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퀵커머스 시장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과거 수익성 문제로 퀵커머스 서비스를 축소했던 대형 유통사들이 최근에는 배달앱에 입점하며 다시 매장 기반의 퀵커머스를 확대하고 있다. 반면, 롯데쇼핑은 여전히 자체 앱 중심의 전략을 고수하며 배달앱과의 제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배민에 올라탄 이마트·홈플러스·GS리테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이마트는 현재 수도권과 지방을 아우르는 9개 점포에서 배달앱인 배달의민족(배민)을 통해 1시간 내 배송이 가능한 퀵커머스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이마트는 지난 2022년 자체 퀵커머스 서비스 '쓱고우 베타'를 론칭했다가 종료했다.
이후 이마트는 지난해 11월 배민과 손을 잡고 퀵커머스 서비스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지난해 왕십리점과 구로점에서 시작된 퀵커머스는 올해 4월 목동점, 역삼점, 문현점, 수성점에 도입됐다. 이달엔 은평점, 월계점, 하월곡점으로 확대됐다.
이마트의 퀵커머스는 고객이 배민에서 이마트 장보기에 주문하면 이마트 매장 직원이 피킹존에서 상품 챙긴 후 퀵커머스 픽업 존에서 배달용 패킹을 진행하는 구조다. 이후 배달기사가 퀵커머스 픽업 존에서 픽업해 고객에게 배송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배송 수요와 라이더 트래픽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파일럿 테스트 점포를 선정했다"며 "수도권 외 지방 거점도시에서도 라스트마일 배송 테스트 위해 점차 권역을 확대하고, 테스트 운영 결과에 따라 확대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배민과 협업해 강동점, 신도림점, 상봉점, 동래점 등 4개 대형마트에서 퀵커머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기반으로 한 '즉시배송'을 운영한 것에 이어, 대형마트로 퀵커머스 거점을 넓혔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GS더프레시는 지난해 7월 배민에 입점했다. GS더프레시는 기존에 '우리동네GS' 앱에서 퀵커머스를 운영해왔다. 이후 요기요, 네이버, 배민, 카카오, 배달특급 등 다양한 플랫폼과 연계해 서비스 채널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GS더프레시는 550여 개 점포를 퀵커머스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퀵커머스 주문량이 많은 일부 매장의 경우 사륜차를 이용해 1시간 내 배송을 수행하기도 한다.B마트 있는데…왜 유통사 입점을 받았지?
유통업체와 배달앱의 협업은 트래픽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배달앱 1위인 배민의 월간 이용자 수(MAU)는 2000만명을 웃돈다. 유통업체 입장에선 자사몰보다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배달 플랫폼을 통해 신규 고객을 유입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마트 왕십리점의 경우 퀵커머스 주문량이 예상 대비 20~30%를 초과하는 수요가 확인됐다. GS더프레시도 올해 1분기 퀵커머스 매출 신장률이 전년 대비 42.1% 늘었다.
그동안 배민은 자체적으로 B마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품 구성이나 물류 인프라에 한계가 있었다. 배민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70여 개의 물류 거점을 운영 중이다. B마트의 상품 구성은 기존의 편의점이나 배달앱의 소량 상품 위주였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SSM이 입접함에 따라 대용량 상품 수요까지 커버할 수 있게 됐다.

퀵커머스는 이마트·홈플러스·GS더프레시 등 오프라인 유통사들에게 새벽배송이나 익일배송을 운영하는 이커머스보다 배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묘책이기도 하다. 유통사들은 이미 전국 단위 점포망을 활용해 별도의 투자 없이 곧바로 퀵커머스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다. 다만 각 사의 앱으로 고객을 유인해야 하는데, 자체 앱으로 고객을 유입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퀵커머스는 온라인 소비 중심의 고객을 오프라인 슈퍼마켓 고객으로 유입시키는 등 신규 고객 유입, 추가 매출을 창출하는 핵심 서비스"라며 "자체 앱을 구축하고 사용성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사용자 유입이 많아질수록 재고 회전율도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만 '외길'…왜?
반면 이런 추세와 달리 롯데쇼핑은 배달앱 입점 대신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는 영국 이커머스 전문기업 오카도와 협력해 자체 온라인 신선식품 사업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롯데마트가 론칭한 전용 앱 '롯데마트 제타'는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배송 시간 예약'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부산 CFC(자동화 물류센터)를 가동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새벽부터 심야까지 2시간 단위 배송 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롯데마트는 정교한 물류 체계와 자체 고객 데이터 확보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는 오는 2030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전국 6개 지역에 오카도 스마트 플랫폼(OSP)을 적용한 첨단 물류센터(CFC)를 구축하기로 했다. 다만 롯데마트 제타 앱 내 사용자 유입이 더디고 앱에 대한 부정적인 후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해결과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타 플랫폼인 배달앱과의 제휴가 단기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타 플랫폼 의존도를 높이거나 브랜드 충성도 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사업 지속성과 시장의 승부는 트래픽 유입과 재구매 경험을 얼마나 빠르고 효과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