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C그룹 계열사 비알코리아가 지난해에도 적자를 냈습니다. 비알코리아는 배스킨라빈스와 던킨을 운영하는 회사인데요. 2023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비알코리아가 2023년 창사 이래 적자를 낼 당시 시장에서는 주력 브랜드 배스킨라빈스의 부진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그 해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액이 전년보다 크게 줄어서였죠. 그렇다면 2024년은 어땠을까요. 아쉽게도 지난해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액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비알코리아의 올 4월 공시한 2024년 감사보고서상에서 '사업부 매출'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비알코리아에는 두 개의 사업부가 있습니다. '배스킨라빈스 사업부'와 '던킨도너츠 사업부'죠. 비알코리아는 2001년부터 매년 감사보고서를 통해 두 사업부의 매출을 공개해왔습니다. 비알코리아가 사업부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감사보고서 제출을 시작한 2000년이 유일합니다. 그랬던 비알코리아가 무려 25년만에 사업부 매출을 공개하지 않은 것 역시 배스킨라빈스의 실적 부진 때문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잘나가던 '배라'였는데
비알코리아의 성장은 배스킨라빈스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비알코리아가 1985년 설립된 것도 배스킨라빈스 전개를 위해서였죠.
비알코리아는 1985년 SPC가 미국 배스킨라빈스(당시 Baskin-Robbins International Company)와의 합작투자 계약에 따라 설립한 기업입니다. '비알'이라는 이름도 배스킨라빈스의 앞글자에서 따왔습니다.
현재 비알코리아의 지분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외 3인이 총 66.6%를, 미국 배스킨라빈스(Baskin-Robbins International LLC)가 33.3%를 갖고 있습니다. 현재 허 회장의 차남 허희수 부사장이 이끌고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비알코리아는 1986년 서울 명동에 배스킨라빈스 1호점을 열며 국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을 열었습니다. 1988년에는 배스킨라빈스의 가맹 사업에 뛰어들며 급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스킨라빈스가 한국에서 빠르게 성장하자 미국 배스킨라빈스 본사를 보유한 얼라이드 도멕(Allied Domecq PLC)이 SPC에 던킨(당시 던킨도너츠) 한국 사업도 권유하게 됩니다.

던킨도너츠는 원래 1984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철수한 브랜드였는데요. 비알코리아는 던킨도너츠와 1993년 기술제휴를 맺고 1995년부터 가맹사업도 돌입했습니다.
비알코리아가 배스킨라빈스와 던킨 두 브랜드와 함께 성장해왔으나 주력 브랜드는 여전히 배스킨라빈스입니다. 물론 배스킨라빈스가 늘 '메인'이었던 건 아닙니다. 배스킨라빈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 비알코리아 매출의 70% 이상을 책임졌는데요. 던킨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2007년 두 브랜드의 매출이 역전됐습니다. 이후 2010년까지 4년간 비알코리아의 매출 절반 이상이 던킨에서 나왔죠. 그래도 이 4년간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액 역시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단지 던킨의 성장세가 더 가팔랐을 뿐이죠.
배스킨라빈스는 2011년 다시 던킨의 매출을 추월했고요. 이후 던킨의 매출이 축소된 것과 달리, 배스킨라빈스는 최근까지 매출을 계속 끌어올렸습니다. 배스킨라빈스는 2014년 매출 3000억원을, 2019년 매출 4000억원을 넘어섰고요. 2022년에는 매출 5859억원을 쓰며 사상 최대 실적을 썼습니다. 비알코리아도 배스킨라빈스의 성장에 힘입어 매출액이 2013년 5000억원, 2019년 6000억원을 돌파한 뒤 2022년 사상 최대인 7917억원을 기록했죠.
이는 2010년대 중반부터 국내 빙과 시장 규모가 줄어든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닐슨코리아 소매점 매출 기준 빙과 시장 규모는 2015년 2조184억원에서 2022년 1조3759억원까지 쪼그라들었습니다.
적자 폭 개선
하지만 2023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배스킨라빈스가 부진에 빠지면서 비알코리아의 매출도 줄어들기 시작한 거죠.
2023년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액은 4967억원에 그치면서 전년보다 15.2% 감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비알코리아의 매출액도 2023년 7065억원에 그쳤습니다. 전년보다 무려 851억원(10.5%)이나 줄어든 수치인데요. 심지어 비알코리아는 2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첫 적자까지 냈습니다. 123억원의 당기순손실까지 발생하면서 1999년 이후 24년만에 처음으로 배당도 하지 못했습니다.
비알코리아는 지난해 실적이 소폭 개선되긴 했으나 여전히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비알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7126억원으로 전년보다 0.9% 성장하는 데 그쳤고요. 영업손실은 99억원으로 전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2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영업외이익에 힘입어 당기순이익(50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는데요. 순이익을 내면서 배당도 재개했으나 배당금은 주당 2500원, 총 15억원에 불과했습니다. 2022년까지 매년 100억원 이상 배당하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수치입니다.

지난해 적자 역시 2023년과 비슷하게 배스킨라빈스가 부진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비알코리아가 올해 공시한 지난해 감사보고서상에서 사업부별 매출이 사라져 정확한 확인은 불가능한데요. 배스킨라빈스가 비알코리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75.8% △2022년 74.0% △2023년 70.3%였습니다. 이렇게 배스킨라빈스의 매출 비중을 약 70%라고 가정할 때 지난해 배스킨라빈스의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5000억원에 그쳤거나 이 수치를 밑돌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알코리아가 지난해 감사보고서에서 25년만에 사업부 매출을 제외한 것도 배스킨라빈스의 실적 부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잘 나갈 때야 숫자를 공개하는 게 좋겠지만 실적이 나쁠 때는 감추는 게 낫겠죠. 배스킨라빈스는 가맹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외부에 실적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또 사업부 실적 공시는 의무사항도 아니죠. 다만 SPC는 "사업부 매출이 크게 유의미하다고 판단되지 않아 미표기 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불황으로 고객 감소
배스킨라빈스가 이렇게 부진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요. 빙과 시장 자체가 축소된 상황에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일 겁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 국내 빙과 시장은 2015년 2조원을 넘어선 뒤 현재 1조30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주요 소비층은 어린이와 청소년 인구가 고령화, 저출생의 영향으로 줄어들면서 아이스크림 소비도 줄고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빵, 케이크, 초콜릿, 빙수 등 아이스크림을 대체할 디저트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디저트 트렌드가 순식간에 바뀔 정도로 많은 대체제가 있으니 굳이 아이스크림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갑을 닫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배스킨라빈스에게 치명타입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일반 빙과류와 비교해 단가가 더 높은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배스킨라빈스 같은 값비싼 아이스크림 전문점 대신 '원플러스원(1+1)' 등으로 저렴하게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는 할인점,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가 더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배스킨라빈스의 '혁신'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비알코리아는 한때 전 세계 배스킨라빈스를 선도하기도 했던 기업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 수 있는데요. 비알코리아는 1987년 처음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보였습니다. 2009년부터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중동으로 수출되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배스킨라빈스 본고장인 미국으로의 수출도 이뤄졌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비수기인 겨울철에도 매출을 내주는 '효자' 아이템이자 한국 배스킨라빈스의 대표 혁신 제품이었죠. 하지만 '이달의 맛' 등 배스킨라빈스의 새로운 시도들은 최근에는 좀처럼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배스킨라빈스는 조만간 '배스킨라빈스 청담점'을 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이 매장은 배스킨라빈스의 거점 매장으로 브랜드 혁신을 이끌어갈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새롭게 변화할 배스킨라빈스가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