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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광고]"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20년 버틴 힘

  • 2026.02.08(일) 13:00

스킨푸드, 2005년 음식에 빗댄 광고 선봬
'푸드' 원료 차별점으로 브랜드숍 3위까지
법정관리 겪은 후에도 지켜온 정체성

그래픽=비즈워치

[그때 그 광고]는 우리나라 식품유통업계의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광고들을 소개하고 그 뒷 이야기들을 펼쳐보는 콘텐츠입니다. 꼴찌 브랜드를 단숨에 1위로 만든 '최고의 광고'부터 잘 나가던 브랜드의 몰락을 불러온 '최악의 광고'까지, '광고의 정석'부터 '광고계의 이단아'까지. 우리의 인상에 남았던 여러 광고 이야기를 나눠 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추억의 광고는 뭔가요? 혹시 이 광고 아닌가요.[편집자]

화장품을 떠먹는다?

따뜻한 햇살 아래로 요거트처럼 생긴 새하얀 용기 뚜껑이 보인다. 그 위에는 하얀 크림이 담뿍 담겨있는 은빛 스푼이 놓여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식탁으로 옮겨간다. 정갈한 테이블 매트 위로 새하얀 접시와 포크, 스푼, 나이프와 냅킨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접시 위에는 달콤한 흑설탕과 백설탕 가루가 반씩 담겨 있다. 이번엔 여러 화장품들이 등장한다. 푸르른 잎사귀 옆, 아삭한 청사과, 붉게 익은 사과 사이에 선 화장품 용기들이 마치 디저트처럼 접시와 선반을 채운다.

카메라는 이어 미색 액체가 담긴 듯한 투명한 유리병을 비춘다. 곧 은색 스푼이 등장해 갑자기 병으로 파고든다. 딱딱한 유리병인 줄 알았는데 마치 푸딩을 뜨듯 부드럽게 떠진다. 연한 노란색의 푸딩이 스푼 위에서 말캉하게 흔들리고 그 뒤로 한 여성이 속삭인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스킨푸드 2005년 광고 포스터. / 사진=스킨푸드

지금까지도 화장품 광고 중 가장 유명한 문장으로 기억되는 이 카피는 2005년 9월 첫 전파를 탄 '스킨푸드'의 첫 TV 광고에서 나왔습니다. 이 광고는 마치 디저트 광고처럼 감각적인 비주얼로 먹음직스럽게 연출된 화장품 제품들을 연속으로 보여준 게 특징인데요. 당시 인기 가수이자 배우였던 성유리가 투명한 피부를 자랑하며 자연을 만끽하는듯한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스킨푸드는 2004년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입니다. 창업자인 조윤호 대표는 1980~1990년대 국내 화장품 시장을 대표한 피어리스 조중민 회장의 아들이었는데요. 외환위기 이후 2000년 피어리스는 폐업했지만 조 대표는 화장품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새 브랜드 스킨푸드를 세웠다고 하죠. 현재도 사용되는 스킨푸드 로고에 'since 1957'을 새긴 것도 피어리스가 창립한 해를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피어리스의 후신이었지만 스킨푸드는 사업 초기 입소문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업 이듬해인 2005년 이 첫 TV 광고를 계기로 브랜드 인지도가 급상승 했습니다.

'푸드'로 승부

스킨푸드가 사업을 시작한 2000년대 초는 브랜드숍(로드숍) 브랜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브랜드숍은 단일 브랜드 제품만을 가두점에서 판매하는 형태의 화장품 매장을 말합니다. 당시 브랜드숍 시장은 미샤와 더페이스샵이 양강 구도가 굳어져 가고 있었는데요.

특히 이 시기에는 '자연주의 화장품' 열풍까지 불었습니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비욘드' 같은 브랜드들이 허브나 유기농 원료를 내세우며 경쟁했죠. 스킨푸드는 비교적 후발주자였지만 '원료'로 차별화 했습니다. 자연주의 화장품 안에서도 더 좁은 범위인 '푸드'에 집중한 겁니다. 

스킨푸드는 토마토, 상추, 오이, 파인애플 같은 과일과 채소는 물론 커피, 맥주처럼 일상에서 먹는 음식과 캐비어 같은 고급 재료까지 화장품 원료로 활용했습니다. '복분자 아이크림', '블랙 슈가 스크럽', '토마토 화이트닝 에멀전' 같은 스킨푸드의 히트 제품들을 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스킨푸드의 '잘 먹었습니다' 캠페인. / 사진=스킨푸드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는 이런 스킨푸드의 '푸드 코스메틱' 콘셉트를 단 한 문장으로 압축한 표현이었습니다. '먹어서 좋은 음식은 피부에도 좋다'는 의미를 담은 메시지이기도 했죠.

