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닭의 진격은 어디까지일까. 라면업계 만년 3위였던 삼양식품이 농심을 추격하고 있다. 이전까지는 양 사 간 직접 비교가 어려운 수준의 격차가 있었지만 이젠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런 추세라면 1985년 농심이 삼양식품을 제치고 라면업계 1위로 올라선 지 40여 년 만에 재역전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닿을락 말락
지난 1분기 삼양식품은 면·스낵 부문에서 480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에 비해 35.5% 늘어난 역대 최대 1분기 매출이다. 지난해 면·스낵 부문 전체 매출이 1조5866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올해 2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삼양식품의 성장세는 말 그대로 폭발적이다. 2021년까지만 해도 삼양식품의 연매출은 6000억원대 초반에 머물렀다. 불닭볶음면의 성장세도 그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유튜브에서 유행한 뒤로 연평균 30%대 고성장을 매년 이어가고 있다. 업계 2위 오뚜기는 일찌감치 제쳤다.
쫓기는 1위 농심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신라면을 중심으로 꾸준히 해외 시장에서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 1분기 농심의 라면 매출은 7539억원으로 전년 대비 6.8% 성장했다. 2조원 초반에서 횡보하던 연간 매출도 2조5000억원대를 돌파했다. 나무랄 데 없는 성과다.
문제는 쫓는 자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1조4000억원이 넘었던 양 사 간의 매출 격차는 지난해 9000억원 아래로 줄었다. 최근 추세대로라면 양 사의 라면 매출은 오는 2027년 역전된다. 농심은 지난 1988년 처음으로 라면 시장 1위를 차지했다. 2027년 삼양식품이 1위를 차지한다면 40년 만에 1위를 탈환하게 된다.
회심의 카드는 '미국'
양 사의 승부수는 모두 미국이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 전체 가공식품 수출액은 전년 대비 10% 늘어난 26억8000만 달러다. 미국은 각 지역 중 가장 높은 2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K푸드 열풍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 중국 음식, 일본 음식, 멕시코 음식처럼 북미의 중심 식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다.
국내 시장의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해외에 집중하는 이유다. 지난해 호실적을 기록한 식품 기업은 대부분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었다. 국내에서의 부진을 해외에서 메우는 모양새다. 농심과 삼양식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삼양식품의 경우 오는 7월부터 밀양 제 2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삼양식품은 연 18억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는데, 밀양 제 2공장이 가동되면 24억개로 약 40% 늘어난다. 현재 불닭볶음면이 일부 지역에서 공급 부족 현상을 빚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산량 증가는 곧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에서 특히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북미에서만 전년 대비 137% 성장한 38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1분기에도 77% 고성장을 이어갔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일본 토요수산과 니신푸드는 올해 1분기 성장률이 -30.2%, 4.4%에 그쳤다. 불황 등 시장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흐름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미국 시장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건 농심도 마찬가지다. 농심은 삼양식품 대비 국내 매출 의존도가 높다. 거꾸로 말하면 해외 시장에서 성장할 여력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농심은 최근 신라면 툼바를 중심으로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분기부터 '신라면 툼바'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불닭볶음면의 성장세를 고려하면 농심 역시 단타나 2루타로는 만족할 수 없다. '홈런'을 노릴 수 있는 대형 신제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양식품과 불닭볶음면의 고성장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농심이 1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라면을 넘어서는 히트 제품을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