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까지 가는 남매
콜마그룹이 최근 갑작스러운 오너간의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콜마그룹 지주사 콜마홀딩스와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자회사 콜마비앤에이치가 콜마비앤에이치의 이사회 개편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콜마홀딩스는 윤동한 콜마그룹 회장의 장남 윤상현 부회장이, 콜마비앤에이치는 장녀 윤여원 사장이 이끄는 회사입니다.
콜마그룹은 그간 창업주 윤동한 회장의 자녀들에 대한 승계를 조용히 진행해왔습니다. 콜마그룹의 사업구조는 한국콜마의 화장품, HK이노엔의 제약, 콜마비앤에이치의 건기식 등의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 중 화장품과 제약은 윤상현 부회장이, 건기식은 윤여원 사장이 경영을 맡는 식으로 역할을 확실히 나눠놨죠. 그룹 승계를 두고 남매 사이에 이렇다 할 갈등도 없었습니다.

이런 두 남매의 갈등이 갑작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9일이었습니다. 이날 콜마비앤에이치는 경영권 분쟁 소송이 벌어졌다고 공시했는데요. 콜마홀딩스가 지난 2일 대전지방법원에 콜마비앤에이치의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콜마홀딩스는 이 임시주총에서 윤상현 부회장과 이승화 전 CJ제일제당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한다는 계획입니다. 즉 콜마홀딩스가 콜마비앤에이치의 이사회 일부를 교체하고 직접 경영에 손을 대겠다는 의도죠.
콜마홀딩스가 법원에 임시주총 소집 허가 신청서를 냈다는 건 이에 앞서 콜마비앤에이치가 임시주총 소집을 거부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콜마비앤에이치가 임시주총을 소집해달라는 지주사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지주사가 이 사안을 법원까지 끌고 간 겁니다.
결국 콜마비앤에이치가 콜마홀딩스의 이사회 교체 요구를 거부한 건데요. 오빠가 동생 회사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하자 동생이 반발한 셈입니다. 콜마홀딩스와 콜마비앤에이치를 내세운 두 남매 사이의 갈등이 대외적으로 공개된 순간이었습니다.
"실적 악화"
콜마홀딩스는 콜마비앤에이치의 이사회 개편을 요구한 배경에 대해 '부진한 실적'과 '주가 하락'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콜마비앤에이치가 최근 실적이 악화하면서 주가까지 크게 떨어진 만큼 최대주주로서 경영 정상화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최근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은 아쉬운 상황입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지난해 매출액은 6156억원으로 전년보다 6.2% 성장했는데요. 이는 사상 최대 매출액이었던 2020년(6069억원)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그런데도 콜마비앤에이치 실적이 나쁘다는 건 이익 때문입니다. 콜마비앤에이치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2020년부터 4년 연속 영업이익이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콜마비앤에이치의 영업이익은 246억원에 그쳤는데요. 이는 2020년(1092억원)과 비교하면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올 1분기 실적도 좋지 않습니다. 콜마비앤에이치는 아직 1분기 실적을 공시하기 전입니다. 콜마홀딩스에 연결 기준 종속회사로 잡히는 회사는 콜마비앤에이치가 유일하기 때문에 콜마홀딩스 실적을 통해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을 알 수 있습니다. 콜마홀딩스 IR 자료에 따르면 콜마비앤에이치의 1분기 매출액은 1367억원으로 전년보다 14.7% 줄었습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 부진은 지주사 콜마홀딩스도 흔들고 있습니다. 콜마홀딩스의 1분기 매출액도 전년 보다 13.6% 줄어든 1524억원에 그쳤죠. 콜마홀딩스의 IR자료는 콜마비앤에이치의 영업이익을 별도로 밝히진 않고 있는데요. 콜마홀딩스의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64.4%나 감소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콜마비앤에이치의 영업이익도 크게 감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주가도 크게 하락한 상태입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주가는 2022년 6월 10일 장중 3만2000원을 넘었었는데요. 약 3년 여가 흐른 지난 13일 종가는 1만3960원에 불과합니다. 당연히 소액주주들의 불만도 극에 달한 상황이죠.
