스로부터 '헬리녹스 어패럴'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헬리녹스 브랜드를 이용한 의류를 개발, 생산해 올 하반기 선보인다는 목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국내의 젊은 신규 고객 유입을 위해 자사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리브랜딩했다. 메이크업 브랜드로 탄생했던 비디비치에 스킨케어 기능까지 더해 업그레이드한 것이 이번 리브랜딩의 골자다. 비디비치는 기존 백화점 매장에 더해 올리브영 입점으로 2535 타깃을 공략한다. 백화점에서는 비디비치의 전 제품을, 올리브영에서는 신제품 메이크업 제품을 판매하는 투트랙 전략을 가져갈 계획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패션업계는 지난해부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당분간 내수 시장 회복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각 브랜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해외 시장 개척 등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