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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이 지난해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고 영업이익은 20% 넘게 줄었다. 라면업계 경쟁사인 삼양식품이 매출과 이익 모두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것과 비교된다. 해외에서 K라면 주도권을 삼양식품에게 내준 데 이어 국내에서도 눈에 띄는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고난의 행군
지난해 농심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매출은 0.8% 늘어난 3조4387억원에 그쳤다. '신라면 툼바' 등 주요 신제품들이 고가 제품임을 감안하면 역신장에 가까운 수치다. 영업이익은 2023년 2121억원에서 1631억원으로 20% 넘게 줄었다. 힘들게 회복했던 영업이익률 5%선이 다시 무너졌다. 통상임금충당금이 약 90억원 반영됐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하락폭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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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1년 내내 밀가루·팜유 가격 인상 등 원재료가 이슈와 불황 탓에 부진에 시달렸다. 농심은 지난 2023년 7월 신라면 가격을 50원, 새우깡 가격을 100원 인하했다. 두 제품은 나란히 농심의 라면과 스낵류 대표 제품이다. 원가 압박에 가격을 올려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가격을 내렸다. 수익성과 매출 양쪽 모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불황엔 라면'이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 불황에 따른 '라면 사재기' 효과보다는 1인가구 증가에 따른 멀티팩 판매 부진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편의점과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초저가 PB라면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불황 소비'를 상당 부분 흡수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홈플러스의 PB라면인 '이춘삼 짜장라면'은 4개입 멀티팩이 2000원에 불과하다. 농심 짜파게티 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K라면 대표 쟁탈전
K라면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해외에서도 농심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농심은 북미에서 6254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2023년 6352억원보다 소폭 뒷걸음질쳤다. 특정 분기가 아닌 연중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다. 또다른 전략국가인 중국에서는 하락폭이 더 컸다. 2023년 1890억원에서 지난해 1600억원으로 매출이 10% 넘게 빠졌다.
이는 지난해 또 한 번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삼양식품이 있어 더 비교가 된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매출 1조7300억원, 영업이익 3442억원을 기록하며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신기록을 썼다. 매출은 전년 대비 45% 늘었고 영업이익은 130% 넘게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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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삼양식품은 오뚜기를 제치고 국내 라면제조사 2위 자리를 굳혔다. 2022년까지만 해도 삼양식품의 면스낵 부문 매출은 8553억원으로 8876억원의 오뚜기보다 근소하게 적었다. 하지만 2023년 1조원을 돌파하며 오뚜기를 따라잡았고 지난해엔 3분기에 이미 2023년 연간 매출을 뛰어넘으며 격차를 크게 벌렸다.
향후 전망도 밝다. 한국투자증권은 삼양식품의 1월 라면 수출액을 전년 대비 38.8% 늘어난 6959만달러(약 1005억원)로 추정했다. 올해에도 꾸준히 30~40%대 매출 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업계에선 삼양식품이 올해 매출 2조원, 영업이익 4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신라면 툼바, 너만 믿어도…되겠니
농심도 이대로 K라면의 주도권을 넘겨줄 생각은 없다.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신라면 툼바'를 내세워 반등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디데이'는 3월이다. 중국과 일본에 신라면 툼바를 출시하고 지난해 4분기에 먼저 선보인 미국에선 월마트 입점을 시작한다.
신라면 툼바의 광고 모델로 셰프 에드워드 리를 선정하고 마케팅도 강화한다. 미국 내 인지도가 높은 에드워드 리 셰프를 통해 비국물 라면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북미, 매운맛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남미 등 아메리카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신라면 툼바의 성장 기대치가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라면 툼바는 출시 첫 2달 간 1100만개가 판매됐다. 이는 지난 2021년 '신라면볶음면'이 기록한 3주간 1000만개 판매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2022년 출시된 '라면왕김통깨'와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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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제품이 '국물이 없는 매콤한 라면'이라는 점에서 불닭볶음면과 카테고리가 겹치는 만큼 자칫하면 불닭볶음면의 아류작으로 보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 삼양식품은 이미 불닭볶음면 라인업에 크리미한 맛을 내는 '불닭볶음면 까르보나라'가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업계에서는 농심에 신라면이나 짜파게티 급의 초대형 신제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농심의 라면 매출을 견인하는 신라면, 짜파게티, 육개장, 너구리, 안성탕면은 모두 80년대 중반 출시된 제품들이다. 국내에서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아 안정적인 매출을 내고 있지만 해외 소비자에겐 여러 K라면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인기에 다른 라면 기업들이 대처하지 못하면서 해외 시장에서 삼양식품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며 "시장 판도를 뒤바꿀 초대형 신제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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