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그룹이 범 LG 계열 급식·식자재 유통 기업 아워홈을 품고 급식 시장에 다시 진출한다. 아워홈 인수를 주도한 것은 한화그룹 오너 3세 김동선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다.
김 부사장은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등 그룹 유통업 부문을 맡은 후 식음료(F&B), 로봇 등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에 매출 2조원 규모의 알짜 회사 아워홈까지 품으면서 해외 식품 시장까지 영토를 확장할 발판도 마련했다는 평가다.
다시 '급식'으로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 15일 아워홈 지분 인수를 위한 거래 대금 지급을 완료하고 계약을 최종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한화가 사들인 아워홈 지분은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과 구미현 아워홈 회장 등 소유의 58.62%다. 인수 가격은 총 8695억원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김동선 부사장 주도로 지난해 10월부터 아워홈 인수를 추진해왔다. 실사를 거쳐 지난 2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특수목적법인(SPC) 우리집에프앤비를 설립했다. 지난달 국내외 정부기관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도 마쳤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아워홈을 인수하면서 5년 만에 급식·식자재 유통업에 다시 뛰어들게 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 2020년 단체급식·식자재 유통(FC) 부문(현 푸디스트)을 별도 법인으로 분할하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VIG파트너스에 매각하면서 이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아워홈과 자사 레저 사업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아워홈은 급식, 컨세션, 식자재 유통, HMR 사업 등을 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도 급식, 컨세션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2조2440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도 썼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국내에서 9개 리조트, 4개 호텔, 골프장 3개를 운영 중이다. 30년 가까이 급식 사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자회사 한화푸드테크를 통해 식음 사업을 지속해온 만큼 아워홈 인수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G에서 한화로
이번 거래가 종결되면서 아워홈은 공식적으로 한화그룹의 계열사가 됐다. 아워홈은 고(故) 구자학 아워홈 선대회장이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 식품서비스 부문을 들고 독립하면서 설립된 기업이다. 오너일가가 LG그룹과 친척이다보니 LG 계열 매출을 꾸준히 내는 '알짜'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아워홈은 최근 10년간 구자학 선대회장의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과 막내딸 구지은 아워홈 전 부회장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내홍을 겪었다. 아워홈 지분은 구자학 선대회장의 네 자녀가 비슷하게 나눠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쪽이 쉽게 승기를 잡기 어려워 분쟁이 10년이나 지속됐다.

이들 남매 간의 분쟁은 결국 회사를 한화그룹에 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임시주주총회에서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아워홈 회장은 동생 구지은 전 부회장을 이사회에서 밀어내고 이사회를 장악했다. 스스로 아워홈 2대 회장에 오른 구미현 회장은 공식적으로 회사 매각을 천명했다. 이 때 기회를 잡은 것이 김동선 부사장이었다.
업계에서는 구씨 남매간 경영권 분쟁이 아워홈의 새 주인이 된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게도 향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분쟁에서 패한 구지은 전 부회장이 여전히 회사 매각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구지은 전 부회장은 아워홈 지분 20.67%를 가진 2대 주주다. 언니 구명진 전 캘리스코 대표(지분율 19.60%)도 구지은 전 부회장과 같은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게다가 이번에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확보한 지분은 전체의 3분의 2에 미치지 못한다. 안정적인 경영권을 위해서는 추가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유상증자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시험대 오른 김동선
이번 아워홈 인수는 김동선 부사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동선 부사장은 한화그룹 내 유통·레저·식음 분야를 맡고 있다. 큰 형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맡고 있는 에너지, 우주 사업, 둘째 형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맡은 금융업보다 규모가 작다.
이 때문에 김동선 부사장은 여러 신사업에 뛰어들며 그룹 유통·레저·식음 사업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화갤러리아의 자회사 에프지코리아를 통해 2023년 6월 들여온 '파이브가이즈'다. 에프지코리아는 최근 서울 압구정에 파이브가이즈 7호점을 여는 등 순항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일본사업 법인을 설립해 해외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파이브가이즈로 외식업에 뛰어든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9월 음료 제조업체 '퓨어플러스'도 인수했다. 퓨어플러스는 건강음료, 유기농 주스, 어린이 음료 등 비알코올성 음료를 제조, 판매하는 기업이다.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수출에서 내고 있다. 내수에 머무르는 유통의 한계를 벗어나 해외 매출을 키우기 위한 인수였다.
또 한화갤러리아는 이달 중에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슨'의 첫 매장도 오픈한다. 이를 위해 한화갤러리아는 자회사 베러스쿱크리머리를 세우고 경기 포천에 아이스크림 생산 공장도 지었다.

김 부사장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자회사 한화푸드테크를 통해 로봇 신사업도 키우고 있다. 한화푸드테크는 지난해 미국 로봇 피자 브랜드 '스텔라피자(Stellar Pizza)'를 운영하는 서브 오토메이션(Serve Automation)을 인수했다. 같은해 4월에는 서울 한남동에 로봇 시스템을 접목한 파스타 레스토랑 '파스타X'를 여는 등 사업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본업'인 한화갤러리아다. 한화갤러리아는 국내에서 운영 중인 5개 점포가 지난해 모두 매출이 전년보다 줄었을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때문에 한화갤러리아의 영업이익은 백화점 부문의 부진으로 지난해 전년보다 68.1%나 쪼그라들었다. 올 1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보다 75.6%나 감소한 18억원에 그쳤다.
김동선 부사장은 부진한 유통업을 대신할 새 먹거리로 '푸드테크'를 키우겠다는 목표다. 아워홈 인수도 푸드테크 사업 확대를 위해 이뤄졌다. 이 인수에 8000억원이 넘는 거금을 쏟아부은 만큼 김 부사장이 아워홈으로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관계자는 "급식과 식자재 유통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아워홈과 함께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식품시장의 지각변동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며 "한화와 한식구가 된 만큼 그룹 내 여러 계열사와도 다양한 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