"개선 여지 충분한데"
이에 대해 콜마비앤에이치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2년 사이 건기식 산업 전반이 침체돼있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동종업계에서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였다는 겁니다. 실제로 콜마비앤에이치는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썼습니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 중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세종3공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동돼 곧 영업이익도 다시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또 코로나19 당시 그룹이 흔들릴 때 콜마비앤에이치 덕분에 버틸 수 있었으면서 이제는 그룹의 '골칫거리' 취급을 하는 게 억울한 분위기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2020년은 건기식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콜마비앤에이치가 그룹 내에서 가장 잘 나가던 때였는데요. 이때는 오히려 화장품이 부진했던 시기라 콜마비앤에이치가 그룹을 지탱했습니다. 2022년 콜마비앤에이치가 마스크팩 제조기업 콜마스크를 인수하면서 그룹 신성장동력을 확보한 사례가 대표적이죠.
특히 콜마비앤에이치는 지주사의 갑작스러운 임시주총 소집에 대해 당황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이미 일부 이사회 개편이 이뤄졌는데요. 당시 주총에서는 윤동한 회장이 콜마비앤에이치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새롭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부진을 타개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당시 주총에서 콜마비앤에이치는 올해 경영 계획에 대해 콜마홀딩스 등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는데요.

그런데 정기주총이 열린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콜마홀딩스가 또 이사회를 개편하고 경영에 직접 관여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콜마비앤에이치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정기주총을 막 마친 만큼 올 연말까지 시간을 두고 콜마비앤에이치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지주사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콜마홀딩스가 갑작스럽게 이사회 개편을 요구한 시점이 다소 의아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미국 행동주의 펀드 달튼인베스트먼트(달튼)의 영향이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달튼은 지난 3월 콜마홀딩스 지분율은 5.69%로 끌어올리면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꿨습니다.
콜마홀딩스의 3월 정기주총에서는 임성윤 달튼코리아 공동대표가 콜마홀딩스 기타비상무이사로도 이름을 올렸죠. 달튼이 한국콜마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한 데다, 올 1분기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이 크게 악화한 만큼 지주사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입니다.
'화해'가 필요한 시점
그렇다면 부친인 윤동한 회장은 어떤 입장일까요. 윤 회장은 딸 윤여원 사장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상현 부회장이 화장품과 제약을, 윤여원 사장이 건기식을 맡아 경영을 하기로 돼 있는 만큼 윤 회장은 이를 깨뜨릴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하네요.
콜마홀딩스와 콜마비앤에이치 역시 모두 이번 사안에 대해 '경영권 분쟁'이라는 데에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현재 사업을 나눠갖고 공동 경영하는 데에 두 남매 모두 동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콜마홀딩스가 콜마비앤에이치의 최대주주인 만큼 이번 사안의 승기는 이미 윤 부회장이 쥐고 있습니다. 콜마홀딩스는 44.63%의 지분을 가진 콜마비앤에이치의 최대주주입니다. 최대주주가 주총 소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 역시 소집 허가를 내려줄 가능성이 큽니다.
주총에서의 표 대결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윤여원 사장의 콜마비앤에이치 지분율은 7.72%에 불과하고 우호지분이 따로 있지도 않습니다. 주총이 열리면 윤 부회장이 콜마비앤에이치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럼에도 윤여원 사장이 오빠에게 '반기'를 든 건 그만큼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콜마비앤에이치의 실적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도 있습니다. 콜마그룹 오너 일가는 그간 원만한 관계를 보여왔는데요. 콜마그룹의 오너일가가 원만히 '화해'를 하고 그룹 성장의 축이 되어주길 기대해 봅니다.