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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소비의 시대. 뭐부터 만나볼지 고민되시죠. [슬기로운 소비생활]이 신제품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제품들을 직접 만나보고 가감없는 평가로 소비생활 가이드를 자처합니다. 아직 제품을 만나보기 전이시라면 [슬소생] '추천'을 참고 삼아 '슬기로운 소비생활' 하세요. [편집자]
*본 리뷰는 기자가 제품을 직접 구매해 시식한 후 작성했습니다. 기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대세는 캡슐
코로나19는 우리 식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았다. 치킨이나 피자, 짜장면이 다인 줄 알았던 배달은 이제 배달이 안 되는 음식이 더 희귀할 지경이 됐다. 밀키트는 어느 대형마트에 가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엄마가 해 주는 것인 줄 알았던 '집밥'에 도전하는 2030도 늘었다.
한국인의 식후를 책임지는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믹스커피에서 스틱 원두커피로 진행된 '집 커피'의 진화는 코로나19를 만나 캡슐 머신의 보급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1000억원 남짓했던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4000억원을 웃돌았다. 기나긴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안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캡슐 머신을 구매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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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성과를 거둔 건 당연히 시장 1위인 네스프레소다. 그 뒤를 일리와 동서식품이 뒤따르는 3파전 양상이다. 네스프레소는 다양한 디자인과 기능의 캡슐 머신 라인업과 막강한 캡슐 종류로 캡슐커피 시장을 이끌고 있다. 머신 종류만 해도 기본형인 네스프레소와 저가 라인인 돌체구스토, 신형 머신인 버츄오가 있다. 캡슐 종류만 해도 수십종이 넘는다. 입문자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구성이다.
일리는 네스프레소 대비 컴팩트한 크기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신혼집 필수 아이템'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네스프레소와 달리 에스프레소에만 집중한 기능성도 포인트였다. 후발주자인 동서식품은 국내 브랜드라는 점과 '카누'의 브랜드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캡슐 삼국지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캡슐 커피 시장의 '대확장 시대'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구축된 시장 내에서 뺏고 빼앗기는 점유율 싸움이다. 마침 자리도 마련됐다. 업계에선 캡슐 커피 머신의 사용기한을 대략 5년 안팎으로 본다. 이후로는 추출압이 떨어지고 미분이 쌓이는 등 오류가 늘어난다.
코로나19로 캡슐커피 머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를 2020년으로 보면 올해부터는 신규 구매자가 아닌, 머신을 교체하려는 수요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브랜드 이동이 시작되면 시장 점유율이 70%를 웃도는 네스프레소에겐 좋을 게 없다.
일리나 카누를 구매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네스프레소와의 비교 후 2, 3위 브랜드를 구매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미 한 차례 '1위'를 걸렀다. 반면 70%가 넘는 네스프레소 이용자의 상당수는 가장 유명하고 잘 팔리는 제품을 구매했을 가능성이 높다. 수 년의 사용기간을 가진 후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잃을 것 없는 도전자보다 챔피언이 느끼는 압박이 더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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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일까. 네스프레소는 최근 경쟁 브랜드와의 차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유명 커피 브랜드와의 협업이다. 지난해 스타벅스와 손잡고 스타벅스 전용 버츄오 캡슐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엔 블루보틀 캡슐을 선보였다. 두 브랜드 모두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확보한 커피전문점이다. 그만큼 집에서도 '우리 카페' 캡슐을 집어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간 다양한 가공커피를 선보였던 스타벅스와 달리 '프리미엄 커피'의 상징같은 브랜드인 블루보틀과의 협업은 더 눈에 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한국에서 출시됐다. 출시되자마자 일부 네스프레소 오프라인 매장에서 오픈런이 벌어질 정도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그래봐야 캡슐'이라는 시각과 '그래도 블루보틀'이라는 믿음이 엇갈린 네스프레소 블루보틀 블렌드 No.1을 직접 맛봤다.
집에서 마시는 블루보틀
블루보틀 블렌드 No.1은 그랑 룽고(150㎖) 사이즈의 100% 아라비카 블렌드다. 에티오피아, 우간다산 자연건조 원두를 블렌딩했다. 익은 과일로 만든 잼과 달콤한 캐러멜 향, 은은한 흰 꽃 향이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커피를 내려 봤다. 기존 버츄오의 인기 캡슐들보다 묽은 질감이 가장 두드러졌다. 일반적으로 내린 커피에 물을 조금 더 넣었나 생각될 정도로 바디감이 가볍다. 기존 세팅(150㎖)의 절반 정도로 추출량을 줄여도 가벼운 느낌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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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보틀 커피의 특징인 산미는 잘 구현됐다. 아프리카산 원두를 블렌딩해 꽃향과 과일향의 화사한 산미가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잔향이 오래 남지 않아 뒷맛은 깔끔하다. 블루보틀의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만한 제품이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가격이다. 블루보틀 블렌드 No.1은 10개 들이 한 상자에 1만8000원이다. 개당 1800원으로 버츄오의 대표 제품인 알티시오(770원)나 더블 에스프레소 스쿠로(870원)는 물론 블루보틀과 마찬가지로 브랜드 협업 제품인 스타벅스 캡슐(860~1300원)보다 비싸다.
비슷한 노트를 가진, 가격이 절반 이하인 캡슐이 함께 판매되는 상황에서 '블루보틀'이라는 이름 때문에 굳이 2배의 가격을 지출해야 할까. 앞서 말했듯, 네스프레소에는 선택할 수 있는 캡슐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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