스킨푸드는 이후 광고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지속해서 내세웠습니다. 2008년 '피부를 위해 푸드를 공부합니다', 2010년 '푸드를 믿으세요', 2014년 '잘 먹었습니다, 스킨푸드' 같은 슬로건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차별화 전략은 단숨에 스킨푸드를 브랜드숍 강자로 만들었습니다. 스킨푸드는 2006년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고요. 2012년에는 매출 1800억원대로 사상 최대 실적을 쓰면서 미샤, 더페이스샵에 이어 브랜드숍 3위에 올랐습니다.

정직함의 딜레마

스킨푸드는 2013년 푸드 코스메틱 메시지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푸드의 정직함을 믿으니까'라는 카피로 브랜드 캠페인을 시작한 겁니다. 원료의 정직함에 이어 가격의 정직함까지 내세운 캠페인인데요. 인기 배우 이종석을 메인 모델로 한 광고에서 '스킨푸드는 365일 노세일을 원칙으로 합니다'라고 강조했죠. 스킨푸드는 배우의 목소리를 빌어 '이렇게 세일을 자주 할 것 같으면 진작 그 가격으로 팔면 되잖아, 괜히 처음 산 사람들만 손해 보게'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다른 브랜드숍의 할인 행사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스킨푸드는 창립 이후 10년 가까이 세일 행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브랜드숍들은 '저가'와 '할인'을 앞세우다보니 매 시즌, 심하면 매달 할인 행사를 했는데요. 스킨푸드만 일 년 내내 같은 가격을 유지했죠. 심지어 제품의 가격도 창립 이래 9년 넘도록 한번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스킨푸드 '잘 먹었습니다' 캠페인. / 사진=스킨푸드

이런 '노세일' 전략에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언제 사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신뢰감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었죠. 문제는 이 시기 국내 화장품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좋은 품질에 낮은 가격을 내세운 신생 업체들이 쏟아졌다는 점입니다. 할인 행사가 없는 스킨푸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스킨푸드는 2014년 말 일부 신제품과 계절 상품을 특가로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3월에는 창립 11년 만에 처음으로 전 품목 세일 행사를 열었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노세일로 쌓아온 스킨푸드만의 차별점이 사라진 순간이었습니다.

20년 지탱한 한 줄

급기야 2015년 메르스와 2016년 사드 배치 갈등으로 중국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스킨푸드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결국 스킨푸드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2018년 기업회생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때 국내 브랜드숍을 대표하던 기업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죠.

다행히 2019년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 파인트리파트너스가 스킨푸드를 인수하며 1년 만에 회생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요. 스킨푸드는 그동안 오프라인 로드숍에 의존해왔지만 이때부터 온라인 채널 강화에 집중했습니다. 올리브영 같은 H&B스토어에도 적극 입점하며 유통 채널을 다각화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스킨푸드는 2022년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스킨푸드는 해외 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 중입니다. 지난해 기준 일본, 동남아 등 해외 오프라인 매장 6000개 점에 입점해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화장품 기업 구다이글로벌과 더함파트너스 컨소시엄에 인수되면서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재미있는 건 2000년대 중반 스킨푸드와 함께 성장했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들 중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스킨푸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위기 속에서도 '푸드'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킨푸드 '캐롯 카로틴 카밍 워터 패드'. / 사진=스킨푸드

스킨푸드는 현재도 꾸준히 푸드를 원료로 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인기 상품은 2020년 출시한 '캐롯 카로틴 카밍 워터 패드', 일명 '당근패드'인데요. 제주 유기농 당근이 원료입니다. TV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누적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했죠. 이후 미나리, 감자, 도토리, 레몬그라스 같은 푸드 원료를 활용한 패드 라인업을 계속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장품 시장에서는 '비건 화장품'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물성 원료를 배제하고 식물성 원료를 쓰며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말하는데요. 스킨푸드가 20년 전 내세웠던 '먹을 수 있는 원료로 만든 화장품'이라는 콘셉트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푸드 코스메틱이 이제는 화장품 업계의 주요 흐름이 된 셈입니다.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광고 카피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스킨푸드의 광고에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 단 한 줄의 광고가 20년 간 브랜드를 지탱한 힘이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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